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al Plants
산책 중 잠시 멈춰 선 곳, 바람에 살랑이는 꽃들의 작은 움직임이 조용히 내 시선을 당겼다. 그 자리에 그대로 쪼그려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발아래 보이는 이 좁은 공간에도 꽤 많은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예쁜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눈앞의 식물들을 훑어보았다. ‘옮기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길은’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순간 그냥 아무 곳에나 앉아 내 도화지 크기만큼의 식물들을 몽땅 그림으로 옮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름 인상적이었던 이 감정은 때마침 친구가 추천해 준 책, 《숲에서 우주를 보다(The Forest Unseen)》를 읽으며 좀 더 손에 잡힐 듯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숲속에 지름 1m 남짓한 원형의 자리를 정해 놓고, 1년간 수시로 그곳을 찾아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 작은 공간에서의 방대한 기록은 또 하나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비록 나는 그만큼의 열정도 지식도 없지만, 나도 내 눈앞에서 실제 이웃해 살아가고 있는 작은 들풀들을 예쁜 그림으로 화지에 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적절한 표현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이 일종의 미니 다큐멘터리처럼 나의 시선이 투영된 자연의 기록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박하게 생각했던 이 작업을 나는 전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웠다. 사진처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은 보기에는 예쁘지만 식물 전체의 생김새를 온전히 보여줄 수가 없다. 일정한 범위를 정하고 여러 각도로 식물들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어 봐도, 이런 방식으로는 자칫 축소된 풍경화 같은 분위기로 그려질 것만 같았다. 막연하긴 해도 이런 건 내가 원한 그림이 아니란 생각에 갑자기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후로도 길을 걷다 들풀들이 무성한 곳을 지날 때면 으레 그 속에 살아가는 식물들을 찬찬히 바라보곤 했다. 한참을 보고 있으면 키 크고 화려한 식물들 틈바구니에 끼어 눈에 띄지 않던 식물들도 하나씩 차례로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렇게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식물들이 참 예뻤다. 그리고 나는 책꽂이에 고이 꽂혀 있던 책을 몇 년 만에 꺼내어 다시 읽으며, 포기했던 그림도 새롭게 시작해 보기로 했다. 처음 소박하다 착각했던 거창한 그림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진짜 소박한 실현 가능한 계획으로 다시 돌아왔다!
책에서 저자는 지름 1m 남짓한 원형의 공간을 관찰 장소로 정했는데, 나는 조금 변화를 주어 1㎡ 남짓한 사각의 공간을 작업 장소로 설정했다(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그냥 모방이라 해야 할 것 같아, 하하!). 나의 계획은 1㎡ 공간에 서로 이웃해 살아가는 식물 친구들의 모습을 길이 1m 남짓한 접이식 아코디언 스케치북에 기록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같은 종류의 식물들을 전부 그리기보다는 그 속에 살아가는 식물들을 골고루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장소는 내가 자주 가는 칭다오 청양 세기공원(世纪公园) 내 들풀이 무성한 오솔길의 어느 한 지점이다. 내가 늘 상상하던 이 작업은 길을 걷다 발길이 머무는 곳에 멈춰 그곳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을 그대로 그려보는 것이었기에 굳이 맘에 드는 식물들을 찾아 헤매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예쁜 식물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닌, 그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넓은 바위가 있는 곳 바로 옆자리이다. 또 한 가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전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을 너무 오래 끌지 않는 것이다. 식물들은 시시각각 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식물이 싹트고 기존의 식물은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 속의 식물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라 부를 수 없기 때문에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식물들을 그리려면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은 2022년 가을, 9월 20일부터 10월 9일까지 총 20일간의 기록이다.
최대한 소박하게 계획을 대폭 수정했건만, 식물들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막막하다. 눈앞의 들풀들이 온통 초록 물결이다. 이 녹색의 식물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조그마한 하얀 꽃과 동글동글한 열매가 있는 예쁜 까마중이 눈에 띄었다. 그래, 이것부터 시작하자!
개미 손님이 찾아올 땐 잠시 붓질을 멈추고 쉬엄쉬엄 그린다.
가을이 주는 이런 여유로움이 참 좋다.
작업 공간이 워낙 좁아 다음 순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지난번 그렸던 까마중을 지지대 삼아 옆으로 덩굴을 뻗어가고 있는 애기메꽃을 그리면 된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꽃이 활짝 핀 연분홍 애기메꽃이 지척에 보였지만, 아쉽게도 여긴 봉오리도 없다. 아무래도 내가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 너무 가까이에 장소를 정했나 보다.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일단 시작했으니 내가 멈추지 않는 한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겠지.
세 번째 식물은 선택의 여지없이 토끼풀이다. 까마중을 감고 올라간 애기메꽃 덩굴이 그 옆의 토끼풀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셋은 한 세트 같다.
이번 식물은 바랭이와 그 가느다란 줄기를 감아 올라가는 계요등 잎이다. 바랭이는 너무 흔해서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검색해 보니 민바랭이나 좀바랭이처럼 유사한 종류가 몇 개 있다고 나온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요모조모 살펴봐도 정확히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같이 그린 계요등은 아직 어린잎만 있어서 처음에는 확신이 안 섰으나 나중에 잎 한 장을 짓이겨 냄새를 맡아보니 음… 이건 계요등이 맞다! 계요등의 한자는 鷄尿藤, 즉 닭의 오줌 냄새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덩굴 식물의 경우 식물마다 각자 정해진 방향으로만 감으며 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애기메꽃처럼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러나 계요등은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바랭이 옆에는 질긴 생명력을 지닌 질경이가 있다. 보도블록의 벌어진 틈 사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질경이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식물이다. 질경이의 중국명은 ‘수레 차’에 ‘앞 전’이 합해진 车前 [ chēqián ]인데, 한국명도 중국명도 이름만 들어도 왠지 힘겹게 살아가는 식물인 듯 느껴져 괜스레 애처롭다.
글을 읽다 보면 어쩐지 내가 자연과 더불어 낭만적인 모습으로 작업을 할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위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게 작은 식물들을 그리려면 나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흙바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집중해서 그리는 동안은 솔직히 힘든 줄도 모르는데, 다 그리고 일어나면 온 관절이 뻐근하다. 그래서 그림을 완성한 후 옆에 있는 넓은 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 취하며, SNS에 그림을 올리고 책도 읽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물론 가을에도 모기는 셀 수 없이 많다. 내가 종종 찾아보는 검색어가 바로 ‘모기 면역력’이다.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다리지만, 모기에 아무리 물려도 면역력은 생기지 않는다는 실망스러운 답변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렇게 모기에 많이 물리다 보면 언젠가 초능력처럼 내게 모기 면역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예쁜 잎과 튼튼한 줄기로 다른 식물들 사이를 힘차게 뻗어 자라는 거지덩굴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저 멀리 울타리 가득 주렁주렁 열매를 맺으며 이름에 걸맞지 않게 부자처럼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거지덩굴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후 울타리 쪽 탐스럽던 그 거지덩굴은 전부 사라져 버렸다. 산책로도 말끔해진 걸 보니 아마도 공원 관리인이 모두 정리한 모양이다. 이 와중에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그리던 곳의 식물들은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너무 가까워 식물들이 맘껏 자라지 못하는 장소를 선택한 것이 나의 실수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덕분에 모두 살아남아 계속해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식물 세상사도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구나!
나의 더딘 걸음걸음이 드디어 개여뀌에게 도달했다. 손을 뻗으면 바로 닿는 거리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열흘도 넘게 걸렸다. 계속되는 녹색 물결 가운데 진분홍색 꽃이 등장하니 너무 좋다! 그리고 사진 뒤쪽에 보이는 저 바위가 바로 나의 쉼터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쥐방울덩굴
세기공원에서 쥐방울덩굴 잎들을 가끔 본 적이 있지만 꽃이나 열매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꼬리명주나비도 가끔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쥐방울덩굴 잎은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의 먹이식물이다) 근처 어딘가에 군락이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예쁜 꽃과 열매를 볼 수 없어 너무 아쉽다. 내년엔 꼭 풍성한 모습으로 만나자!
이번 식물은 내겐 너무 반가운 반하! 그리고 깨풀이다. 정말 신기한 것이 보름이 넘도록 1㎡의 이 좁은 공간에서 땅을 샅샅이 훑으며 그림을 그렸는데, 그간 한 번도 본 적 없던 반하가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났다. 2021년에도 협회 정기전에 낼 그림으로 반하를 그려야 해서 공원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결국 한국에 가서 겨우 그렸었는데 이렇게 내가 매일 산책하는 길에 있었다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에 이어 갑자기 허탈한 웃음이 났다. 역시 등잔 밑이 제일 어둡다. 그리고 반하 옆에 있던 귀여운 깨풀도 함께 그렸다.
쇠무릎은 줄기의 불룩하게 두드러진 마디 모양이 소의 무릎과 닮아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쇠무릎이 꽤 많았는데, 다소 뻣뻣한 생김새 때문에 다른 식물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봐 자꾸만 미루다가 이제야 그렸다. 염려했던 것보다는 자연스러워 보여 안심이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련이 왔다. 새벽에 그쳤던 비가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하루 미루면 될 걸 비가 오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음날 상하이로 떠날 예정이고 돌아올 날은 미정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림은 꼭 그려야 한다.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기다리는 것뿐. 비상용으로 가져간 조그만 우산을 쓰고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데, 어느덧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점차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우산 옆구리에 끼고 현장감 넘치게 마지막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거의 결심한 순간, 와!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비가 그치고 이내 기적처럼 햇살까지 비쳤다.
스케치북 마지막을 장식한 식물은 개망초이다. 가을에는 꽃은 볼 수 없고 새로 싹을 틔운 뿌리잎만 있다. 여태까지는 예쁜 개망초 꽃을 그리느라 봄에 나는 줄기잎만 그렸는데 이번 기회에 드디어 뿌리잎을 그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약간 빛바랜 강아지풀도 있어 같이 그렸는데, 함께 있으니 분위기가 더 좋아 보인다.
새벽에 내린 비로 땅이 젖었을까 염려되어 챙겨갔던 커다란 비닐은 눈물 나게 요긴하게 쓰였고, 마지막 날을 기념하며 동영상 촬영을 해보려고 가져간 무거운 휴대폰 거치대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촬영을 해보니 배경이 쭈글쭈글한 비닐이라 너무나 흉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용두사미(龍頭蛇尾)’ 프로젝트는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 꿈꾸던 그림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뱀의 꼬리(尾)’가 된 누더기 프로젝트가 아닌 내겐 너무나 어여쁜 ‘아름다운(美)’ 추억이 담긴 소중한 그림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김지영 作
이웃식물 Communal Plants
Pen & Watercolor
1030×190mm
까마중 Solanum nigrum L.
애기메꽃 Calystegia hederacea Wall.
토끼풀 Trifolium repens L.
바랭이 종류 Digitalia sp.
계요등 Paederia foetida L.
질경이 Plantago asiatica L.
거지덩굴 Causonia japonica (Thunb.) Raf.
개여뀌 Persicaria longiseta (Bruijn) Kitag.
쥐방울덩굴 Aristolochia contorta
반하 Pinellia ternata (Thunb.) Breitenb.
깨풀 Acalypha australis L.
쇠무릎 Achyranthes bidentata Blume var. japonica Miq.
개망초 Erigeron annuus (L.) Pers.
강아지풀 Setaria viridis (L.) P.Bea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