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행이 남긴 것은(2)

by 김혜원
학교 부적응.

"어머니, 아이가 문제가 많아요. 세계 일주 동안 생활 습관이 하나도 안 잡혀서 학교 생활이 어려워요."


뭐라고?

왜? 대체 무엇 때문인데?

너는 더 성장해서 왔는데? 훨씬 상호작용도 잘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남을 배려하는 것도 많이 늘었는데, 왜?

그동안 집단생활을 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받는 자극이 많아서 등등 많은 원인이 지적되었다.

2월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부푼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나는 더 조급해졌다. 돈, 시간, 노력을 들여 세계 일주를 했으니 긍정적인 성과를 얻어야만 되는 거였다. 부적응 이유를 여행 때문이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여행하면서 기다리고 참는 법, 텐트럼(떼쓰며 분노발작) 한 후 바른 행동 배우기, 2학년 공부하기 등 여행을 그냥 놀러만 다닌 건 아니었는데.

나는 동학년 선배 선생님께 고민을 늘어놓다가 우는 일이 잦아졌다. 정말 인정할 수 없었다. 선배 동료 교사는 세계 여행 하고 난 후 왜 좋은 결과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며 무엇이든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분명 에너지는 가득 찾는데 바닥에 흘러넘칠 뿐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소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아이의 학교 생활은 엉망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수업이 아니면 특수반에 가거나, 자신만 빼놓고 재미있는 수업을 할까 봐 약속을 어기고 원래 자기 반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주변 정리가 안되어서 교실 바닥에 자신의 물건을 늘어놓고 수업 중 아는 내용이든 아니든 발표하거나 큰 소리로 말해서 방해가 된다고 했다. 점차 학교 생활을 하면서 분노 발작을 하는 일이 늘었고, 교실 밖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보조 인력을 투입하기를 원하셨지만, 아이는 보조 선생님이 옆에 있어서 다른 친구들이 자신에게 안 온다며 거부했다. 자신은 도움이 필요 없는데 왜 옆에서 도와주려고 하냐며 밀치거나 못 들어오게 문을 막기도 했다.


학교는 경직된 곳이었다. 나는 학부모일 뿐, 동료 교사로서 나를 이해해 주는 곳은 아니었다. 특수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도 학교도 아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집에서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만 했다. 나는 같은 교사이니 교사와 학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런 아이를 맡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동학년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를 맡는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부모로서 나는 무엇을 도와야 할까를 고민하였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조정하고 치료를 더 늘렸다. 공부를 못하면 혹시나 수업 중에 더 나가지는 않을까 해서 학습지도 하고 영어도 시켰다. 학습만큼은 따라와 주는 아이였기 때문에 하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윽박질러가며 가르쳤다. 공부라도 잘하면 무시는 안 당하리라.

아침에는 의식을 치르듯 화장실을 가고(긴장하면 변 실수 할까 봐), 입 냄새 날까 봐 이 닦고 가글을 또 시켰다. 향으로라도 사랑받으라고 옷에 섬유 유연제 향을 뿌렸다. 집중하면 침이 흐르기도 해서 회색 옷이나 하늘색 옷은 안 입히고 맨날 검은 옷만 입혔다. 그리고 학교에 가기 전까지 어제 혼난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서적 학대나 다름없다. 학교도 집도 어느 누구 하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친구관계까지 대단이에게 가혹했다. 처음 2학년 들어가서 반 친구들 이름을 하루 만에 외우고, 놀이터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놀자고 했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대단이가


"엄마, 애들한테 놀자 하면 친절하게 저리 가줄래? 그렇게 말해. 나는 알았어. 해. 그러면 아이들이 00 갔다! 예!라고 외친다."


라는 것 아닌가. 가만 보니 놀이터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홍해 바다 갈라지 듯 아이들이 싹 피하는 게 보였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대놓고 표현도 했다.


"00 어머니시죠? 저 같은 학교 학생인데요, 쟤 때문에 급식실에서 좀 불편했거든요. 사과해주실래요?"


라든가,


" 야, 00이 왔다. 개 짜증 나!"

" 00이다. 도망가자! 하하하"


그러면 아이는 함께 가자며 도망가는 아이 뒤를 쫓아갔다. 아이들이 싫다고 도망가다가 넘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를 데려다주는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쫓아올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아이들 사이에서 놀이처럼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선생님께 이야기하되, 선생님도 방과 후에 일어난 일들까지 지도하시는 어렵다는 것, 나도 교사라 잘 알고 있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부족하니 그 아이들도 친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도 나는 아이 편이 아니었다. 선생님께 나는 선생님과 같은 편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집중했다. 속상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떠올리려고 생각했고 결국 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하였다. 아이 시점으로 편지를 쓰는 거지만 사실은 부모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 놀지 않아도 좋으니 만나면 인사라도 받아주라고.


편지의 힘은 대단했다. 멀리 도망은 가지만 아이가 인사하면 받아주는 아이도 생겼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엄마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보다는 연민이었다. 놀이터에서 아이랑 깔깔대며 놀고 있는데 같은 반 엄마라면서 갑자기 "생각보다 밝으시네요. 힘내세요."라는 것 아닌가. 대체 생각을 어떻게 했길래 칭찬을 들었을까.


자폐 아이와 세계 일주가 발달 장애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되길 바란 건 나의 착각일까? 완전히 틀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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