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이'에 대하여

탄자니아를 떠올리며.

by 김혜원

아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갑자기 불안이 훅 하고 올라온다.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나, 오늘은 또 무슨 일은 없나

아직 생기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 걱정을 시작한다.

아니야, 아직 생기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일지 몰라.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떤다.

침이 제멋대로 넘어가 자꾸 사레가 들린다.


나의 불안이는 늘 내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올라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이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나다.

불안이가 가버리면 진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내가 마음을 놓아버렸을 때 나쁜 일을 만나면 내가 받을 충격이 두려워서이다.

나를 보호하고 싶어 나를 괴롭힌다.


세계 여행에서도 늘 불안했다.

아이가 아플까 봐, 차표를 얻지 못할까 봐, 숙소 예약이 안될까 봐, 대단이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까 봐, 그걸 보고 있는 누나가 창피하고 외로울까 봐 등 끝도 없는 불안이 여행 영상에 남아 있다.


불안이의 근원은 결국 두려움이다. 무지한 것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나는 이것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불안이와 함께 '대비'(라고 쓰고 끝도 없는 걱정이라 읽는다.)를 한다.


여행 블로그나 방송을 보고 풍광에 끌려 여행지를 고르고, 할 일 목록을 적고 나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단이의 텐트럼을 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숙소 요구사항에서 너무 조용한 곳이어야 하는 경우는 제외한다. 아이들이 가니까 너무 싼 도미토리도 안되고, 공용 화장실도 안된다. 혹시 울고 떼쓰더라도 피해가 덜 가는 곳을 찾는다. 교통편도 역시 가장 편안한 루트를 정하고, 만약 1시간 이상의 버스나 열차 이동이 있을 시에는 반드시 지루하지 않도록 읽을 책, 먹을 것, 오디오북, 애니메이션 충전된 노트북, 스티커북 등을 잔뜩 챙긴다. 관광지에서도 예상되는 상황을 대비한다. 관광지에서는 또 어떤 텐트럼이 있을까 생각해두고 이럴 땐 이렇게 해야지하며 생각해 둔다.


불안이와 함께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가방을 쌌다 풀었다 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괜찮다. 도착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불안이, 그곳에 도착해서 여행을 시작하면 잠깐 사라지고 눈으로 보이는 풍경, 입에 들어가는 낯선 음식, 공기 냄새, 소리들로 가득 차는 경험을 하곤 했다. 오히려 대단이의 텐트럼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곤 했기 때문에 내가 대비를 해서 그 정도인지 아니면 나의 불안이가 쓸데없는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대단이의 텐트럼은 나의 철저한(?) '대비'보다는 그 상황이 되어서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루브르 박물관에서 텐트럼은 "한국어 가이드가 없다."는 것이었고, 미국 엔텔로프 캐니언에서는 절벽 바위 아래로 가는 것이 지하주차장 같아서 무섭다고 뒹구는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산책하다가 누나가 티니핑 놀이를 안 해준다고 세상 서럽게 울기도 했고, 리콜레타 묘지 근처에서는 목 없는 사람이 바이올린 연주하는 행위 예술을 하는 사람 때문에 텐트럼이 있었다.(얼굴을 찾아준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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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코파 카바나 해변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아르헨티나 엘칼라파테에서 산책하다가 엎드려 울고. 페루 마추픽추에서 못 걷겠다 드러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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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모하메드(대단이의 모로코 이름)' 가족/ 우유니 사막에서 콘셉트 사진 찍기

반면 내가 걱정하던 아르헨티나 6시간의 장기 버스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이나 오디오북을 들으며 편안히 지났고,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콘셉트 사진을 찍을 때는 내 걱정과는 달리 너무 즐거워했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낙타로 이동하고 사막에서 1박을 할 때는 걱정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금도 이야기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모양이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관람을 하지 않고 지루하다고 떼쓰진 않을까, 그래서 다른 이의 관람을 방해할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아이는 그림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유튜브 찍는 놀이를 했다.


대단이는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는 로봇이 아니다. 대단이는 그저 현재에 충실하게 산다. 즐거우면 웃고 속상하면 운다. 그런 대단이의 행동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했던 것은 나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예측하고자 했기 때문에 생긴 불안이다.


그 불안이 오로지 나의 망상임을 깨닫고 좀 편해진 것은 탄자니아를 여행하면서부터였다.

동물을 찾아 끝도 없는 초원을 달리다 보면 내가 구경을 하는 건지 동물이 나를 구경하는지 모호해진다. 길을 따라 몇 시간씩 달리며 같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감정의 요동 따위는 없다. 대비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차 안에서 앉아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길 위의 돌도 느껴질 만큼 흔들리는 지프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힘을 빼고 온몸을 맡기게 된다. 분명 승차감 제로라 몸이 불편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초식동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거나 느리게 걷는 모습을 몇 시간씩 보고 있으면 '생각'이라는 게 없어지고 머리가 비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명상인가. 이 경험이 너무 좋아 한국에 돌아가면 30분간 초원 달리는 영상을 보겠다고 녹화도 했었다.


그런데 다시 일상을 살면서 나의 '불안이'가 자꾸 찾아온다.

그럴 때에는 탄자니아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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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원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며 막상 얻으면 또 새로운 것을 원한다.

하지만 사자는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나는 초원에서 한가롭게 낮잠 자고 있는 사자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나는 '정상 발달'이 아닌 아들이,
남들과 같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쫓아 안달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사는 게 별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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