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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r 31. 2024

첫 나홀로 배낭여행은 항공권 수수료 때문에 시작됐다

내 기억 속 유년시절의 나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가끔은 작은 실수로도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앓이를 할 때도 있었다. 모님은 내가 대범해지길 바라셨지만 천성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물 초반. 엄마 여행을 권유하셨다. 견문을 넓히는 여행만한 없다는 나도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굳이 가야하나..'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어느날엔 '친구 딸이 인도와 네팔혼자 다녀왔다더라'며 부러운 내색을 비치시기도 했다.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거기서 끝이었다.


무심한 내 모습에 하늘이 보다못해 계시라도 내려주고 싶었던 걸까. 얼마 후 동창이 방학에 같이 유럽을 가보지 않겠냐고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두명의 동창과 세미패키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탐험심보다는 친구들과 놀러간다는 기대로 찬 여행이었다.

우리는 약 한달간 많은 것을 했고, 많은 걸 보고, 많이 다투고, 많이 웃기도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피곤해서 침을 흘리며 잤다. 가기 전에 공부를 좀 했다고는 해도 우리 모두 첫 유럽이라 시행착오가 참 많았다. 추억도 가득 쌓였고 아쉬움도 그만큼 쌓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 다시 방학이 왔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초여름 햇살이 창으로 따뜻하게 들어오는 오후였다. 방학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내방 책상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난 여름의 유럽여행이 떠올랐다. 무슨 바람이었는지, 왜 때마침 그때를 회상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 서툴렀지만 즐겁기도 했던 여러 기억들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자전거를 지독히도 못타는 나를 친구 둘이서 가이드해가며 아슬아슬하게 달렸던 런던 거리. 스위스 설산에서 점프하며 찍던 사진. 2014 월드컵 독일-브라질전을 뮌헨의 한 펍에서 실시간으로 보며 환호소리에 덩달아 신나게 놀았던 날. 로마 밤거리와 젤라또..

회상 끝에 안간 생각했다.

'또 가볼까?'

에이 뭐하러 또 가. 가면 누구랑 가려고.

하면서도 날씨가 좋아 마음이 몽글몽글 해서였을까. 손은 이미 컴퓨터에 '유럽 여행'을 검색하고 있었다. 확히는 '유럽 여행 알뜰하게 다녀오는 법'.

그러자 나온 검색 결과가 '카우치 서핑'이었다.


카우치 서핑. 현지 호스트들에게 숙박요청을 보내 수락을 하면 무료로 재워주는 시스템이다. 숙박비를 아끼고자 하는 여행자, 또는 현지인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곤 한다. 대신 호스트의 집을 단지 하루 공짜숙소라고 생각해선 조금 곤란하다. 게스트는 호스트와 시간을 나누며 자국의 문화를 알려주거나 여행 경험담을 공유하는 등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 매너다.

이거다 싶었다. 학생이었던 나에게 여행경비 절약을 위한 최적의 방법인 것 같았으므로. 하지만 짧은 영어도 꾸역꾸역 겨우 짜내어 말하는 내가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처음 만난 사람과. 아니 그보다 엄마아빠가 허락하실까..?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지만 어쩐일인지 꼭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가라고 해도 엉덩이 한번 꼼짝 않던 나였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이러는 게 말이 되나?


그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도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단숨에 여행계획을 세웠다.

우선 어디를 갈 것인가.

-별 고민 없이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정했다. 첫 유럽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나라를 고르라면 그 둘이었다. 두 나라만 고른 이유는 너무 많은 나라를 점 찍듯 돌아다니기 보다 이번엔 한 나라를 좀더 구석구석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갈 것인가.

-한 달.

누구와?

-혼자서.

근데 왜? 왜 혼자서 가고 싶은가.

...모르겠다. 왠지 이번에 혼자 먼 곳을 다녀오고 나면 허물 한꺼풀을 벗고 조금은 성장할 것 같은. 어렴풋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계획표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특히 엄마는 얘가 웬일이래 하면서도 반가워하는 티가 확 났다. 획표에는 날짜별로 대략 어디를 갈 건지, 무얼 타고 가는지 등이 써 있었다. 단 어디서 잘 것인지는 없었다. 없을 수 밖에. 카우치 서핑으로 그때그때 거처를 구할 예정이니깐.

카우치 서핑에 대해서는 집을 나설 때까지도 함구했다. 거짓말을 하긴 싫었지만 부모님을 걱정시키는 건 더 싫었다. 그저 '왜 계획표에 숙소는 없어?'라는 물음만 나오지 않길 바랐다. 바람대로 부모님은 별 말씀 안하셨다. (나중에 여행이 다 끝나고 내가 사실대로 털어놓자 엄마는 '안 그래도 왜 숙소는 없나 의아했는데 그런 내막이 있었냐'며 놀라셨다.)


생전 해본 적 없는 항공권 구매를 스스로 해봤다. 패키지와 다르게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설계해야 했다. 마침 저렴한 항공편이 보였다. 닥쳐서 구매하는 편이라 비쌀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시작이 좋았다. 걱정말고 어서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출국날이 다가왔다. 지난 여행에서 캐리어를 힘겹게 끌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여행객들을 보고는 모든 짐은 배낭에 가져가겠다고 다짐했다. 갖고 있는 가장 큰 배낭에 옷을 돌돌 말아 최대한 용적을 줄여서 차곡차곡 넣었다. 너무 무거우면 안되니까 얼마 넣지도 않았다. 여권과 중요한 것들은 작은 보조가방에 넣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 길. 분명 어젯밤까지는 소풍가기 전처럼 마음이 기대로 부풀었는데. 좀전에 엄마아빠랑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그저 약간 긴장되는 정도였는데. 갑자기 마음이 공허하고 겨드랑이에 한기가 들었다.

나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랑 갈 때랑은 완전 다르잖아 이거.

괜히 가는 거 아냐?

버스 안의 에어컨 공기 유난히 차게 느껴졌다.


아니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 둘 순 없다. 왜?

지금 포기하면 항공권 수수료가 얼만데..

그렇게 내 첫 나홀로 여행은 항공권 수수료 덕에 강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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