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활보 선생님(활동 보조 선생님)이 되었다! "
아이 얼굴에서 미소가 번진다. 학교에 가면 숨이 안 쉬어지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침이 제멋대로 넘어가 사레가 들리고 실수가 잦았다. 다시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재미있는 수업을 할 때 아이들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한 나, 아까운 내 교실, 나의 제자들을 두고 쉽게 휴직 결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사이지만 소위 금쪽이 학부모이기도 하다. 아니, 교사 사회에도 완전히 들어가기 어렵고 금쪽이 편에 서 있는 학부모 입장도 없었다. 내 아이 문제가 생기면 아이의 마음보다는 학교 먼저, 동료 교사 먼저, 학급 아이들 입장을 먼저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교사 사회에서 늘 죄인 같은 마음이었고 아이에게는 더 '정상에 가까운' 아이로 만들기 위해 닦달하는 모진 엄마였다.
'너의 세계로 들어가겠다.' 던 모토를 가지고 세계일주를 시작했었다. 이이의 눈을 자세히 바라보던 여유, 실수를 하고 분노 발작을 해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주던 너그러운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세계 여행을 마치면 우리는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생겼나. 그래서 나의 긴장과 조급함이 아이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 그런 생활을 멈추기로. 휴직을 하고 나오면서 개인 짐 몇 가지를 빼고는 다 두고 나왔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인사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를 위해서는 선생님 엄마 그만하고 그냥 엄마만 하기로 했다.
더 이상 단지 내에서 같은 학교 친구들을 만나지 않도록 아이 학교도 전학하였다. 놀이터나 길에서 같은 학교 어린이들을 만나면 몸부터 움츠려드는 아이를 보니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결정해야할 일이었다.
나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하늘이 도왔는지 평소 내가 존경하던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되어 주셨다. 특수 교육 박사 학위를 가지고 일반학급 교사를 하시면서 '신경 다양성'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꾸리고 계신 분이었다. 게다가 특수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정말 일반 학교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일들을 하고 계셔서, 2주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감탄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세계 일주를 훌쩍 떠나 듯, 나도 대단이도 다른 세계로 과감히 떠나본다.
떠나보니 별거 없더라. 그냥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된다.
오늘 하루 뭐가 신났나 좋았나 생각하고 뭘 먹을지만 고민하면 되더라.
내일 뭐 하고 지내면 재밌을까 생각하기만 하면 되더라.
당분간은 아이와 그렇게 지내겠다 생각했다.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도 학교랑 선생님이랑 같이 해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