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의 시작과 끝에서 우울증을 이야기하다.(1)

by 김혜원

한국에서 나는 극도로 우울한 상태였다. 직장 생활을 하며 가정도 돌보는 일도 벅찼지만 대단이 의 장애 때문에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여느 부모들처럼 공부시켜서 대학도 가고 직장 생활도 하고 결혼도 하는 삶을 살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아이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평범하게 살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 언제까지나 돌봄이 필요한 아이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중압감 같은 것이 가슴을 짓눌러 숨이 안 쉬어질 때도 있었다. 대단이 의 학교 생활은 엉망이었고 더불어 내 직장인 학교 생활도 지옥 같았다. 칠순이 가까운 엄마가 나를 돕고 있는 것도, 직장 동료의 안타까운 시선도, 대단이 의 문제를 모른 척해주는 배려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벽한 나의 삶에서 이 모든 불행은 다 대단이 의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울증 약을 먹었지만 그것도 먹다 말다 했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무력감에 지쳐 아무것도 못하고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건망증이 심해 황당한 실수를 하기도 했다. 안절부절못하고 밤에 잠이 안 오는 날이 지속될 때쯤 남편이 결단을 내렸다.

"하자. 우리가 꿈꾸던 것. 지금 해야 할 때야."

막연하게 생각했던 세계 여행이 현실이 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결혼하면서 언젠가 세계 여행을 가자고 매달 돈을 저축했지만 아이의 장애 앞에서 우리 부부의 꿈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준비하는 것도 가는 것도 다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지냈다. 아니 견뎌냈다. 그동안 남편은 세계 여행 루트를 짜고 관광지와 교통편을 혼자 검색하며 지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남편과 여행 프로그램을 돌려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하루의 끝이었다. 하루를 견뎌낸 나에게 ' 미국을 먼저 갈까, 남미를 먼저 갈까'라는 질문은 사실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남편의 흥까지 망치고 싶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남편의 우울 극복 방식이 현실 회피였다 싶다. 그래도 좋은 점은 하루 중 대단이 의 장애 외에도 대화거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문제에 매몰되어 해결되지 않으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와 달리 남편의 장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반복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고 우울할 때마다 우리에겐 '파라다이스'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제일가고 싶은 장소를 찾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냈다. 밤에 여행 프로그램을 돌려보며 맥주를 함께 마시고 그곳에 우리 가족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버티니 어느덧 방학이 되었다.


세계 여행 준비로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해야 했다. 우선 편도 비행 편과 미국 서부동부까지의 비행 편을 예약했다. 미국에서 갈 숙소, 미국에서 쓸 차 렌트, 환전, 각종 카드와 버튼식 기계로 된 공인인증서 발급(휴대폰에도 저장.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각 국 입국 시 필요한 서류나 예방접종 등등 세계 여행을 위해 직접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떠나기 전 2달간은 정신없이 보냈다. 그중 무엇보다 먼저 했어야 했던 일은 모두의 치과 검진이었다. 앞으로 10개월간 치과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없으니 모두 한 번씩 점검이 필요했다. 특히 남편은 조금 더 일찍 치과에 갔어야 했는데 떠나기 한 달 전에 병원에 가서 다 치료하지 못한 치아가 있었다. 그리고 나의 유방암 검사. 건강검진에서 재검사가 떴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6개월에 한 번씩 점검하라고 하는 거다. 이런. 둘 다 찜찜한 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지만 이미 비행기표는 샀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을 찾아뵙거나 그간 연락하지 못한 친척들과 인사하는 일도 할 일이었다. 또 대단이 가 돌아왔을 때 받고 싶은 치료나 수업을 점검하고 인기 있는 것들을 미리 대기해 두는 것이 필요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나 서울장애인복지관, 장애인 수영 수업은 인기가 많아서 기본 대기만 약 1년 정도라고 들었기에 미리 진료를 보고 대기 걸어두었다. 장애인 증명서와 가족관계 증명서, 정신과 약 영문 처방전과 진단서, 비자 발급 등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있는 음식들 다 먹어 치우기. 그리고 별건 아닌 것 같지만 냉동실에서 벽돌이 된 음식들을 처리하고 각종 소스류가 들어있는 냉장고 비우기도 꽤 성가시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왜 그렇게 소스가 많은지 의문이다. 정작 먹는 건 케첩 정도? 배달 음식에서 받은 소스들은 앞으로 도토리 모으듯 모으지 말자.) 하루하루 2-3일 정도만 먹을 양을 사서 싹 먹고 버려야 했기 때문에 장 보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세계 여행을 위해 가방을 사러 다니고 필요한 물품 목록을 작성하고 짐을 20번도 더 싸고 풀었다. 꼭 필요한 것 같은데 짐이 될 것 같은 물건은 과감히 그곳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4계절 옷이 다 필요했기 때문에 주로 겨울, 가을 옷을 싸고 여름옷은 현지에서 구입할 마음으로 티셔츠 두어 장 정도 챙겼다. 아이들 책, 전자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 신청이나 가입 등 다 준비한 것 같은데 계속 더해야 할 것들이 생겨나 떠나는 날 아침까지 정신이 없었다.


아무튼 남편과 아이들과의 '건강한' 가족 관계를 꿈꾸며 세계 여행길에 올랐다. 특히 나의 우울증을 좀 들여다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불행하다고 있지만 말고 우리 가족 모두 대단이 의 장애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함께 부딪혀보자라고 생각했다. 장애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 가족이 평생 함께 할 테니 서로를 이해해 보자는 거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될 거라는 확신 같은 것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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