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고수(2)

-대단이와 단둘이 나고야를 가다-

by 김혜원

나고야성


나고야성을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했다. 검이 가득 꽂힌 담을 보며 보안이 철통 같았네! 감탄한다. 갑자기 자기가 만든 레고의 자물쇠이야기, CCTV 감시하는 내용, 마인크래프트으로 대화가 흘러가긴 했지만. 그러다 다시 레고 마인크래프트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장난감 가게에 가야겠다는 이야기까지. 기승 전레고다. 머릿속에 다시 루프가 작동했다!!!


세계 여행 중에도 늘 이런 식의 루프가 있었다. 어딜 가나 결론은 장난감 사달라 아니면 배고프다, 영상 보겠다로 마무리된다.

여행 초기, 미국의 엔텔로프 캐니언에 갔을 때 일이다. 엔텔로프 캐니언은 가장 기대하고 있던 곳이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연속해서 찍었을 때 같은 곳이 분홍색, 주황색, 파랑빛을 띠기도 하는 몽환적인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투어를 통해서만 갈 수 있었다. 팀을 이루어 가이드 한 명이 절벽 틈사이를 데리고 가는 것인데, 혹시나 대단이가 팀원들에게 방해되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 텐트럼을 일으킬만한 다양한 요소들을 미리 생각해 놓아야 했다. 좁은 투어 버스에서의 지루함이나 불편함? 절벽 틈에서 느낄 공포 요소? 가이드의 느릿한 안내를 참지 못한다면? 대단이의 끝없는 생각 순환 고리가 작동하면?


이런저런 걱정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투어 버스 안에서 아이의 생각 루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보고 싶어, 티티 체리 볼 것이 있는데 나와의 약속을 꼭 지킬게 한 번만... 심심한데 뭐 할 것 없나? 유튜브 보고 싶어.... 무한 반복... 아. 또 시작되었네. 나는 생각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노력했다. 지나가는 풍경, 사막 여우에 관한 이야기, 사막 모래의 색과 느낌, 오늘 갈 곳에 대해 아이의 귀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도착 시간이 되기 만을 기다렸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또 유튜브 이야기를 하다가 하며 그 시간을 잘 견뎌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아이는 사진 찍을 틈을 주지 않고 암석 틈 사이로 빠르게 달려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빨리 달려가 아이의 옷을 낚아채듯 잡고 투어가 끝날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가이드는 하나하나 암석의 생김새, 여기에서 자란 식물, 멋진 사진을 찍는 포인트들을 안내하며 팀원들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함께 간 팀원들 중 한 여자는 카메라 작동법이 서툴렀는지 이리저리 찍어보다가 가이드에게 하나하나 코칭을 받고 있었고 한 커플은 애정표현과 함께 서로의 사진을 백 장쯤은 찍는 것 같았다. 대단이는 큰 소리로 드래건 파워를 외치거나(무서워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방어하는 거였다. 몰랐다.), 사진 찍는 틈에 요리조리 빠져나가려고 하였다. 여기에서 나가야 해 라는 루프 작동. 제발.. 어서 끝나라.라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나에게 말을 건다. 어디에서 왔어? 나는 한국.이라고 말하고 다시 도망가려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가이드가 이곳에 대해 어떻게 알고 왔어?라고 물었는데(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고 말았다.

우리 아들은 자폐예요. 나는 우리 아들이 진정하고 피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에요. 미안하지만... 이렇게.. 그러니까 나한테 말 더 이상 걸지 말라고...


남편이랑 첫째는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기분이 정말 별로였다. 내가 왜 이 멋진 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었다. 아이도 역시 싫었던 건 아닌가.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나중에 대단이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지하주차장 같아서 무서웠단다. 그랬구나. 그랬어. 빛이 적당히 있어 완전히 폐쇄된 곳이 아니라서 무서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우리는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정말 필수가 아니고서는 하지 않았다. 조금 힘들고 덜 보아도 우리가 찾아서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리고 아이들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다녔다. '세계 여행까지 왔는데 이것도 못 보고 가네'라는 말은 우리 사전에 없다. 욕심을 버리고 오늘 하루 즐거웠나 이것만 생각하며 다니기로 했다.


이런 루프의 악몽이 떠올라 나고야 성에서는 계속 넓은 곳을 찾아 걸었다. 그러면서 내가 주제를 이리저리 바꾼다. 웃긴 얘기랑 노래도 불렀다. 대단이의 여행 스타일은 팀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이 가고 싶은 곳, 느끼고 싶은 그대로 하는 진정한 자유 여행이어야 한다. 이런 여행의 고수 같으니라고!!



추신! 대단이는 다른 사람과 다른 독창적인 생각을 해서 놀랄 때가 있다. 지브리 파크에서 가오나시와 사진 찍을 때 사람들이 옆에 나란히 앉아서 찍는데, 대단이는 가오나시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는 그 상황 자체에 몰입! 자신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 순간 줄서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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