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은(1)

by 김혜원
가득 채워진 에너지였을까.


세계여행을 마친 건 2023년 겨울이었다.

2024년에는 우리 집에 큰 변화가 있었다. 집도 이사를 하고 두 아이를 전학시키고 나도 새 학교로 전근을 가야 했다. 남편은 하던 한의원을 팔고 떠났기 때문에 새로 시작할 지역을 찾는 중이었다.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긴장된 상태로 새 학기를 맞이하였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큰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많이 긴장한다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안 그런 척 하지만 사실은 불안이 높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두 아이의 학교 적응을 생각하면 입이 바짝 말랐다. 나도 1년 간 휴직을 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면 잠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빨리 새 학기가 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특히 대단이가 정말 많이 안정되었고 언어도 늘었기 때문에 세계 여행 전의 상호작용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 눈에 보였다. 여행 전 꾸준히 해오던 언어 치료 선생님과 만나서 다시 수업을 시작할 때 선생님이 진짜 많이 성장해 왔다며 놀라워하셨다.


새벽까지 새로운 학급 경영을 정리하고 새 학기 자료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생각했다가 준비하고 연습시키고, 이것 했다 저것 했다 커피를 10잔은 마신 것처럼 각성 상태가 계속되는 것 같이 행동했다.


세계 여행에서 얻은 큰 수확 중 하나는 무력감과 우울감에서 벗어나 무언가 하고 싶은 에너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했던 일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세계 여행의 기록을 남기다가 다시 읽어보니 중학생이 쓴 글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여행기를 중단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이 그냥 흘러가는 것도 아까웠다. 아들 덕분에 남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으니 장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아니면 장애는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글로 진심을 전달하는 능력이 정말 갖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 중 또 한 가지는 고기능 자폐 아들의 학습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들은 양말 하나 신는 것도 몇 개월에 걸쳐 연습해야 하고, 무엇이는 가르치지 않은 것은 저절로 아는 법이 거의 없다. 때문에 내가 했던 시행착오,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 바르게 가르치는 방법을 기록해 두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고 교단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좀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강단에서 2년간 강의하던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AI 관련 교수 학습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과목이었는데 세계 여행으로 과감히 포기했어야 했기 때문에 좀 미련이 남기도 하다. 워낙 빠르게 발전하니 도태된 것 같아서 공부를 좀 하고 싶은데 여기저기 우물 팔 준비만 하고 있어 한 우물에서 물이 나올까 싶다.


문득 아들의 머릿속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고 이것저것 하는 아이. 늘 내일이 기대되어 잠이 안 온다고 말하는 아이. 그래서 그렇게 각성이 높은 거라면 너는 늘 지금의 엄마와 같겠구나.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어떤 우물을 팔 것인지 이야기해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계속 그렇게...















이렇게 지내면 잘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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