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우울증을 이야기하다.(2)

발리에서 마지막 한 달을 보내며 쓰는 글

by 김혜원

9개월간의 유랑 끝.

발리에 도착한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안도감과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 곧 다가온다는 불안감, 언제 또 여행을 해볼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 기분이 묘했다. 발리의 첫 숙소에서 그간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더니 급기야 심한 감기로 며칠을 고생했다.


나의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세계 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그래서 세계 여행을 통해 얻은 게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가족 간의 유대감이나 나의 우울증 극복, 대단이의 장애를 함께 이해하는 과정 등 내가 얻게 될 거라고 기대했던 많은 바람들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계산을 하고 있노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누군가가 세계 여행을 가면 좋을까 대해 묻는다면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가라고 할 텐데, 그게 내가 쓴 시간과 돈에 대하여 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대답이었을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 많은 것을 포기하고라도 떠난 내 결정은 옳았어.’라고. 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가족 간의 유대감

이건 말해 뭐 하나 싶을 만큼 값진 결실이다. 함께 2-3일 치 먹을 만큼 장을 보고 요리해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비 오는 날 기울어진 창을 바라보며 함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기, 특정 나라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찾아보기나 에어로빅이나 수영 함께 하기 같은 것들을 하다 보면 우리가 가족이라는 게 감사하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 나라 출신 작가의 소설을 오디오북으로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도 늘었다.

사실 한국에서 서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 이를 테면 평소 습관이나 말투 따위로 마음이 상했었던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같다. 예를 들면 남편이 모든 서랍이나 수납장 문을 열어두는 습관은 어딜 가나 나를 짜증 나게 한다. 나는 마음의 이야기를 잘 표현하지 않고 주로 사실만 이야기하는 남편이 답답하고, 남편은 나의 대화 방식이 ‘사고를 멈추게 하는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그래서 유대감이 생겼다고 대화가 술술 풀리고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함께 갔던 장소와 많은 추억들이 대화의 소재를 풍부하게 해 준다. 그 예로 우리 가족은 자주 ‘너 그거 기억나?’ 놀이를 하는데, 침대에 옹기종기 몸을 맞대고 누운 다음 한 사람이 어느 장소에서 뭘 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놀이 시작이다. 이야기를 꺼내면 듣는 사람들은 그 나라를 맞히거나 그때를 떠올리며 웃는 것이다. 같이 크게 웃을 일이 많아 좋다. 떠올리는 사건들은 웃긴 일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아찔하거나 심하게 우울하거나 힘들었거나 했던 것들이 더 많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니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이들이 인생을 살면서 힘들고 지치고 우울해도 지나고 나면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온다는 걸 알면 좋겠다.


대단이의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대단이의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을까? 대단이에게 여행 전보다 가족들이 너를 더 많이 이해해 주는지 물어봐야 제일 잘 알겠지만 대단이가 좋게 말해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한국에서 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했을 때를 떠올려 여행 기간 내내 잘못된 행동이나 고쳐야 할 것들(예를 들면 급식실에서 자신이 다 먹으면 그냥 놀러 나가거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할 때 떼를 부리는 등)을 다양한 상황에서 연습해야 했기 때문에 대단이는 어쩌면 더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조금씩 성장하는 대단이를 보았기 때문에 자꾸만 ‘조금만 더’라고 욕심이 났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것저것 압박을 준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을 견학하면서 입장줄이 길어도 그대로 기다렸다. 아이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배워야 하는 것이기에 일부러 연습을 했다. 혹시 새치기가 '장애의 특권'이라고 생각할까 봐. 박물관에서 한국어 번역 가이드북이 없다고 울며 떼쓸 때는 감정을 받아주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인지하게 하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해도 과감히 나와 설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단이의 장애보다는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자주 보았고, 그래서 더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것도 못하니 얘는 안될 거야.’라고 으레 과소평가했지만 여행에서 대단이의 장애는 사실 큰 문제가 안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생각보다 너무나 대견했던 적도 있었고, 대단이의 무한 능력이 보일 때도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건 처음 배운 짧은 언어들로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네는 건 우리 가족 중 대단 이뿐이었다. 그리고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자기 생각을 가끔 이야기할 때마다 아이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의 우울증

나의 우울증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에서 심한 우울감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내가 얼마나 ‘치유’되었는지 내 마음을 자꾸 들여다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전히 우울한 기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행 중에는 바쁘게 다니기도 했고 대단이의 장애가 여행 내내 문제가 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으므로 한국에서처럼 심각한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하루하루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잘 것인지 아주 원초적인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고 결정 또한 한번 내리면 후회할 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달 반을 지내다 보니 한국에 돌아갈 걱정이 태산이다. 대단이는 학교에서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학교 생활 하려면 부족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떠나기 전처럼 퇴근과 동시에 센터들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전쟁하듯 견뎌야 하겠지. 듬직이는 1년 공백을 어떻게 메꾸나. 남들은 선행하며 이미 수학이며 영어며 저만치 앞서 있는데 잘할 수 있으려나. 한번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괴로운 상상을 하게 되고 한국에서처럼 숨이 안 쉬어지는 일도 있었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울증은 대단이 때문도,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과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라 나의 막연한 불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 발리에서, 편안한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음에도 한국처럼 다시 숨이 쉬어지지 않는 상황이라니. 깜짝 놀랐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를 돌보지 않고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상황을 원망했던 것이다. 내가 힘들면 아이의 장애가 더 좋아질 거라는 황당한 생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더 나를 괴롭혔다. 원하는 공부를 해보고 책도 읽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차도 마시며 행복하고 즐거운 것들을 하면 꼭 그 벌이 우리 대단이의 어려움으로 나타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큰 아이에 대해 많이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라고 스스로 더 다그쳤다.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하며 나를 비난했다. 치료실이나 병원을 다니며 연로한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아직도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엄마가 가여웠고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늘 안절부절못했다.


여행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나에 대해 온전히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여행지 간의 긴 이동시간, 아이들이 잠자고 난 후, 아니면 새벽, 또는 광활한 대지나 초원을 끝없이 달릴 때, 미술관에서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이나 기분을 온전히 살펴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하고 싶은 것들, 행복한 순간을 적어두니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예전 한국에서처럼 극심한 우울감에서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무력하게 지낼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우울해지면 약도 잘 챙겨 먹고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뭔지 꼭 찾아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불안감은 가족의 유대감 안에서 많이 안정되었음을 느낀다. 한국에서 다시 바쁘고 힘든 생활을 하더라도, 여행지에서 늘 그랬듯이 집에 돌아오면 마주 앉아 함께 저녁을 먹고 옛날 예능을 보고 웃으며 어떻게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일주일에 한 번은 유럽에서처럼 각자 먹을 음료수와 음식을 차려놓고 먹기로 했다.) 이렇게 또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되겠지. 그러다 보면 또 함께 두 번째 세계 여행 떠나자는 약속을 지킬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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