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이야기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 속 일상

by 배고픈 애벌레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일상의 변화 중의 하나가 삼시 세끼 밥을 손수 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긴 휴가에 들어가게 된 나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 아이들과, 일하는 남편을 대신해 식탁을 온전히 책임지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끼는 피자나 햄버거로 간단히 때우기도 하지만 어수선한 시국에 되도록 집밥을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의 무료함과 답답한 마음을 요리와 베이킹을 하며 달랜다고도 하는데.... 요리에 소질이 없는 내게는 강제 집콕 생활의 불편함만큼이나 먹고 사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종일 밥, 밥, 밥 하루가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다.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밥상을 차려낸 적이 없었는데.... 나는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 집 식탁은 늘 초라하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채소로 맛깔스러운 밑반찬을 만들고 국이나 찌개, 탕이나 찜이 푸짐하게 올려졌던 엄마의 밥상을 생각하면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어떤 음식을 상에 올려도 불평하는 이가 없다. 어릴 때 입이 짧고 비리비리했던 나를 먹이려고 엄마는 공을 많이 들였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 늘 밥 먹으면 해 줄게 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밥을 잘 먹는 일이 내게는 자식의 의무였다. 그런 내가 밥을 해서 먹여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까탈스럽지 않은 아이들을 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을 떠나 온 날부터 내게 밥을 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중대한 과업이 되어 버렸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나는 늘 친정 옆에 살며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었다. 그때만 해도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무거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먼 길 떠나는 딸을 위해 온갖 종류의 양념과 건어물, 먹거리를 커다란 가방 하나에 따로 챙겨 넣던 엄마의 의중도 헤아릴 수 없었다. 내 손으로 상을 차려내는 일이 힘들어 한숨을 몰아쉬던 날들. 밀린 숙제를 하듯 밥을 하고, 그 숙제가 버겁다고 투정하곤 했다. 착한 남편은 그런 나를 대신해 주방에서 고전분투하며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눈물겨운 수년간의 노력 끝에 우리 부부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살림 고수들이 유튜버로 활동하며 제공해 주는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며 우리는 매일 더 나은 밥상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파업도 휴가도 용납되지 않는 밥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돈가스를 만들어 먹을 생각에 기분 좋게 장을 봤던 날이다. 고기를 자르고, 탕탕 두드려 얇게 펴고 나니 몇 시간 전의 의욕은 온데간데없고, 나른한 피곤이 밀려왔다. 그때, 나는 어릴 적 즐겨봤던 만화 속 주인공인 도라에몽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도라에몽, 어떻게 좀 도와줘.” 도라에몽은 주인공 진구의 어두운 미래를 바꾸기 위해 22세기에서 온 고양이 모양의 로봇이다. 그의 주머니 안에는 어떤 일이든 척척 해결하는 신비한 비밀 도구들이 가득 들어 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밥하기 힘들다며 도라에몽을 불러내는 내가 어이없어 큭 하고 웃음이 났다. 그러고도 빰빠라 빰빰 유쾌한 노래에 맞춰 그가 등장하는 상상을 계속했다. “은경아, 또 무슨 일이야?”하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 도라에몽이라면 주머니 속에서 음식이 나오는 식탁보를 꺼내 내게 줄 것이고, 그것을 펼쳐놓고 원하는 요리의 이름을 말하기만 하면 최고급 요리가 마법의 식탁보 위로 나타나 감탄을 자아낼 것이었다. 일을 마친 남편이 현실 속 도라에몽이 되어 등장했다. 승리를 확신하는 선발 투수가 마운드를 구원 투수에게 건네고 돌아서듯 나는 잠시 주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코끝에 전해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기분 좋은 상상에 더해져 지친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노릇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먹는 식구들의 얼굴 위로 금요일 저녁의 풍성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소박한 식탁의 가치를 아는 남편과 나는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밥을 해 먹고사는 일이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처럼 처절하지만, 그 안에는 가장 인간적인 삶을 누리게 하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음을 이제는 안다. 밥 한 끼가 우리에게 주든 든든함과 위안을 기억하자. 오늘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밥심으로 하루를 살고, 삶의 역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밥과 함께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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