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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r 17. 2024

비자가 뭐야?

실은 나도 결혼 전에는 비자가 뭔지 잘 몰랐다.

대학시절 나홀로 첫 해외 배낭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이 나라는 무비자 입국 가능하나 장기 여행을 하려면 비자가 필요하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말들을 봤던 것도 같다.

어쨌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아니니 패스. 이러고서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하면서 비자를 준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살면서 처음 해보려니 막막했다. 공부를 포함해서 머리 굴려야 하는 모든 일은 딱 질색인 나였기에 비자발급 신청용 각종 서류들을 작성하는 건 여간 골치가 아픈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편이 혼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의 취감은 업시험 후의 해방감에 비길만 했다.

비자준비. 좋은 경험이었지. 그치만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었고 되도록 다시는 밟고 싶지 않은 절차이기도 했다.


그것이 내 인생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 비자준비이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잠시 했었다.

최근 나는, 아니 나와 남편은 다시 한번 비자 신청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남편의 여권으로는 상당히 많은 국가를 방문하는 데에 비자가 필요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보고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입이 닳도록 얘기하곤 한다. 우리나라 여권이 진 힘은 세계에서 일이위를 다투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행을 종종 다녀도 그를 체감한 적은 별로 없었다. 실로 체감하게 된 것은 남편의 비자 준비를 도우면서였다.

아니 무슨 여행 한번 가는 데에 이 많은 서류들이 필요한가..! 하나씩 인쇄를 하다보면 서류 봉투가 뚱뚱해지는 건 금방이다. 한숨이 절로 폭 나온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날 보며 남편이 웃는다.

붑커>> 모로코에서 태어났으면 여보는 절대 여행 못했겠다 하하하.

인정. 더군다나 모로코에서는 비자 인터뷰 예약을 하는 데에만 몇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일도 흔하다니 질머리로는 도저히 안될 일이다.

솔직히 조금 열도 받는다. 결혼비자야 한번 발급 받으면 몇년이고 그 나라에 눌러살 수 있으니까 과정이 좀 힘들더라도 얻고 나면 보상을 충분히 받는 느낌이라지만. 여행비자는 그 며칠 좀 즐겁게 보내고 싶을 뿐인데 결혼비자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하니. 신청할 때마다 아까운 비용도 들어가고 말이다. 지방사는 우리는 대사관까지 왔다갔다 기차값도 들지! 휴. 그냥 국경 지워버리고 다같이 살면 좋을 것을. 하는 꿈같은 상상도 해본다.


남편은 그동안 어떻게 이 복잡한 짓을 매번 부지런히 해가면서 여행을 녔을까. 남편의 여권에 장마다 찍힌 다양한 비자들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저 한장을 받으려고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고 애태웠을지 대단하면서도 짠한 마음 든다.


얼마전 남편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동료와 나눈 대화를 내게 말해줬다.

붑커>> 친구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길래 내가 '가면 되지. 한국 여권으로는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잖아. 나는 비자가 필요한데.' 했거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비자가 뭔데?' 라고 하는 거 있지! 나 정말 화났어.

남편은 비자가 뭔지 몰라도 여행 할 수 있는 운좋은 그 친구가 부럽다며 깔깔 웃었다.



오늘도 또 한장의 서류를 인쇄하고 스캔했다. 비자신청 과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남편을 보면 하나라도 더 옆에서 도와주고 싶다. 이 정도면 귀찮아서도 여행 못할 것 같은데 오히려 나보다도 더 많은 곳을 여행한 남편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아참. 우리가 갑자기 비자를 신청하는 이유가 있다.

언제부턴가 브런치의 내 이름 밑에 생겨난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작은 글씨가 무색하게 한동안 여행은 잠시 미뤄두고 일에 최대한 집중해서 살았다.

그랬던 우리가 실은 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세계여행을 이제 곧 실행에 옮기려 한다.


커밍쑨. 샤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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