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용기.

by 김혜원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교에 가기로 했다. 아이의 잘못을 아이가 알고 있으니 학교 가는 길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지 안다. 그래서 나와 오늘은 학교에 가 보기로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까 봐 두렵고 무서워서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를, 아직 준비되진 아이를 끌고 가는 걸까 고민했지만 학교에서 우리 아이의 마음까지 신경 써달라고 하는 건 무리였기에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주간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기다린 학교의 입장은 7월 전체도 반 전체로부터 격리였다. 같은 층에 있던 특수반조차 6층으로 옮긴다고 했다. 언제 원반으로 돌아가냐고 묻자 아직 계획된 것은 없고 2학기때 보자고 하셨다. 2학기는 특수 선생님도 바뀌는데 아무튼 7월, 8월을 넘기고 9월에 다시 회의를 하자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학교가 있는 우리 동네에서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방학 내내 우리 아들은 피해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제 이 학교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반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까 여기저기서 심리 상담가를 불러 심리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을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 어디에도 아이와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조치는 없었다. 물론 잘못했지만, 우리 아이도 어리기에 한 번의 실수도 이렇게 가차 없이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 매몰차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충격을 받아서 3번의 학부모 민원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교사로서 그런 상황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구나 깨물린 사람은 선생님이니 선생님이 피해자인데 , 그 와중에 또 25여 명의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현실이 정말 괴로울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교사들은 자책도 하고 무기력함도 느낀다.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학교 사정이 그렇게 여의치 않음을 안다.


하지만 우리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을 비난하는 큰 집단 안에서 다시 지내야 한다. 사실 지난 학부모 공개수업, 운동회 때 참석해 보면 우리 아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라는 걸 너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칭찬하는 스티커를 붙여주려 갔더니 피하거나 막 도망 다니고, 손 잡고 짝끼리 운동하는데 서로 안 하려고 피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졌다. 부모들이 있는데도 대놓고 밀어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보고도 아무 제지를 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그래, 아이들이 불편하고 싫겠지. 우리 아이가 부족하니까 어쩌겠어.'라고 나마저 눈을 감아버렸다. 놀이터에서 아이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때 내가 왜 교사가 아니라 '엄마'를 하지 않았는지 그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이니 우리 아이처럼 사과하라 할 수도 없다. 아이가 논리적으로 이야기도 못해서 상황도 짐작할 뿐이다. 나는 어디에도 민원을 넣을 수 없었다.


그런 친구들이 이제는 전체가 하나의 비난 집단이 되었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고 믿었던 담임 선생님마저 자신의 잘못으로 한 번에 돌아섰다고 믿어버렸다. 어른도 책상을 빼놓고 은근히 따돌리는 상황을 괴로워할 텐데, 어리고 사회적 상호작용 마저 서툰 우리 아들 마음은 어떨까. 이제부터 아들의 학교에 갈 때에는 '교사'하지 않고 당분간은 '엄마'로 남기로 했다. 교사라서 아는 교사의 입장, 학교의 입장이 우리 아들보다 우선이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아이의 마음을 담아 컴퓨터로 편지를 쓰고 프린트하여 함께 읽어보았다. 내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가서 친구들 앞에 읽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잠시나마 볼 수 있다면 우리 아들이 앞으로 학교 생활할 때 적어도 도망 다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큰 욕심이었다. 아이는 집을 나서는 것부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4층 교실까지 안 가고 1층 교무실에서 교감 선생님께 드리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학교 가는 내내 이탈리안 브레인롯 노래를 큰소리로 불렀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사과하러 가는 아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니 아무 감정도, 생각도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안다. 아이가 불안해서 그런다는 걸.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는 걸. 노래를 부르는 아이에게, 마음이 불편할 때에는 숨을 쉬고 엄마 손을 꼭 잡으라고 했다.


" 여기서 00 만난 적 있어. 00 이는 나한테 안녕하고 인사해 줘, "

" 그랬어?, 그래. 그런데 오늘은 안 만나. 친구들은 다 등교했어. 그리고 엄마가 옆에 있어. 괜찮아."

" 00가 제일 충격받았나 봐."

"왜?"

"선생님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어."

'

그런 짧은 대화가 오가고 다시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른다. 집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 프린트 해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다 학교 정문이 되자 보안관실 아저씨께 대뜸 이야기한다.


" 저 000 선생님한테 안 가요."

"그래. 거기에 가면 안 되지."


우리 아이를 알아보시고 하이 파이브도 해주시는 좋은 분이시지만, 거기에 가면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학교 전체에 퍼졌을 우리 아이 모습이 한 번에 그려졌다. 아, 이렇게 낙인이 되는구나.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다른 학교에 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PBS(긍정적 행동지원) 팀을 거부하고,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도 꺼릴 것이다. 학교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아이는 외로운 섬에 있을 것이고 자폐의 특성을 정신병이 아닌 장애로 보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새롭게 기회를 주어 이번에 낸 용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교무실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교감 선생님을 뵈었다.

" 이거 000 선생님한테 주세요. 아이들한테도 전해주세요."

" 아이가 학교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도저히 교실까지는 못 간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네 꼭 전하겠습니다."


교감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하고 교문을 나서며 아이는 다시 큰 소리로 주문 같은 노래를 부른다. 월요일부터는 내가 아침에 등교를 시키기로 했다. 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너의 용기. 오늘도 한 뼘 자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