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장면이 만든 긴 꿈
꿈의 방향은 사소한 균열에서 시작된다. 나에게는 IMF 다큐 속 단 몇 분의 화면이 그랬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던 또래 아이의 이야기, 두 언어로 수업하는 일상, 그리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말. 그 짧은 순간은 처음으로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는 질문을 깨워준 출발점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가족의 유일한 취미였던 TV를 함께 보고 있었다. IMF로 이주해 말레이시아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내 또래였던 아이는 중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었고, 아이의 아빠도 아이가 크는 걸 볼 수 있고 여기서의 경험이 삶의 방향을 바꿔주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장면을 보며 처음으로 ‘내가 아는 세계 말고도 다른 삶이 있구나’를 실감했다. 그게 아마 내가 처음으로 품었던 바람이었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떼를 썼다. 하지만 아빠는 “다음에”라고만 했다. 이해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일을 해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아빠는 할머니와 네 명의 고모를 오래 책임져야 했고, 부모님 모두 책임의 무게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환경에서 ‘해외’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대신 아빠는 여러 나라의 국기가 담긴 책 한 권을 사주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나는 그 책 속 200여 개의 국가 중 중국이라는 나라를 가장 오래 들여다봤던 것 같다. 부모님은 방향을 제시할 정보는 없었지만, 공부와 외국어만큼은 늘 지원해 주셨다. 그것이 그들의 가능한 방식이었다.
그 장면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 후로 나는 특정 직업보다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삶’ 자체에 끌렸다. 언어가 달라지면 환경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감각이 늘 선명했다.
말을 조심스럽게 고르는 나에게 외국어는 오히려 더 섬세하게 다가왔다. 한국어에서는 감정에 휩쓸려버릴 문장들이 외국어라는 객관적인 도구를 통과하며 정리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이 어릴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현실은 당장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그 꿈은 내 안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추진력으로 남아 방향을 놓치지 않게 했다. 그 방향은 결국 뒤늦은 형태로 이어졌다.
20대 초중반, 학업을 선택하고 중국 대학 서류를 준비했을 때, 어릴 적 그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가지 못했던 세계를 조금 늦게, 다른 문을 통해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서른이 된 지금의 나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는 직업적 영향력을 넓혀 영어권 국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있다.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낯설겠지만, 어릴 때부터 이어져온 그 바람과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좋겠다.
우연히 본 다큐 속 몇 분의 장면이 이렇게 오래 나를 밀고 올 줄은 몰랐다. 그 장면은 잠깐이었지만 내 세계를 넓히는 시작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도 그때 알게 된 ‘다른 세계’를 따라가고 있다. 사라지지 않은 꿈을, 내 방식대로 조용히 이어가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