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부분, 깨진 조각, 아물지 않은 상처, 과거의 실패들, 극복하지 못한 두려움, 여전히 아픈 기억들 내면의 폐허를 품고 산다. 이 폐허를 숨긴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강한 척, 완전한 척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연인에게, 친구에게, 가족에게 우리는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한다.
상대방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을 배려해서 숨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폐허를 숨기는 진짜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짐작한다. 폐허를 숨기는 진짜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상대방보다 나를 더 아낀다. 무너진 모습을 보이면 거절당할까 두렵다. 약한 모습을 드러내면 사랑받지 못할까 무섭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보이면 떠날지 걱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못한다. 가면을 벗는 걸 포기하지 못한다. 진짜 모습을 보이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상대방을 위해 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하지만 이건 기만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거다. 상대방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상처받지 않으려는 것이다.
폐허를 숨김으로 우리는 상대방도 숨기게 만든다. 관계는 거울과 비슷하기에 내가 완벽한 척하면 상대방도 완벽한 척해야 한다. 내가 강한 척하면 상대방도 약함을 보일 수 없다. 나의 가면이 상대방에게도 가면을 강요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폐허를 숨긴 채 관계를 유지한다. 깨끗한 외관, 정돈된 표면, 완벽해 보이는 관계 하지만 그 아래에는 각자의 고독이 있다. 서로 옆에 있지만 진짜로 만나지 못한다.
당신의 폐허를, 무너진 부분을, 깨진 조각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여주라. 쉽지 않다. 폐허를 보여주는 건 무장해제다. 방어벽을 허무는 것이다.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공격받을 수도, 거절당할 수도, 상처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엄청난 위험이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는 위험을 감수할 때만 가능하다. 폐허와 폐허가 만날 때 비로소 진짜 만남이 일어난다. 완벽한 가면과 완벽한 가면의 만남은 진짜 만남이 아니다. 그건 환상과 환상의 만남일 뿐이다.
폐허를 보여주는 것은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의미다. ‘내가 이렇게 무너져 있어도 당신은 떠나지 않을 거야. 내 약함을 봐도 당신을 나를 사랑할 거야’라는 믿음 이건 관계에 대한 가장 큰 투자다. 동시에 폐허를 보여주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당신은 내 폐허를 감당할 만큼 강해, 당신은 내 진실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라는 인정, 상대방을 어린아이처럼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대우하는 것이다. 그리고 폐허를 보여주는 것은 상대방에게 허락을 주는 것이다.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 당신도 완벽할 필요 없어. 내가 무너져 있듯이 당신도 무너져 있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 진정한 배려다.
폐허를 보여주고 나면 두 가지 중 하나가 일어난다. 상대방이 떠나거나 머물거나. 옆에 머문다면 그때 비로소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폐허와 폐허가 만나고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본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랬어. 너만 그런게 아니야.’ 라는 공감 속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우리의 폐허가 우리를 연결한다. 완벽은 고립된다. 하지만 불완전은 연결된다. 폐허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가장 큰 용기다. 무너진 모습으로만 닿을 수 있는 그곳, 진정한 만남이 일어나는 곳. 그곳을 안식처 삼아 서로의 폐허를 가꾸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