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메이트 Oct 15. 2024

산속의 온천욕

아이슬란드 남서부 여행- 3

밖으로 나오자 간만에 훈훈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을 아이슬란드도 알았는지. 갈 때까지 비를 뿌려대기는 미안했나 보다.


숙소 밖으로 차를 몰아 도로로 나왔는데 'Vik'라고 쓰인 큰 종이를 들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두 여행자들이 보였다. 서너 대의 차가 그냥 지나쳐가길래 마음이 짠했다. 게다가 둘 다 덩치보다 큰 배낭을 멘 어린 여성들이었다. 얼른 다가가서  차 뒷문을 열어주었다.

"땡큐 쏘 머치. 땡큐 땡큐."

감사인사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는 건 형용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준다.



두 사람은 체코에서 왔고 히치하이킹으로 아이슬란드를 일주하는 중이었다. 벌써 집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돈이 부족하면 중간중간 알바를 구해서 일을 하는 식으로 경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체코 프라하를 여행했던 이야기, 카우치서핑으로 체코 친구를 만든 이야기를 하며,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과 통성명도 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한국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정말 가보고 싶은 나라인데.."

둘 중 한 친구는 한국에 가보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우리는 바이크로 한국을 일주한 것이나 한국음식 등에 대해 얘기해 주며, 나중에 꼭 여행을 오라고 추천했다.

그들은 Vik로 가는 길에 있는 한 숙소에서 내렸고 우린 서로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작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헤어지기 전에 연락처라도 하나 줄걸 후회가 된다. 혹시 그 친구들이 한국에 정말 오게 되면 만나거나 재워줄 수 있을 텐데. 뭐, 아쉽지만 할 수 없다. 인연이 닿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날 것이다.





디르홀레이(Dyrhólaey)는 언덕을 올라 바다와 절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푸른 바다와 검은 해변의 경계는 마치 서로 다른 두 세상을 가르는 경계처럼 보인다. 끝이 안 보이게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해안선은 중간에 가로막히거나 휘거나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앞으로의 우리 여정도 부디 이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디르홀레이(Dyrhólaey)에서 내려다 본 검은모래 해변


디르홀레이 절벽의 경관


귀여운 퍼핀새도 보인다.


돌아가는 길, 어느 호수의 잔잔한 수면 위에 안개가 피어올랐다.


저 멀리 빙하가 보인다.


아이슬란드에 와서 꼭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야외 온천욕이다. 이곳엔 블루라군이라는 유명한 온천이 있. 연푸른색 온천수에 객실까지 겸한 커다란 온천호텔이다. 주변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화산이 있어 가끔 용암이 분출되어 투숙객이 대피하기도 하는 이내믹한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도 블루라군에 가려고 알아보았었는데 비용이 상당히 비쌌다. 무엇보다 당시에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을 폐쇄해 두고 블루라군 입장권을 미리 온라인으로 구매한 사람들에게만 도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우린 블루라군 근처에 가고 싶은 곳도 있었고, 겸사겸사 해서 지나는 길에 블루라군에 들러 티켓 현장구매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근데 아예 블루라군 고객만 길을 터주니 어이가 없었다. 안 그래도 가격 때문에 썩 내키진 않던 참에 우리는 아예 동선을 틀어 차선책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등산과 동시에 온천욕!


레이캬달루르 온천(Reykjadalur Hot Spring) 가는 길


이 온천은 1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산 타는 걸 좋아하는 우리에겐 일석이조였다.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 실개천을 만져보면 벌써부터 따스한 온기를 손끝에 느낄 수 있다. 등산로 곳곳에 땅속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증기가 보인다.






높고 깊은 산줄기를 배경으로 하는 멋진 사진은 덤이다.


선선한 날씨이지만 산을 오르니 등에 땀이 송송 맺혀 나중엔 자켓도 벗고 반팔 차림으로 올랐다. 1시간 정도 걸어서 다리가 뻐근할 때쯤 저어기 온천이 보였다.

산에서 막 뎁혀 온 따끈따끈한 온천이요.

온천 옆에는 나무로 만든 탈의실이 있어 등산객들은 여기서 수영복으로 환복한다. 리도 옷을 갈아입고 물에 들어갔다. 상류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져서 발을 담그기도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앗 뜨뜨!!"

몇 초만 담갔는데도 발이 익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긴 아무도 없는 거였군. 만약 여기가 우리나라였다면 이 높은 온도의 물에도 수많은 어머님들이 얼굴만 내놓으신 채 '아이구 시원하다'하며 목욕을 하실 것 같다는 상상을 잠깐 했다.

조금 아래로 가면 찬 물줄기와 합하여 적당히 뜨끈한 온도가 된 온천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도 그곳으로 이동해서 몸을 담갔다.

"으어어. 좋다."

눈이 스르륵 감기고 전이 따뜻해져 온다. 개만 들면 푸른 산이 빙 둘러있는 천연 온천욕이다. 입장료도 없고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데다 경치마저 좋은 이곳을 아이슬란드를 찾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목욕 후 하산길





떠나는 비행기가 다음날 이른 아침이라 비행시간 전까지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둘러보다. 이 되도록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도착한 첫날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었던 악몽의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하늘은 오늘따라 맑디 맑아서 하절기 아이슬란드의 백야를 한껏 감상할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뉘엿뉘엿 저물어가던 해는 넘어갈 듯 안 넘어가면서 잘 익은 홍시색으로 하늘을 물들였다. 일반적으로 노을이라고 하면 금방 사라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이기 마련인데, 이곳 아이슬란드에서는  해가 떠오르는 다음날 새벽 서너 시 무렵까지 노을 지지 않다. 내가 본 가장 강렬하고 가장 긴 일몰이었다.

할그림스키르캬(Hallgrimskirkja) 교회. 건물 전체가 마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처럼 생겼다.


그랜드 모스크. 소수의 인구만 사는 아이슬란드에도 이슬람 사원이 있다니 신기했다.


자정의 하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경





벽 2시경 렌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비행시간이 되었다.

이 지구에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을 꼽으라고 하면 아이슬란드가 가장 먼저 기억날 것 같다. 3박 4일간 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무수한 광경들을 보았고, 그만큼 아직 보지 못한 것들도 무수히 많다. 번 아이슬란드 여행은 남서부에 그쳤지만, 바라건대 무 멀지 않은 때에 다시 와서 그때는 4륜구동이나 캠핑카를 타고 전 아이슬란드를 일주해보고 싶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날아서 다음 국가인 영국으로 간다.

To be continu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