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2020.09

by 배고픈 애벌레

해가 지는 하늘의 진홍빛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하는 나는 한 마리의 붉은 가슴 울새가 된다. 해마다 겨울이면 스칸디나비아의 울새는 가혹한 북부의 추위를 피해 자신이 태어난 따뜻한 남쪽으로 돌아간다. 작고 연약한 몸으로 거센 눈보라를 뚫고 꽁꽁 얼어붙은 산을 넘어 집으로 가는 길은 목숨을 건 사투에 가깝다. 그러나 가냘픈 새가 고달픈 여정 속에서도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건 사랑하는 이와 향수 어린 고향을 꿈꾸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융융히 품어 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집, 긴 하루의 끝에서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와서 세 번의 이사를 하며 얻은 집은 340 밀 로드에 있는 한 동짜리 아파트이다. 1970년대에 지어졌다는 이 낡은 건물을 수많은 이민자가 거쳐 갔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곳에 살면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허기를 고추장에 비빈 찬밥 한 덩이로 달랬다고 했다. 부모도 형제도 없는 타국에서 같은 말을 쓰는 동포와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흘렀다는 어느 할머니는 백발이 성성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채 시내 변두리의 소박한 아파트에서 타향살이를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선택과 도전이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젊음이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객기를 부리도록 부추길 때가 있다. 이 삼십 대의 혈기와 용기가 없었다면 어찌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인이 되기를 자초하며 남들이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낼 수 있었겠는가? 개척자의 모험과 도전, 이방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곳에 내 집이 있다.


이민자의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내 집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생소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곳은 어느 영화 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풍경이며 처음에는 낯설면서도 재미난 구경거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국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갑절의 노력과 눈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존을 위해 힘을 키워야 하고, 어떻게든 뿌리를 내려야 나를 잃지 않고 자식을 키워낼 수 있다. 낯선 세계에서는 작은 일에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답답하고 막막한 순간들을 견뎌내야 하므로 이때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내 안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빨간불이 깜빡이면 나는 서둘러 집으로 방향을 틀고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집 안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얼굴을 맞대고 친숙한 언어로 서로를 위로하며 응원한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집 안을 그윽이 채우고, 자연인, 한국인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면 마침내 배터리에 초록 불이 켜진다.


이 건물 안에는 나 외에도 다양한 인종의 외로운 이민자들이 산다. 그들 중에는 친동기간처럼 허물이 없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 특별한 이웃도 있다. 처지와 형편이 비슷해서인지 여기서 알게 된 이웃들은 서로에게 가식이 없고, 진실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속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그 관계는 깊어지고 있다. 낯가림이 심해서 얼굴만 마주쳐도 울던 이웃집 돌쟁이가 세 살이 되었고, 이제는 제가 먼저 다가와 “이모”하고 말을 걸어온다. 방긋이 웃는 아이가 친조카만큼이나 애틋하게 내 마음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이 년이 다 되어간다. 어느 집이라도 별미를 만드는 날이면 우리는 한 식구처럼 둘러앉아 나누어 먹는다. 또 어쩌다 속상한 일이라도 생기면 서로의 축 처진 어깨가 측은해서 같은 마음이 되곤 한다. 살가운 정을 느끼게 하는 속 깊은 이웃들이 늘 나의 귀갓길을 재촉한다. 눈보라가 요동치는 겨울 들판을 지나면 드디어 낯익은 구조물 하나가 보인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물리적인 집이란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막아 주는 건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집을 떠올릴 때 드는 수많은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히 정의하기 어려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품어주는 곳, 불편한 가면을 벗고 민얼굴로 돌아올 수 있는 곳,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내일을 살아낼 수 있도록 쉼을 주는 곳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생성되고 저장되는 곳. 이것이 집을 단순히 땅의 넓이와 금전적인 가치로만 규정할 수 없게 하는 이유이다. 이 낡고 오래된 외국의 아파트에서 나는 고향의 정겨움을 느끼고 주어진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견뎌내야 할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지만 일과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랑하는 나의 날개야, 심장아, 이제 나를 집으로 데려다 주렴.’ 나는 오늘도 집을 향해 날아가는 작은 새가 되어 붉은 석양을 가슴 깊이 따뜻하게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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