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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Oct 06. 2024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찾는 이들을 위한

아이슬란드 남서부 여행 2

어딜가나 좋은 걸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곤 한다. 여행을 하면서 엄마를 가장 많이 떠올렸던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이다. 아빠도 그렇지만 엄마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자연 친화적인 분이다. 순도 100% 야생을 간직한 나라인 아이슬란드라면 엄마를 첫눈에 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은 다음에 겨울철에 같이 와서 오로라도 보고 아이슬란드 일주에 도전해 보고 싶다. 물론 지금처럼 허술한 차림이 아닌 두터운 겉옷으로 무장한 채 말이다.

글리우프라뷔(Gljúfrabúi)


물보라에 옷이 척척하게 젖을 만큼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글리우프라뷔의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본 스코가포스(Skógafoss)



스코가포스의 낙수가 시작되는 곳


스코가포스(Skógafoss)


여름의 아이슬란드 여행은 폭포여행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다양한 폭포들을 만나게 된다. 까마득한 낙차를 두고 우람하게 펼쳐지는 물커튼을 바라보고 있자면 세상 모든 잡념이 씻겨내려가는 것 같다. 중력을 타고 힘차게 대지로 내리꽂는 물줄기에 피어난 물안개가 절벽 위까지 뭉게뭉게 날아오른다.

폭포에서 내려와 흘러가는 물을 작은 손바닥에 받아 한입 마셔본다. 시나브로 녹아내린 빙산이 바위틈으로 스며들어 마침내 폭포를 이루어 떨어져내린 물이라고 생각하니 무미의 물맛이 달게도 느껴졌다.






솔헤이마산두르(Solheimasandur)라는 해안가 지역에 가면 외로이 부서진 비행기있다. 과거 미군 수송기가 추락한 자리에 그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곤 한다.

주차장부터 비행기가 있는 변까지는 리 떨어져 있다. 걸어가거나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데, 셔틀버스 편도가 무려 2만원..! 그래서 우리는 두 다리가 힘든 쪽을 택했다.


비행기까지 가는 길

아무것도 없이 휑한 자갈밭만 펼쳐진 길을 20분 정도 걷고 있는데 저 멀리 해변이 보이긴 했지만 도무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걸어 돌아오는 길인 어느 여행자 커플을 마주쳤다.

"저기 가면 비행기가 나오기는 하는거죠..?하하."

"하하, 네. 근데 좀 멀어요. 저희는 가는 데에만 1시간 걸렸어요."

"네에?!"

그랬다. 셔틀버스가 비싼데도 타는 사람들이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이미 절반 가까이 걸어왔으니 그냥 쭉 가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2만원은 과하다. 우리는 열심히 팔을 앞뒤로 흔들며 경보로 걸어갔다.

얼마 후 비행기에 도착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걷기 시작한 때부터 정확히 1시간이 지난 후였다.

검은 모래의 해변 위비행기 그날따라 우중충했던 하늘 아래서 더욱 음산한 풍경을 자아냈다. 대자연 속 외따로 쓰러져 있는 기계의 모습이 모순적이면서도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처럼, 드넓은 대지 위에 덩그러니 떨어진 비행기는 멀리서 보면 손톱만한 조약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회색 점으로 변한다.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어두운 땅 어딘가에 불시착했을 때 비행기 안에 있던 이들을 덮쳤을 공포감이 그 잔해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다행히 수송기라서 적은 수의 사람들만 타고 있었고 모두가 살아서 구출되었다고 한다.) 




솔헤이마산두르 비행기 잔해(Solheimasandur Plane Wreck)


다음으로 아이슬란드 최남단의 도시 비크(Vík)에 있는 검은 모래 해변을 보러 갔다. 비크로 가는 길, 구름이 걷히면서 반짝 해가 나온 사이에 찍은 도로의 풍경이 참 예뻤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하여 언제 다시 비가 내릴지 모르는 아이슬란드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맑은 하늘이 보이는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비크에 도착했을 땐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는데, 그동안 긴축을 한다고 먹는 게 부실했더니 벌써 배가 고팠다. 주변의 음식점들을 찾아보다가 가격이 비싼건 어디나 매한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어딜 가나 이왕 비싸게 먹을 거, 비싼 값을 하는 걸 먹자."

그래서 간 곳은 햄버거와 스테이크 등을 파는 레스토랑 겸 바였다. 메뉴를 보니 역시나 비쌌다. 하지만 여기는 아이슬란드. 서브웨이에서 작은 사이즈 샌드위치 하나를 시켜도 2만 5천원이 나오는 곳이다. 그럴바에야 스테이크를 먹겠다! 스테이크는 어딜가도 비싸니까 하하. 여행 내내 식욕을 꾹꾹 억눌러오던 나와 남편 둘다 오늘만큼은 위장에게 관대하게 베풀자는 마음으로 먹고 싶은 걸 맘껏 골랐다.

진짜 맛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배가 든든해진 우리는 밥심으로 활기를 되찾다.

비크 젠가 꿈속에서 보았을 법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중턱에 낮게 깔린 구름, 노란 스쿨버스를 개조해 만든 커피숍, 저 멀리 언덕 위의 작은 교회, 그 아래로 졸졸 흐르는 개울물.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몽환적이다. 흐르는 개울을 따라 보라색 꽃이 산들거리는 길을 좀더 걸어가면 검은 모래 해변에 도달한다. 칠흑빛 모래에 앉아서 밀려오는 검푸른 파도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다른 공간, 다른 차원으로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검은 모래 해변에서 차로 조금 달려서 도착한 할사네프셸리르(Hálsanefshellir) 동굴은 도끼로 뭉텅 찍어낸 것처럼 생긴 절벽과 그 밑의 주상절리가 환상적인 곳이다. 특히 세로로 길게 쭉쭉 뻗은 주상절리 일부러 깎아서 다듬는다고 해도 만들기 어려울 것 같은데 어쩜 자연적으로 저런 모양이 형성되었는지 두눈을 비비고 보게 만든다.   

사람들은 주상절리 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하지만 철저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곳은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장소이면서도, 급변하는 파도에 잦은 사망사고가 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굴로 가기 전 주차장에는 신호등이 있는데 기상이 안정적일 땐 녹색불, 출입 가능하나 바람이 세어 파도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땐 주황불이 켜진다. 빨간불이 켜지면? 바다 근처로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갔을 때는 주황불이 켜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주상절리에 올랐다. 번은 파도가 바위 위까지 철썩이며 동굴 입구까지 갑작스레 밀려와 사진찍던 모두가 혼비백산 몸을 피하기도 했다. 다행히 파도에 쓸려간 사람은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해변은 잔잔해 보이다가도 일순간 거짓말처럼 큰 파도가 휘몰아치는 곳이라고 한다. 방문객들은 각별히 조심해야 하겠다.

할사네프셸리르 동굴(Hálsanefshellir)





아이슬란드의 면적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그 인구는 약 40만명에 불과하다. 같은 면적에 5천만명이 밀집되어 살아가는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얼마나 인구밀도가 낮은 것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만큼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본모습이 잘 간직된 곳이다. 애초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진데 인간이 적을수록 자연이 보존된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긴 하다. 그렇다고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원시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자연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임을 이곳 아이슬란드에서 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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