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드부루 Mar 19. 2024

K의 하루

3. 남편의 주사는 유전?

J에게 주사가 있다는 사실을 연애하던 시절에 알았더라면,  K는 절대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J도 당연히 그러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J의 주사는 결혼식이 끝나 신혼집에서 함께 살면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패턴이 있었다. 


K와 이야기 하던 중 알 수 없는 어느 순간에 J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한 J를 달래거나 같이 화를 내거나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침묵이 흐르고 J는 집 밖을 나갔다. 그리고 곧 이어 검은 봉지에 한아름 술을 사들고 왔다.  그렇게 시작해 그 검은 봉지를 다 비우고 또 집을 나가 한 아름 또 다른 검은 봉지에 술이 담겨져 왔다. 


술을 마시는 동안 J는 K에게 불만을 이야기하다, 자신을 한탄하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다가 울다가.. 

그 시간은 밤을 꼬박 세우고 새벽 해가 뜰 즈음 J가 지쳐 잠이 들 때까지 계속 되었다. 


때로는 아랫집에서 올라 와 시끄럽다고도 하였으나, J는 오히려 그들을 욕하고 더 화가 나서는 다 마신 맥주캔을 확 찌그러뜨렸다. 


K는 고통스러운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어서 해가 뜨기를...


드디어 J가 잠들고 나면 J가 남긴 잔재들을 다 치우고 K는 '이제 끝났어. ' 눈물을 흘리다가 출근을 하였다. 


고통의 밤이 지나 출근을 하면 회사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해야 했다.  잠을 못 잤으니 진한 커피로 속을 채우고, 밝게 웃으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전했지만, 더 없이 비참했다. 


그러면 오후쯤 어김없이 J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어? 어젯밤에는 미안했어.. 이제부터는 안 그럴께.' 

온 정신이 휘몰아치는 '화'가 올라 오는 순간이지만, K는 주위를 의식해 '알았어.' 하고 가볍게 전화를 끊었다.  또 다시 자신이 저 밑바닥에 있다는 비참함이 몰려왔다. 


K는 아기를 키우기 위해 친정 부모님 아파트 쪽으로 이사를 간 터라, 수시로 K의 부모는 대낮까지 자고 있는 J를 목격했다. K의 부모는 J에게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J가 출근할 있도록 '콩나물국'과 밥을 차려 먹이고, J는 그것을 먹고 출근을 하거나 밖으로 나왔다.  어지러진 집은 회사에서 돌아올 K를 위해 K의 부모님이 치워 놓았다. K를 위로해 줄 따듯한 김치찌개와 함께..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자 K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부장이 되었어', '미국으로 주재원 파견을 받았어.' 등등 남편 자랑을 해대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을테면 상대적으로 더 괴롭고 자존심이 상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J가 술을 마시고 잠이 들면 K는 참을 수 없는 화를 풀고 싶어졌다.  이쯤 되면 K도 온전한 정신은 아닌 상태가 되었다. K는 긴 가위를 가져다가 J가 벗어 놓은 런닝이며 와이셔츠를 갈기 갈기 찢어 J의 옆에 두었다. 

결혼 당시 찍었던 커다란 사진 액자도 마찬가지로 갈기 갈기 찢어버렸다. 


그렇게 하면 좀 화가 풀리는 것 같았다. 문제는 K의 이러한 행동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져갔다. 

어느 날은 술을 퍼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J에게 칼을 휘둘렀다. 현관문이 열리자 칼을 휘두르는 K를 보자 J는 '그래, 죽여봐라!' 하며 달려들어 칼을 뺏었다. 


K는 너무 괴로웠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살겠는가?  아기는 이미 둘이나 낳아 키우고 있는데, 남들 시선이 두려워 이혼은 자신이 없었고, 잘 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약' 밖에 없었다. K의 정신을 날 세우지 않게 할 .. 이미 K는 심한 우울증 상태였고, 병원에서 지어 온 약이 그나마 화를 줄여 주었다. 


J에게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는 걸 K는 이해하고 있었다. 


J의 어린 시절..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J의 아버지는 몇 번 만나지도 않고 9살 연하의 아내를 맞이했다. J의 어머니는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딸이었고, 나이 차이는 상관 없이 고등학교 교사라는 말에 맞선에서 만난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하였다. 


J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었다. 

J의 아버지도 밤새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시끄러운 소리가 밤새 이어졌고, 어린 J는 끔찍한 밤을 이기기 위해 온 집안의 불을 다 켜고 웅크려 있어야만 했다. 때때로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와 이를 당하는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지만, 보아야 했다. 


어린 J에게 이러한 유년의 상처는 가슴 깊히 박혀 있었다. 

평소에도 늘 낄낄거리는 코미디 프로를 켜 놓고 온 집안의 불을 다 켜 놓은 상태여야 J는 잠이 들었다. 


이러한 J를 생각하면 K는 눈물이 났다. 이미 서른이 넘은 J였지만, J안에 있는 어린 J 를 안아주고 싶었던 때도 많았다. 


K는 자신도, J도, 아이들도 불쌍했지만,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앞에 K의 일상은 점점 피폐해져만 갔다...

작가의 이전글 K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