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사는 큰시누이 레일라 언니네 가족과는 여행 전에도 몇번 영상통화로 인사를 해서 얼굴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된다.
남편은 레일라 언니가 천사라며 절대 걱정 말라고 했다. 나는 그래서 더 걱정이라고 했다. 천사같은 사람 앞에서는 더 잘 보이고 싶어지는 마음을 아는감? 조금이라도 실수할까봐 더 조심스러워진단 말이다.
새벽 동이 틀 무렵에 야간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레일라 언니가 사는 파리의 외곽으로 향했다.
설렘 반 떨림 반.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자 얼마 뒤 레일라 언니와 첫째 일리야스가 우릴 맞아주었다.
잠깐 가족 소개를 하자면,
레일라 언니는 자녀가 셋이 있다. 이제 곧 바칼로레아를 앞둔 첫째 일리야스, 막 중학교에 입학한 둘째 이나스, 아홉살 막내 야신이다.
그리고 레일라 언니의 남편 되시는 하산. 우리나라에선 보통 시누이의 남편을 아주버님이라는 호칭이라고 부른다는데, 모로코에서는 '호야(khoya. 오빠, 남동생, 또는 낯선 남성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으로 두루 쓰인다)'라고 부르면 된다.
낯을 가릴까봐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한상 가득 차려진 아침식사를 보자 낯이고 뭐고 침샘이 신나서 폭발한다. 이렇게 든든한 아침상은 얼마만이던가. 향긋한 모로코 차는 또 얼마만이고!
배부르게 먹고 마시자 나와 남편 둘다 밀린 피로가 몰려왔다. 레일라 언니는 피곤할텐데 들어가서 한숨 자라며 침대방으로 우리를 데려가셨다. 이렇게 먹고 자고 첫만남부터 격없이 굴어도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포근한 이불속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저항할 수 없는 졸음이 몰려들었고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정말로 오랜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푹 쉬었다.
아침상
점심상. 쿠스쿠스. 레일라 언니의 쿠스쿠스는 시어머니의 것 만큼이나 맛있다. 냠냠.
오후에는 야신이 훈련하는 축구장으로 온가족이 연습경기를 보러 갔다. 야신은 모로코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쪼그만 발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동영상으로는 전에도 봤는데 직접보니 날쎈 다람쥐가 공을 따라 질주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사이 야신의 축구 실력이 더 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슈웃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첫 나라였던 스페인에서 레일라 언니네 집으로 큰 짐을 하나 부쳤었다. 그 안에는 가족들을 위해 한국에서 준비한 선물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한옥마을에서 산 여러가지 전통 악세사리나 생필품, 국산 양말, 말차 파우더, 커피믹스, 스킨케어 등등 다양했다.
그 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다름아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유니폼이었다. 출국 전에 한국에서 유니폼 뒷면에 한국어로 아이들 이름을 넣어서 준비했는데 그게 아이들 마음에 들었나 보다. 밤낮으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 모습에 고맙고 뿌듯했다.
야신은 다음날 축구 연습에도 이 유니폼을 입고 갔다.
다음날은 이나스가 다니는 가라테 강습의 방학식 날이었다. 방학식에서 간단한 다과회와 수료식이 있을 예정이라 우리 모두 이나스를 축하하기 위해 방학식이 열리는 체육관으로 갔다. 가라테를 잘은 모르지만 태권도와 비슷하게 허리에 두르는 띠의 색으로 실력을 나타낸다. 이나스의 초록색 허리띠는 상위 레벨에 가까운 색이라고 한다. 공부도 하면서 운동도 성실하게 하는 이나스였다.
그러고 보니 이날도 일리야스와 야신은 우리나라 축구복을 입고 있다.
쓰다보니까 너무 일리야스만 쏙 빼고 동생들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일리야스는 사실 수영과 유도를 굉장히 잘한다. 요즘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으로서 학업에 조금 더 열중하는 느낌이다.
일리야스에 대한 칭찬은 남편을 통해 익히 들어왔다. 첫째로서 동생들을 잘 챙기고, 매사에 예의 바르고 차분한, 한마디로 모범적 큰아들이랄까. 직접 만나보니 왜 그렇게 남편이 칭찬했는지 더욱 알 것 같았다.
붑커>> 근데 그거 알아? 일리야스가 어렸을 땐 야신보다 더 활달했어.
나>> 정말? 지금은 나보다도 점잖은데?
일리야스는 옛날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잠시 한눈을 팔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였다고 한다. 지금의 일리야스를 보면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어릴 때의 일리야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하루는 모로코 빵의 하나인 음슴먼을 레일라 언니와 같이 만들었다. 음슴먼을 만들 땐 먼저 반죽을 사정없이 치대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죽을 치대는 올바른 예(좌), 맥 빠지는 예(우)
반죽을 끝냈으면 커다란 반죽을 조막만한 작은 반죽공으로 나눈다. 그다음 반죽공을 하나 집어 버터와 기름을 발라가며 맨들맨들 윤이 나도록 얇게 쫙 펴준다. 그 위에 거친 밀가루를 솔솔 뿌린 다음, 겹겹이 접어주면 된다. 그 상태로 프라이팬에 올리면 노릇노릇 살짝 부풀며 구워진다. 완성된 음슴먼을 손으로 찢어봤을 때 마치 책장을 펼치듯 반죽의 접힌 결이 선명히 보이면 잘 만든 것이다.
모로코 음식 중 레일라 언니의 요리 주특기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남편이 모로코식 수제비라고 하길래 어떤 음식일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맛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르피사'.
레일라 언니의 르피사
르피사는 그 맛의 풍부함으로 보나, 비주얼의 화려함으로 보나, 조리의 난이도로 보나, 최고의 모로코 음식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종잇장 마냥 얇은 밀가루 반죽의 쫀득함, 중간중간 담백하게 씹히는 렌틸콩, 부드러운 닭고기, 튀긴 아몬드를 안에 끼운 대추야자의 절묘하게 섞인 달콤함과 고소함, 메추리알을 하나씩 뽑아 먹을 때의 재미.
르피사를 만들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밀가루 반죽에 있다. 르피사를 만들려면 반죽을 반투명해 보일 정도로 얇으면서도 찢어지지 않도록 펼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기술은 시댁 가족들 중 시어머니랑 레일라 언니만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쉬는시간은 언제나 없는 듯이 지나가곤 했듯이, 달콤한 휴식은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느새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일이면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오늘은 파리의 중심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걷기만 해도 은은한 향수내음이 풍겨오는 샹젤리제 거리, 중앙 교차로의 웅장한 개선문을 지나, 올림픽 홍보물들로 장식된 센강변을 걸어 파리의 상징 에펠탑까지 주욱 산책을 했다.
에펠탑 중앙에는 올림픽의 상징인 거대 오륜이 자리 잡았다. 온 파리가 다가올 올림픽에 얼마나 정성을 쏟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였다. 일각에서는 수질이 불량한 센강에서 수영경기를 진행하겠다는 정부의 아이디어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모월 모일 모시에 파리 시민 모두가 센강에다가 똥을 누자'는 (꽤나 재밌는) 비공식적 시민 운동도 일었다고 들었다. 100년만의 재개최라서인지 정부에서도 조금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나 저러나 에펠탑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맞이하며 우뚝 서있다.
우린 그 아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러다 갑자기 야신이 탑 아래서 점프를 하는 사진을 찍었다. 그걸 본 이나스가 자기도 하고 싶다며 점프를 한다.
결국 차례차례 온가족이 점프를 했다.
멤버를 바꿔가며 같이 뛰기도 하고 혼자 뛰기도 하고, 찍다보니 타이밍이 제대로 안맞아 나중엔 잘 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아예 비디오를 찍었다.
하산 호야, 레일라 언니와 함께.
우린 해가 붉게 넘어가며 에펠탑을 적실때까지, 정강이가 시큰하게 아파올 때까지 사진찍기 삼매경에 빠져서 놀았다. 아마 여행하며 가장 많이 웃은 날 중 하나일 것이다.
다음날, 레일라 언니네 가족과 한집에서 북적이며 보낸 시간에 익숙해져 다시 떠나려는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아이들과도 첫날의 어색함은 온데간데 없이 친해져서 헤어지기 무척 아쉬웠다. 곧 모로코에서 다시 만나자며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떠나던 날 지하철역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드는 우리의 모습을 레일라 언니가 찍어두었다가 나중에 보내주었다.
파리에 올 때보다 조금 더 묵직해진 가방을 품에 안고 공항으로 향한다. 가방 앞주머니에는 레일라 언니가 싸준 초코바가 한가득이었다. 한국에서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봉지라면도 몇개 들었다. 그러잖아도 작은 가방에 굳이 식량까지 넣어가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