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고수(1)

아이와 단둘이 나고야에 가다.

by 김혜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번 여행은 대단이의 가을 방학(우리 학교는 멋진 가을을 만끽하는 방학이 있다!)을 맞아 단둘이 나고야를 가기로 했다. 세계 일주를 했지만 아이와 둘만 여행을 가본 적은 없어서 여행만 생각하면 자꾸 긴장이 되었다.


여행에서 나는 아이의 텐트럼 관리, 밀착 케어 담당이었다. 그리고 그 외 길 찾기, 교통편, 맛집 찾아가기 등은 남편이 했다. 물론 자기 전에 함께 여행지를 고르고, 숙소나 맛집을 검색해 놓긴 하지만 자유 여행이다 보니 변수가 많아 그때마다 남편이 임기응변으로 해 나가야 할 일이 있었다. 계획했던 일이 있어도 아이가 지치면 우리는 집에 있고 남편이 나가서 먹을거리를 사 오거나 필요한 것들을 구하러 다녔다. 사냥과 채집으로 연명하던 구석기인들이 이렇게 지냈을까. 아이를 돌보며 음식을 구해오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을 때마다 옛날 여자들은 이렇게 지냈겠지.


그런데 이번만큼은 내가 온전히 해야 한다. 성별이 다르니 화장실도 마음 편히 다녀오는 게 일이고, 내가 길을 찾는 동안 아이가 잘 기다려줄지도 걱정이었다. 이러다 숙소도 겨우 찾아가서 숙소 내에만 3일 내내 있게 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길과 교통편을 수십 번 돌려가며 지도를 익혀 놓고 갈 곳들을 구글맵에 저장해 두었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 새벽부터 4년 된 나의 휴대폰이 이제 곧 수명을 다하려는 것이 아닌가. 화면이 먹통이 되면 전원이 켜지지도 꺼지지도 않는 상태가 되었다. 휴대폰을 툭툭 쳐서 어찌하다 보면 살아나고 또 잘 되다가 어느 순간 느려지고 하니 이것만 믿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여권, 돈, 카드, 영문 장애인 증명서를 수시로 확인했다. 일단 이것만 있으면 집에는 돌아올 수 있다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내 걱정은 정말 기우였다. 이번 여행에서 대단이는 한마디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여행지에서 대단이는 전혀 딴 사람이었다. 세계 일주 때 보았던 아기가 아니었다. 그 새 훌쩍 큰 건지, 아니면 내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건지 아무튼 얘는 '여행 체질'이었다.

일본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을 열심히 듣고 엄마한테 내릴 역 알려주기, 엄마가 헤매고 있을 때 구글 맵 켜서 길 찾기, 한번 가본 길은 연결된 골목도 기억했다가 엄마 길 찾아주기!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금방 배운 일본어로 인사하기.(이건 한국에서도 해서 낯선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기를 가르치지만, 여행지에서는 모두 반갑게 인사해 준다.)


그랬다! 우리 아들은 시각적 학습자였다. 오히려 길치인 나는 구글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길 따라가기를 하고 있는데 아이는 한번 지나간 길은 기억하고 있다가 나를 이끌었다. 간판, 길 이런 것들이 저절로 익혀지는 건지 그렇지 못한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내친김에 내일 갈 곳도 정해보라 했다. 물론 꼭 가야 할 곳 몇 군데는 이야기해 주고, 어떻게 갈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꼭 "엄마 꼭 데려가. 엄마는 헤매는데 너는 길을 잘 찾잖아."라고 해주니 아이 미소에서 뿌듯함이 배어났다.


동전 지갑도 맡겼다. 동전을 써서 계산할 때는 너 담당이라고 했더니 계산대 앞에서 동전을 늘어놓고 물건도 사고 지하철 표도 끊는다. 물론 내가 "아유, 대단이 없으면 여행도 못하겠네. 동전 240엔 좀 줘봐." 하며 할리우드 액션을 해주긴 했지만. 그러면 "내가 없으면 안 되지"하며 너스레를 떤다. 이번 여행을 하며 아이에게 역할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임지고 담당하는 부분을 주니 훨씬 더 잘 해낸다. 책임지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해서 해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엄마인 내가 해주니 반발이 있다. 책임은커녕 될 대로 대라고 텐트럼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 일주에서 아쉬운 몇 가지 중 하나다. 못하게 통제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는데.


하루에 만 오천보~ 이 만보를 걸으니 8시만 되면 잠이 쏟아진다. 우리 여행의 특징은 오전부터 부지런 떨고 저녁 6시 이후에는 호텔에서 휴식하는 거다. 아이 체력이 방전되면 짜증이 몰려오기 때문에 반드시 이건 지켜주어야 할 규칙이다. 7시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아이에게 텐트럼을 허락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걸 굳. 이. 하고 싶다면 4시부터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 간식을 주고 6시부터는 유튜브도 허용하며 아이와 타협을 해야 한다.(안될 때도 있다.) 아이는 정말 '모터 달린 것'과 같이 빠른 걸음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 어른인 나도 따라다니면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는 것 같다.

그래서 되도록 6시쯤에 저녁을 사서 호텔로 돌아온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시키고 좋아하는 티브이와 유튜브를 보면서 맛있게 먹으면 세상 행복한 얼굴을 한다. 그리고 8시에 취침.

그러다 보니 여행지마다 아까운 시간들이 좀 아쉽게 느껴졌다. 근사한 밤거리 야경을 감상하고 거리 카페에서 맥주도 한잔 못하는 게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지는 거금을 들여 좋은 호텔에 묵었다. 그러다 보니 따로 어디에 나가지 않아도 침대 위에 누어 보는 야경이 일품이었다. 아이가 잠들면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도 하고 야경을 보며 맥주도 마셨더니 힐링 그 자체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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