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삶.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두 단어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생(生)은 생물학적 존재다.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고 세포가 분열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유기체의 연속이다. 삶은 그 이상이다. 의미를 찾고 가치를 추구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생과 삶 사이에서 긴장한다. 단순히 살아있는 것에만 족할 수 없고,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묻는다. 이 질문 때문에 인간은 고통스럽다. 동물은 그저 살지만, 인간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본능은 이 모든 질문에서 우리를 구해낸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위험하면 도망친다. 질문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그냥 하는 이것이 본능이다.
본능은 인간으로부터 도피다. 본능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 아닌가. 인간적이라는건 무엇인가? 이성, 도덕, 양심, 고민, 선택 인간을 사람답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게 우리를 괴롭힌다.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 선택이 정말 맞는가. 끝없는 자기 검열과 도덕적 고민 이성의 무게는 때로 견디기 힘들다.
본능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처를 제공한다. 배고플 때 먹는 것에 대해 도덕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음식이 눈앞에 있을 때는 졸릴 때 자는 것을 두고 이성적 판단을 구하지 않는다. 본능은 생각을 건너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살게 한다. 만약 모든 순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숨을 쉴 때마다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의 산소 농도는 적절한가, 내 호흡 리듬이 최적화되어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면 심장 박동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할 거다.
본능은 생명을 자동화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시스템 생각하지 않아도 반응하는 메커니즘 이게 우리를 살게 한다. 이성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면 우리는 그 무게에 짓눌려 멈춰버릴 것이다. 무한히 펼쳐진 유한함, 인생. 생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다. 생명은 유한하다. 언젠가 끝난다. 하지만 그 유한함 속에서 무한한 순간들이 펼쳐진다. 매 순간은 새롭고 매 호흡은 유일하며 매 심장 박동은 반복되지 않는다.
생은 무한히 세밀하다. 한순간을 확대하면 그 안에 또 무수한 순간들이 있다. 세포 하나의 생명주기 안에 수백만 번의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혈관 하나를 따라 흐르는 피의 여정만 해도 경이롭다. 무한히 복잡하고 무한히 정교하다. 하지만 그 무한함도 유한하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이 유한함 속에 무한함이 압축되어 있다. 무한히 펼쳐진 유한함 생명의 역설이다.
이 역설 앞에 이성은 무력하다. 어떻게 유한함을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이해할 것인가 이성으로는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본능은 알고 있다. 본능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매 순간을 살아낸다. 설명하지 않고 정당화하지 않으며, 그냥 살아간다. 본능은 생으로부터 삶을 수호한다. 생물학적 존재라는 무거운 진실, 언젠가 끝난다는 유한함으로부터 의미 없는 물질의 집합이라는 냉혹한 사실로부터 본능은 우리를 보호한다.
질문을 건너뛰고 고민을 차단하고 생각 없이 행동함으로써 인간적 고뇌로부터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도피한다. 하지만, 이 도피가 우리를 살게 한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인간은 살아남는다. 본능이라는 동물적 측면이 없다면, 순수하게 이성적이고 자의식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실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는 점심때 배고파서 음식을 찾는 밤에 피곤해서 눕는 이 단순한 행위들 속에 본능이 있다. 그리고 본능 덕분에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압도되지 않고 계속 살아간다. 본능은 조용히 묵묵히 우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