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를 보듬다.
대단이의 학교 생활은 두 선생님 덕분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학교로 보내며 안정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를 받아주신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문제 있으면 같이 해결해 보자고 하시며, 학교 잘 적응해서 책으로도 써보자는 담임 선생님의 응원에 눈물이 났다.
나는 신경다양성 아이들에 대한 책 읽기, 국제행동전문가 자격증 공부 등 하루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생님께서 애써주시는 만큼 나도 집에서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학교를 나오는데 특수 선생님께서 적응기를 이야기해 주시면서 몇 가지 문제점들이 일주일 만에 연습이 되었다며 기특하다 해주셨다. 학습은 너무 잘하고 있어 도울 필요는 없고 생활습관이 문제라 하셨다. 왜 그동안 학교에서 못했을까 속상하다고 하셨을 때, 대단이의 문제들을 해결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그동안 움츠려졌던 어깨가 처음으로 펴지는 느낌이었다. 단지 내 학교를 보내어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밖에서도 손가락질받던 아이였기에 지금도 또래 아이들이 지나가면 긴장하고 움찔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나도 모르게 아는 사람을 만날까 얼른 집으로 들어갔었는데 이제는 이어폰을 한쪽씩 꼽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집으로 온다.
"이제는 괜찮아, 우리 해보자. 우리가 도와줄게. 모두 안전한 사람이야."
치유를 받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하루하루 행복한 기분이 채워지는데 막 벅차올랐다.
상처를 보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면 되지.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상처를 받았다. 대단이는 장애 복지관에서 난타 수업을 하는데 그 수업을 함께 듣는 같은 학교 특수반 엄마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 새로운 전학생이 와서 우리 특수 선생님이 너무 힘든 것 같은데... 글쎄 개별화회의 때 자료를 이만큼 준비하시던 우리 선생님이 이번 2학기에는 좀 준비를 덜하셨더라고요. 다른 엄마가 불만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진짜? 다른 엄마만일까?) 원래 그런 분이 아닌데 전학생 때문에 회외가 있다고 바쁘시고... 우리 애 졸업할 때까지 끝까지 도와주신다더니 내년까지만 하시고 유예 안 하고 가실 모양이에요."
어쩐지. 같은 학교라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했을 때 얼굴이 굳어지더니. 8월부터 나랑 이야기도 안 하더니. 그런 이유였구나.
그동안의 나였다면, 앞으로 학부모로 만날지도 모를 사람이니 그냥 웃으며 '속상하시겠어요. 선생님이 힘드실까 봐 죄송하네요'라는 영혼 없는 멘트를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사로서 말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동으로 장착된 일종이 립서비스 같은 거였다. 내가 다치지 않으려고 피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전 학교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나왔던 억울함 때문인지 내 입에서 뾰족한 말들이 나왔다.
" 글쎄요. 우리 아이로 인해 선생님들이 힘드실 수도 있겠어요. 왜냐하면 지금 학교 최대의 관심사일 거거든요. 이렇게 이사도 없이 '교육환경 변경'으로 온 아이는 없을 테니까요. 얼마나 대단한 일이 있었으면 쫓기듯 이 학교로 왔나 싶어 교장 교감 선생님뿐 아니라 전 교사의 관심일 거예요. 그런데 제가 좀 잘못한 것 같아요. 같은 교사라고 아이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그냥 묵과하고 나왔으니까요.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은 하려고요.
초빙이나 유예 말씀드리는데, 이곳은 경합교육청이라 재초빙이나 유예를 하려면 학교 일을 더 많이 하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학교 입장이나 선생님의 생각이 바뀌셨을 수도 있고, 진짜 우리 아이가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전학생이 우리 아이만 있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런 이야기는 좀 억울하네요.
전 선생님께서 계실 때까지 도와주겠다는 의미를 아이 졸업 때까지로 받아들이신 건지 궁금해요. 그리고 개별화 회의 자료를 예전처럼 많이 준비하던 선생님이 안 했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말씀하시니 선생님께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아이가 도와줄 것이 많지 않고 순하고 학교 생활 잘하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요? 뭘 더 바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불만 이야기하신 분께 그렇게 전해주세요. 필요하시면 궁금한 것 언제든 말씀드리면 해주실 분이에요. 이런 분은 제 교직 경력에서 못 뵈었습니다."
" 호호.. 맞아요. 우리 아이는 문제행동은 전혀 없긴 하고 예전 시절 같으면 티도 안 날 애, 조금 공부 못하는 애 정도이긴 하죠. 너무 순한데 친구 관계가 유일한 고민이긴 해요."
" 네. 그러니 개별화 회의에서 충분치 않으시면 더 말씀드리세요. 우리 선생님은 절대 그냥 두실 분이 아니시니까요. 우리 학교 같은 곳은 없어요."
" 그런데, 4학년 되면 특수 아이들이 많아진다는데 원래 그런 거예요?"
맙소사.
말문이 막혔다.
같은 아픔을 가진 특수 아이 엄마라고 헤서 절! 대! 아군은 아니다.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는 학군지가 아니었다. 특수반 엄마들끼리 함께 놀기도 하고 산에도 가고 했다. 우리 아이들은 각자 놀아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헤어질 때면 늘 모두 울었다. 친구 이름을 외우고 친구 집에 가보는 경험도 했다.
물론 치료실에서 그룹을 만들 때 '장애의 수준'을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비싼 돈과 시간을 지불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의 수준에 맞는 그룹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웃긴 게, 그룹에서 가장 기능 좋은 아이는 되기 싫고 가장 떨어지는 아이도 되기 싫다는 거다. 가장 기능 좋은 아이라면 우리 아이가 배울 게 없고 가장 떨어진다면 그룹에서 나가라는 암묵적 눈치를 봐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서로 부대끼며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왔다. 기능이 낮은 친구를 위해 내가 양보하고 도와주면서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기능이 낮아 말하지 못해도 눈빛, 몸짓으로 위로나 응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 친구의 표정을 살피고 감정을 읽는 것도 배울 것이다. 잘못된 행동(때로는 떼쓰고 울기 같이 본인이 하는 행동과 같은)을 하지 말자고 배울 것이다. 누구의 장애가 더 중한가를 비교하는 일은 참 서글프고 속상하다.
그런데 이사 오고 나서 '아군'을 찾아 나서는 것이 나의 착각이었음을 계속 확인하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까 봐 전전긍긍하는 엄마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 특수반 엄마들과 친해질 수 없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 같은 특수 반 엄마라도 완전 통합(특수반에는 가지 않고 일반반에만 있는)하는 경우면 우리 아이와 놀면 들킬까 봐 쉬쉬한다. 아이의 장애가 일반 친구들에 묻혀서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 정도로만 비치길 바라고 늘 자신의 아이를 그렇게 설명한다. 특수반 선생님의 관심을 나누어 갖는 것도 싫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공부를 못하지만 잘 어울리는 아이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모들이 착각하는 게, 교사들이 문제 행동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학교 성적으로만 아이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냥 넘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매일매일 이벤트여도 선생님이 감당하시거나 묵과하는 일도 태반이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부모에게 잘못 이야기했다가는 되려 고소 고발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일명 '흐린 눈', '1년만 참으면 지나가는 아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 아이들의 생활이나 언어를 보고 있으면 제일 먼저 아이가 받을 오해, 상처, 외로움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교실 수업에서 받을 지적도. 이해 못 한 채로 하루 종일 앉아 있거나 아이들의 대화 내용조차 모호해서 늘 불안이 높을 거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다 우울증, 무기력증, 함묵증 같은 것이 고학년 때 생기기도 하는 아이도 만났다. 우리 반 아이였다면 어떻게 도와야겠다고 생각이 먼저 든다.
밤새 곱씹어 보았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특수반 엄마들의 예민함이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곳에 홀로 있다면 아마 누구라도 신경이 곤두서있을 수밖에 없겠지. 일반 아이라면 말도 하고 자신의 감정도 이야기하면서 상황을 이해해 볼 텐데. 표현이 서툰 아이를 통해 세상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세상은 안전하지 않아. 우리 애를, 그리고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 내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공부를 많이 해서 더 단단해지자.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면 우리 담임 선생님처럼 신경 다양성 교실을 만들고 실천해 보겠다고. 담임 선생님, 특수 선생님이 나를 치유해주고 있는 사람이 되어 주셨으니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상처를 보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국 사람이 상처를 주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세계 일주가 남긴 유산 발견. 오늘 여행지는 힘들었지만 내일 만날 새로운 곳을 위해 힘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