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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드부루 Mar 15. 2024

K의 하루

2. 특별한 어머니

임신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병원에서는 K의 자궁에는 10센티가 넘는 큰 근종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의사는 임신 기간에는 태아와 함께 이 근종도 다소 커질 수 있어 조심하라고 했고, K는 최대한 안전한 출산을 위해 일원동 소재의 큰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기로 했다. 


'아가, 좁은 곳에 있게 해서 미안해, 건강히 잘 커 주렴!' 기도하는 마음으로 태교와 운동을 열심히 하며 임신기간을 보내고, 다행히 아기도 잘 태어났다. 


산후 조리는 산후조리원이 아닌 친정집에서 하기로 했다.  잘 모르는 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산모들과 지내는 것보다, 친정 엄마 곁에서 아이를 돌보고 몸조리를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조심히, 아주 능숙하게 이제 갓 태어난 아기를 매일 같이 따듯한 물로 머리, 얼굴, 몸 순으로 목욕을 시키셨다. 엄마의 딸의 아기를 닦이는 순간에도 그 먼 과거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 나는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싶었고, K에게 그 과정은 신성하게까지 느껴졌다.


산후 조리를 마치고 K는 다시 집으로 돌아 왔다. 딸과 함께..

이제는 친정엄마로부터 배운대로 아기를 씻기고 분유를 먹이고 재우는 시간들이 시작된 것이다. 


백일까지는 낮, 밤이 바뀐 아기가 K의 품을 떠나기만 하면 크게 울어댔다.  K는 밤마다 아기를 앉고 있어야 하는 고된 시간이 계속 되었다. 


백일쯤 지난 어느 날. 낮에 많이 깨어 있게 하자 아기는 드디어 온 밤동안 한 번만 깨고 또 다시 잠을 잘 잤다.

드디어 K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분유를 양껏 잘 먹으며 아기는 시간이 갈수록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이렇게 백일이 지나고 나자, 아기가 보고 싶으셨는지 K의 시댁 부모님들이 찾아 오셨다. 


당시 K의 집은 거실 하나에 방 하나였는데, K의 시부모님은 부산에서 올라와 한 달이 넘도록 함께 집에 계셨다. 


자연스럽게 K는 방에 혼자 있게 되었고, 남편, 시부모님, 아기는 거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K는 딸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어르신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니 그냥 편하게 잠을 자는 걸로 만족하며 지냈다. 


그러한 K의 생각과 달리 괴로운 하루 하루가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함께 하는 첫 기간이니만큼 이것저것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알뜰하고 살림 잘하는 방법을 끊임 없이 K에게 이야기 해 주셨다. 


'치약을 다 쓸 때면 반으로 갈라서 칫솔로 파서 써라',  '빨래를 널을 때는 가로세로로 접어 손으로 여러 번 쳐서 널면 다린 것과 같다.'  등등 놀라우리 만큼 많은 것들을 K에게 전해 주었다. 


K의 친정 엄마가 지어 준 보약이  임신으로 인해 먹지 못해 기한이 지난 채 냉장고에 남아 있었는데, 이를 본 K의 시어머니는 보약을 버리기 아까우니 시아버지가 드시도록 했고, K는 아침마다 식후에 한약 한 봉을 따듯하게 데펴서 커피잔에 붓고 커피잔 접시에 받혀 시아버지께 드렸다. 

시아버지는 정성스러운 내 자세에 고마워 하며 그 약을 계시는 동안 매일 드셨다. 


J의 주사는 시댁 어른들이 계신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였는지 거나하게 취해 들어와서는 시어머니를 붙들고 새벽이 될 때까지 자신의 속을 다 토해 이야기를 했다. 


K가 남편의 주사가 너무 괴롭다고 말하자, 시어머니는 K를 위로하는 말로, 부산에서 자신의 친구도 비슷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침에 밥상을 차려 준다 하며, 별 일이 아닌 것으로 여기며 살아야지 어쩌겠나 라고 위로하였다. 


너무 당혹스러운 경험,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계속 되자 K는 시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괴로웠다. 


그 이후로 결혼해 살면서 K의 시어머니는 의논도 없이 시아버지와 함께, 혹은 당신 혼자 올라오셔서 한달에서 한달 반을 지내다 지겨워지면 내려가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K는 점점 이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감당하기 어려운 분들이라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되자 더 없이 화가 나고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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