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선

by 배고픈 애벌레

코끝에 닿는 싸늘한 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높아진 하늘빛이 깊어졌다.

고개를 돌리니 맞은편 집 앞에는 주황색 호박이 올망졸망 귀엽게 자리를 잡고 미소 짓는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가까이 와 있다.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이 모였다 흩어지며 차분한 거리에 표정을 불어넣고

나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사색에 잠긴다.


한국에 다녀온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두 달간의 긴 여행이었는데 그 달콤하고 편안했던 순간들은 빠르게 지나갔고,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평범한 일상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지난여름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끈끈하고 극심한 더위가 계속되었다. 오랜만에 부모님, 동생과 함께하는 보통의 삶이 얼마나 좋았으면 삼복더위에도 나는 아이처럼 웃으며 소소한 모든 순간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음식들은 사랑이고 추억이고, 약이었다. 타향살이에 지쳐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단비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작은 식당과 카페를 찾아 들어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 젊은 날의 향수가 되살아났다. 아름다운 시간들은 소리 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날의 열기가 두 달이라는 짧지 않았던 만남의 기쁨과 함께하는 소중함을 불살라버린 탓인지 지금은 그 시간이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한 여름의 밤의 꿈이었다. 그저 소박하고 아늑한 기억의 한 자리에 서려있는 따뜻함이 위로가 되고, 굽었던 허리를 꼿꼿이 세워주는 기분이다.


가을 앞에 서서 노을빛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본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고단한 인생의 길 위에서 야윈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변함없이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쓸쓸한 가을길도 기꺼이 함께 가기를 자청한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함께 걸어갈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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