모든 배움은 무지(無知)에서 시작한다. 아이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첫 번째 질문 "왜?"는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아는 순간에서 나온다. 이 처음의 무지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아름다운 거다. 호기심의 씨앗이고, 탐구의 출발점이며, 성장의 시작이다.
나는 이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배울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배울 수 없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아는 데서 시작한다.
무엇을 알것인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이 질문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세상에는 무한한 것들이 있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모든 걸 알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해야 한다. 무엇이 진정으로 알 가치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별을 알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은 숫자의 패턴에 매혹되고, 어떤 사람은 단어의 울림에 이끌린다. 처음의 무지는 이렇게 각자의 자신만의 지적 여정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배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지식을 쌓고, 이론을 익히고, 방법론을 습득한다. 개론을 읽고 선생을 만나고 실험하고 토론을 나눈다. 이 과정에서 무지의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이해의 빛이 들어온다.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쾌감, 복잡했던 게 단순해지는 순간의 환희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중력을 깨달았을 때,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을 때의 그 희열 이게 지의 단계다.
하지만 진정한 앎은 더 깊은 곳에 있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알수록 우리는 모든 지식은 지도일 뿐, 영토가 아니라는 걸 모든 이론은 모델 일뿐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언어로 포착된 진리는 이미 진리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걸 꺠닫는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다시 무지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것은 처음과는 다르다. "나는 아직 모른다"라는 "나는 결코 다 알 수 없다"라는 깨달음으로 바뀐다. 처음의 무지는 빈 그릇이었다면 그다음은 넘쳐서 다시 비워낸 그릇이다.
여기서 창의가 탄생한다고 본다. 기존의 지식체계에 갇히지 않고, 교과서가 가르친 답에 만족하지 않고, 선생이 제시한 방법만을 따르지 않는다. 내면화를 통해 자신만의 지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지를 생산한다는건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건 세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며 자기만의 통찰로 기여하는거다. 모방이 아니라 창조 반복이 아니라 혁신이다.
한 작곡가는 스승에게서 배웠지만, 그의 음악은 그만의 것이다. 그는 배운 걸 내면화하고, 소화하고, 변형하여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냈다. 진정한 배움의 완성이다.
결국 교육의 목표는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중간의 앎을 성실히 쌓되 거기 갇히지 않고, 마지막 무지의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것 무지에서 무지로, 그사이를 흐르는 빛 그것이 진정한 앎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