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현혹되어 왜곡된 시선으로 주변의 정세를 보고 판단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면 사물의 본질을 직관하는 혜안이 열려 사람과 상황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빈약한 경험과 단순한 직관으로는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주변만 맴돌 뿐이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투명하게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고 헤쳐 나가고 싶었다.
한쪽으로 편향된 말과 행동은 사회와 개인 간의 관계에 갈등만을 유발할 뿐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더 집중하려 한다.
화려한 외모나 유창한 언변 따위에 마음을 빼앗겨 그릇된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으로 소중한 관계가 어그러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아름답고 풍요롭게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는 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장하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를 밝힐 필요가 없는 뒷모습은 진실하다.
쓸모없어 보이는 굽은 나무도 그 뒤에는 모진 풍파를 견디고 고절히 살아남은 선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무너져 내린 어깨와 허리를 곧추세우는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백전노장의 기백과 가족 사랑의 정이 배어 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서둘러 집을 나서는 딸아이는 한쪽 어깨를 실긋 기울이며 걷는다. 어리다고 해서 밝은 장래와 축복된 삶이 보장되어 있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가볍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총총히 길을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비록 내 겉모습은 날로 늙고 초라하게 변할지라도 속 마음은 더 새롭고 맑아지기를...
이전과는 다른 삶의 의미를 찾은 자의 여유와 호연한 기운이 뒷모습에 담겨 긴 여운으로 남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