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행복
누군가가 당신에게 화를 낸다는 건 그 순간 대부분의 사람은 방어적이 되거나 반격하려 한다. 하지만 잠깐 그 화 뒤에 숨어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화를 내는 사람은 불덩이를 손으로 움켜쥐고 뜨겁다고 화를 낸다! 멍청하게도 왜 그럴까? 때로는 정말로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모가 자녀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연인이 연인에게 화를 내는 것 중 상당 부분은 이런 마음에서 나온다. 물론 모든 화가 선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단순한 분풀이, 상처받은 자존심,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선을 지키라는 경고, 잘못에 대한 가르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화 뒤에는 고통받는 인간이 있다. 완벽하지 못한 때로는 자신도 어찌할 바 모르는 감정에 휩싸인 인간이 있다.
그래서 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다. 그 화 형태에 휘둘리지 말고, 그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사람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이 화 뒤에 어떤 아픔이 있을까?" "내가 정말 잘못한 부분이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필요하다. 만약 그 화가 듣는 사람에게 화상만 남긴다면 말하는 사람도 침묵해야 한다. 아무리 선의에서의 화라 하더라도, 그게 상대방에게 상처만 주고 아무런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폭력이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침묵할 줄도 안다. 자신의 분노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분노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아예 삼킬 줄도 알아야 한다. 말하는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때로는 참는 게, 기다리는 게, 다른 때를 택하는 것이 더 큰사랑이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 정말 가까이에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공기를 본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기는 투명하고 냄새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하지만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단 몇 분도 살 수 없다. 행복도 그렇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우리는 그게 거기 있다는 걸 놓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안도감, 따뜻한 차 한 잔의 포근함, 친구와 나눈 웃음, 책을 읽다가 문득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들 이런 작은 것들이 행복이다. 하지만 너무 평범하고 소소해서 이런 걸 행복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행복을 멀리서 찾는다. 더 많은 돈을 벌면,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더 멋진 연인을 만나면, 더 큰 집에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얻고 나면 또 다른 더 큰 것을 찾게 된다. 행복은 계속 미래로, 더 먼 곳으로 밀려난다.
사람은 행복을 파괴하는 데 창조적이다. 있는 행복을 못 보고 없는 불행을 만들어낸다. 느껴야 할 것을 보려고 하고 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려 한다. 행복은 느끼는 것인데 자꾸 분석하려 하고, 사랑은 경험하는 것인데 자꾸 정의하려 한다.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붙잡으려 하는 거다. 공기를 움켜쥐려 하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붙잡으려 하는 순간 사라진다. 대신 그냥 그 속에 있으면 된다. 공기 속에 있듯이, 행복 속에 그냥 있으면 된다.
화와 행복, 둘 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화는 불덩이처럼 뜨겁고 보이지만, 행복은 공기처럼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둘 다 우리 삶의 일부이고, 둘 다 지혜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화는 적당한 거리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고, 행복은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이처럼 감정의 불덩이를 식히고 행복의 공기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