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지탱하는 것

『 사람을 사랑하는 일 』 서평

by 도윤

왜 우리는 번거롭게 사랑해야 하는가


세상을 유지시키는 게 있다면 그건 사랑이다. 또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다. 물리법칙도, 경제도, 권력도 세상을 움직이지만, 그 모든 것의 심층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힘이 아닌 무언가다.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무언가.


하지만 사랑은 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지 않는다. 나타났다 사라지고, 절망과 뒤엉키고, 변질되고 좌절한다. 그러나 절망 역시 끝까지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고정된 상태에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변한다. 이 변화 속에서 내재되어 있던 우울은 만남을 통한 사랑 속에서 묻어진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 앞에서 우리는 자기중심에서 벗어난다. 우울은 자아에 갇혔을 때 생기지만, 사랑은 우리를 밖으로 끌어낸다. 그러나 이 사랑은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미숙한 형식의 사랑에 아프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이 배움은 고통스럽다. 사랑은 거울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기심과 편협함을 본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타자를 이해하고 배려한다. 이것은 실패와 반성을 거듭하며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 이외에 어떤 단어로 이런 행동이 가능한가. 의무는 강제를 동반하고, 책임은 부담이며, 동정은 거리를 둔다. 사랑만이 자발적이면서도 전적이다.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담는다.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흐린다.


이처럼 고유한 사랑을 우리는 여러 형식으로 나눈다.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 연인을 향한 사랑, 가족을 위한 사랑. 하지만 이런 분류는 편의일 뿐이다. 사랑의 본질은 하나다. 모든 형태의 사랑에는 같은 구조가 있다. 누군가의 존재를 긍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며,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 대상이 누구든 이 구조는 변함없다. 연인을 사랑할 때와 자식을 사랑할 때, 우리가 쓰는 능력은 본질적으로 같다. 다른 건 표현일 뿐이다.


자기애와 타인애도 대립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타인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자기애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다. 이것 없이는 타인을 존중할 기반도 없다. 실제 삶에서 순수한 형식의 사랑은 없다. 연인 관계에 우정이 섞이고, 우정에 가족 같은 친밀함이 들어오며, 가족애에 열정이 담긴다. 경계는 흐릿하다. 사랑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깨어난 자는 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봉쇄된 자는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사랑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사랑에서 상대가 어떤지 살피는 건 중요하다. 미래를 꿈꿨을 때 서로가 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이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잘못된 사랑은 공멸로 간다. 서로의 상처를 자극하고, 나쁜 습관을 강화하며, 파괴적 패턴을 반복하는 관계가 있다. 사랑이 맹목적 헌신이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는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판단의 문제다. 우리는 사랑할 만한 자를 선택해야 하고,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완벽함을 뜻하지 않는다. 성장 가능성, 존중, 선의를 뜻한다.


그렇게 신중하게 선택해도 사랑은 고통이다. 시작하기도 힘들지만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자신뿐 아니라 타자의 고통까지 짊어진다. 세월 속에서 사랑은 현실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경제적 압박, 사회적 기대, 생활의 마찰, 몸의 노쇠. 외부만이 아니다. 내부에는 더 교묘한 적들이 있다. 권태, 원망, 질투, 실망. 이런 감정들을 이겨내려면 튼튼한 감정 근육이 필요하다. 사랑은 근력 운동 같다. 꾸준한 연습과 인내로만 강해진다. 서로를 보듬는다는 것은 상대의 약함을 받아들이고, 실수를 용서하며, 어두운 순간을 함께 견디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유한하고 취약한 존재다. 사랑은 그 취약성을 함께 떠안는 행위다.


하지만 힘든 만큼, 사랑으로 인해 삶은 풍족하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홀로일 때보다 더 많은 것이 된다. 서로의 장점을 나누고 단점을 가려준다. 두 사람이 만나 더 높은 통일을 이룬다. 이 통일은 차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이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볼 수 없던 세계를 본다. 타자는 내게 없던 관점, 감수성, 경험을 가져온다. 이를 통해 세계는 더 입체적이 되고, 삶은 더 다채로워진다. 사랑은 존재의 확장이다.


세상은 생각 외로 콘텐츠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일상은 반복이다. 평온한 삶은 지루함을 수반한다. 이를 짊어지겠다 다짐하면 그 미래가 어떻든 혼자 책임져야 한다. 거의 구도자의 길이다. 외적 자극에 의존하지 않고 내적 평정을 통해 의미를 찾는 길. 고독한 선택이다. 고요 속에서 허무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반대로 사랑을 선택하면 고독하지 않지만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사랑 속에서 고난이 뒤따를지라도, 그것을 하다 사랑이 끝나면 아파한다. 그런데 바로 그 아픔, 그 상실감이 나 자신의 동기가 된다. 고통은 부정적 경험만이 아니라 각성의 계기다. 사랑을 잃은 후의 아픔은 묻는다. 무엇이 소중했는가. 무엇을 놓쳤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들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이다. 상실은 우리를 새로운 의미를 찾도록 강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집착은 고통을 연장할 뿐이다. 그러나 무관심도 답이 아니다. 올바른 태도는 애도하되 집착하지 않고, 기억하되 매달리지 않으며, 배우되 후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상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된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위해 죽음으로 다가가자. 이는 자기 파괴가 아니라 전적인 헌신을 뜻한다. 집착은 하지 않되 온전히 주고, 완전히 몰입하되 자아를 잃지 않으며, 전적으로 사랑하되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숙한 사랑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라는 것은 남들이 정해준 가치가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향해 사는,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한계와 유한성을 감수하면서도 나아가는 진정성의 요청이다.


그렇다면 물음으로 돌아간다. 왜 우리는 번거롭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은 고통스럽고, 어렵고, 때로는 절망적이다. 사랑 없이도 살 수는 있다. 고독을 선택하고, 자극을 거부하고, 고요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그것도 하나의 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삶은 다르다. 더 풍요롭고, 더 아프고, 더 생생하다. 사랑은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고, 타자를 통해 세계를 확장시키며,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만든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인생은 인생이다. 삶은 삶이다. 삶이 꼭 무언가여야만 하는가. 사랑이 꼭 무언가여야만 하는가. 아니다. 사랑은 목적도 아니고 답도 아니다. 사랑은 그저 하나의 방식이다. 존재하는 방식. 관계 맺는 방식. 고통을 견디는 방식.


누군가는 사랑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선택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사랑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번거롭다. 힘들다. 끝없이 배워야 하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집착하지 말아야 하지만 헌신해야 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전적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랑한다면, 그 번거로움 속에 삶이 있다.



"이젠 아무 걱정 없다." 이 말은 내가 아는 여인들 중에 가장 고단한 삶을 사셨던 나의 시어머님이 자주 쓰시던 말씀이었다. 내 오랜 시집살이, 그 시절에도 어머님이 많이 쓰셨을지 모르는데, 내 기억에는 해마다 김장을 하시고 난 후에 어머님은 꼭 이 말씀을 하셨다. [...] 어머님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아무 걱정 없다'는, 나에게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는지, 내게 긍정의 힘을 자주 심어준다. 감사하는 마음이 이어지게도 한다. 내뱉은 말은 씨가 되어 현실을 창조한다고 한다. 아홉가지 좋은 일이 있는데도 한 가지 근심거리가 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그 한가지 생각에 빠져 하루의 긴 시간을 보낸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생각의 늪'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니까. 평범한 우리가 100% 여여한 삶을 살아내기는 어렵겠지만, 의도적으로 긍정의 말과 감사 습관으로 어느 정도는 평화 안에 머무르는 하루를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나의 하루도, 나의 인생도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테니까.

『 사람을 사랑하는 일 』 채수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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