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날.

by 김혜원

오랫동안 산타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교사 카페에서 산타샘을 모집한다. 뜻이 있는 선생님들이 신청하면 전국 보육원 아이들을 1:1로 매칭한 후, 아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을 받아서 들어주는 것이다. 이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티켓팅하듯 재빨리 신청하지 않으면 금방 마감이 되어 못하게 된 경우도 많다. 운 좋게도 8년의 시도 동안 5번의 기회를 가졌다.


이번에도 두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즐거운 쇼핑을 했다. 한 아이는 중학생인데 향수를 받고 싶어 했고, 한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기모 후드 집업(너무 얇고 싼, 인터넷 사진에서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엄마라면 사주지는 않았을 웃이었다.)을 원했다. 쿠폰을 털어 알뜰하게 사면 정해진 금액(이건 아이들마다 비교할까 봐 모든 선생님들이 통일했다.)내에서 다른 선물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중학생 친구에게는 립밤을, 초등학생 아이에게는 엄마 마음으로 더 따뜻한 후리스를 사서 포장했다.


예쁘게 포장해 놓고 내일 택배로 보내야지 하고 있는데 산타샘 카페에서 연합 뉴스 인터뷰에 응할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참여해 주시는 선생님들 모두 훌륭하셔서, 아동 매칭에는 그렇게 빠르게 마감되지만 나서는 일에는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다시 한번 더 올라왔다.


순간 무엇에 홀렸는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 떠올라 신청해 버렸다. 카메라에 모습을 비치는 것은 걱정되지만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늘 선물을 보낼 때마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으며 정말 즐거울까를 생각했다. 혹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남들과 비교하며 힘든 마음으로 지내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대단이의 장애를 받아들여야 했을 때 느꼈던 내 마음의 지옥을 떠올렸다. '왜 나한테만'이라는 마음 때문에 행복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괜히 심술이 났다.(내가 티브이 육아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한 삶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면 행복한 것 없이 늘 불행하기만 한 삶도 없다는 것도. 그러니 비교해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냥 하루하루 한 번이라도 웃었다면 그날은 잘 지낸 날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특히 중고등 학생들에게 선물을 보낼 때 우리 대단이 이야기를 하며 정성껏 편지를 써주곤 했다.

그래서 인터뷰가 내가 매칭받은 아이들 외에도 이런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다. 카메라 앞에 나서는 것이 어색해서만은 아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엄마랑 전화 통화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인터뷰를 통해 나를 동정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고 했다는 것을. 당신들이 보는 나의 삶이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생각보다 밝으시네요.'라는 어리석은 말을 제발 하지 말라고. 도대체 생각을 어떻게 했길래 장애아이를 둔 엄마의 이미지는 '밝으면 어색한' 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쓴 편지는 나를 위안하려고 쓴 것이었나. 결국 나조차 아이들이 '불행한 마음을 가질 거라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대단이는 나보다 낫다. 이집트에서 구걸하고 있는 또래 친구에게 그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주고 웃어준다. 배고프다는 아이 손에 자신이 먹던 물을 그대로 주고 가방에서 꺼내 빵도 준다. 그리고 친구 할래? 물어본다. 그 아이가 웃으니 아이 손을 잡고 신나게 걷는다. 시원한 박물관에 같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아빠한테 표 사달라 조른다. 안된다고 해서 텐트럼이 왔지만. 탄자니아 마오이족 아이들이 지프차에 매달려 먹을 것을 구걸할 때 아이는 자신의 도시락 박스를 그냥 준다. 가이드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더 많이 오니까 지프차 창문을 닫으라고 하니 그럼 차에서 내리겠다고 떼를 부렸다. 내려서 같이 놀겠다고.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상대방이 즐거우면 끝이다. 나처럼 그들을 보며 어떤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작 선물 받을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받고 즐거워할 거라는 생각이 드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몇천 명의 교사들을 대표해서 인터뷰를 하는 거라면 나를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담백하게 " 1년 동안 자라 느라 노력한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아이들이 선물 받고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내년 산타샘도 모집 때 당첨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야지. 아.. 갑자기 인터뷰를 신청한 내가 야속하다. 후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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