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do list 1.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휴직을 한 지 3개월이 지났다.
휴직을 하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생각에 오전 내내 할 거리들을 찾아 움직였다. 자격증 공부, 책 구상하기, 글쓰기, 아침 운동 프로그램도 2개나 끊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주어지면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들을 실천하고 시작할 일들을 계획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늘 분주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는 없어?"라고 말하면 나는 바보같이 "너는 참 부지런하구나.", 혹은 " 대단해, 그렇게 계속 공부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라고 해석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다 끝내지 못한 일들로 죄책감이 들거나 나를 자책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도 못했네. 이건 언제 다 하지'하면서 내가 나한테 맨날 혼났다.
오늘은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말 시험을 보는 큰 딸의 아침 식사를 챙겼다. 남편과 대단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도 끓였다. 대단이의 도시락(흰밥만 먹어서 밥을 꼭 싸간다.) 챙기기, 학교 준비 돕기, 등교 동행하고 오기를 하고 집에 왔다. 엉망인 집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문득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엉망이 된 집에서 쓸데없는 쇼츠를 보았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들면, 이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세계 여행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은 볼거리가 많은 화려한 유럽이 아니라 볼리비아, 탄자니아, 쿠바, 발리와 같은 '내가 딱히 할 일이 많이 없는' 곳인지 모른다. 인터넷도 안되고 유적지도 많지 않아 멍하니 초원이나 사막을 달려야 하는 곳들. 뭘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나는 걸까.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있는 걸까.
오늘은 글도 안 써지는 날이라 갑자기 마무리하고 싶네.
누워서 볼 영화 한 편 골라뒀다. 가끔 그렇게 살아도 별 문제없다. 이 순간이 행복하면 됐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