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만 울고.

by 김혜원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동안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특수반에 가는 시간 등 학교의 환경을 바꾸고, 여러 치료사들의 조언에 따라 집에서도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달리 해보았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대할 때 어떻게 하는지 서로 모니터링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생각보다 아이가 빨리 안정을 찾고 일주일은 평온함을 가졌다. 그런데.. 결국 일주일 만에 지도하던 담임 선생님의 팔을 물은 것이다. 4교시까지는 잘했는데, 선생님이 5교시에 다른 친구들을 조용히 시키며 혼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대단이는 "우리 친구들을 자유롭게 놔두세요"라며 소리치다가 텐트럼이 온 거다.


다급한 교감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다시 과호흡이 와서 급한 대로 물 없이 자나팜 약을 삼켜야 했다. 귀욤이의 정기진료가 있던 날이었기에 병원에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아이에게 더 독한 정신과 약이 처방되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아이가 먹어야 하는 약은 한주먹이 되었다.


병원에서 달려 곧장 선생님을 뵈러 갔다. 나는 그냥 학부모가 아니라, 동료 교사이기도 하니 참 입장이 더 난처했다. 우리 아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선생님께, 학교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인지 한꺼번에 아는 것이 참 고역이었다. 뭐라도 붙잡고 원망이라도 하면 마음이나 편할까. 나는 각자의 입장에서 모두 이해했고 또 이해해야 헸다. 담임 선생님 얼굴을 보니 울음부터 나왔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과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선생님이 내 마음을 다독여주셨다. 한동안 특수반에서만 지내는 방법도 논의되었다. 하루에 한 시간만 하고 집에 가는 거다.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데 수업 일수만 채울 만큼 결석과 조퇴를 하는 방안도 나왔다. 면목이 없어서 일단 6월 말까지는 학교를 보내지 않고 7월은 수업일수라도 채워야 하니 조퇴든 뭐든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같은 일이 반복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2학기 휴직을 하고 가정 학습이 가능하다면 하겠다고도 말씀드렸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학교를 안 보내고 싶었다. 학교를 가지 않으면 행복한 내 아이가 불쌍하기도 했다. 약을 바꾼 들 효과도 미미하지만 뭐라도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학교 갈 때 약을 한 움큼 먹어야 하는 아이, 교실 안에서 외로운 섬처럼 있을 아이, 친구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돌아오는 차가운 시선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아이, 안녕하고 손 흔들어도 웃으며 인사해주지 않는 친구들. 그리고 감각 예민에서 비롯되는 괴로운 상황들. 엄마만이 이해해 주는 불편한 상황들이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아이의 눈빛만 봐도 내가 학교에 가 있으면 이런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차마 선생님께 꺼내지 못했다. 교사 엄마이기에 학교 입장에서나 담임 선생님 입장에서 불편할 것은 당연했다.


내 아이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하면 안 된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다.'를 가르쳐야 하는 아이이다. ' 손을 씻을 때에는 물을 틀고 비누칠을 하고 헹구고 물을 잠근 후 수건으로 닦는다.'를 순서에 맞추어 연습해야 하는 아이이다. 양말 두 짝을 한 번에 신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한쪽만 신고 다른 곳으로 뛰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아는 친구를 대할 때, 모르는 사람을 대할 때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하는지 연습해야 하는 아이다. 불안한 음악이나 소리가 나왔을 때 이게 너를 공격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해주어야 하는 아이다. 하지만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보며 '해의 꽃잎'이라 부르고, 친척 결혼식에서 '사랑의 서약' 축가 노래가사를 들으며 감동적이라고 펑펑 우는 아이다. 엄마가 실수로 애벌레를 죽였을 때 천국에 못 갈까 봐 걱정하고, 모로코 페스 가죽 염색터에 가서 죽은 동물을 위해 눈물울 글썽이며 기도하는 아이다. 이집트에서 만난 불쌍한 거지 아이에게 자신의 빵을 나누어 주고, 함께 시원한 박물관에 들어가게 표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다. 이런 아이가 갈 학교는 없다,


특수학교를 가고 싶지만 자리가 없다. 더 중증아이들을 선별한단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아이가 얼마나 더 중증인지 입증해야 한다. 어떤 엄마는 면접 전날 잠을 안 재우거나, 약을 안 먹이기도 한단다. 대답을 절대 하지 말라고 시키기도 한다는데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갈 곳이 없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이는 지능은 정상이다. 이게 더 최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타인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행위는 무조건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나 다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장애를 가진 아들이 태어나기 전 나는 "장애인이 그저 나에게 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존중해.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니까."라고 했더랬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참 멋져 보였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누군가 나한테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해만 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은 참 모호하고도 비장애인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꼭 신체적, 행동에서 비롯된 불편감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불편하면 해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 반대로 우리 아이입장에서 특정한 소리나 감각, 상황인지가 잘 되지 않는 경우,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서툼, 타인의 행위와 말이 이해되지 않는 '불편함'으로 비장애인들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 상황일지도 모른다. 장애인들은 이런 것들을 감내하면서 사회에 맞추어야 가야만 그들과 함께 살 자격이 주어진다. 누구도 친절히 가르쳐주며 연습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 되면서 장애인들의 모습은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집에서 숨어서 지낸다.


함께 살아갈 자격을 얻기 위해 타해만은 고쳐야 한다. 어떻게든 고쳐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먼저 하늘로 가더라도 우리 아들이 살 수 있다. 오늘까지만 울고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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