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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Sep 14. 2024

풍차, 운하, 자전거, 그리고 커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잔담

막내 시누이인 나오엘 언니는 남편처럼 여행을 좋아한다. 몇년 전에는 혼자서 네덜란드를 여행했다고 들었다. 모로코 여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솅겐비자(유럽 국가들 중 솅겐 협약에 가입되어 있는 국가들을 방문하기 위한 비자)는 발급이 굉장히 어려운 비자 중에 하나이다. 서류 검토 과정이 까다롭기도 하고, 비자 신청자들이 밀려있어 인터뷰 예약만 잡으려고 해도 길게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문에 나오엘 누나가 솅겐 비자를 받아 유럽을 여행했던 일은 남편의 질투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붑커>> 나도 언젠가 꼭 암스테르담 운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말거야!


그리고 그 소원을 이번 여행에서 성취하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여태껏 우리가 다닌 장소중에 아마도 가장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 곳이었을 것이다. 도시를 가로 세로로 관통하는 운하, 그 위를 지나는 다리에 놓인 꽃자전거, 빈틈없이 서로 다닥다닥 장난감처럼 붙은 색색의 집들. 우리가 살던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어느 이야기 책 속에 들어온 공간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운하를 떠가는 작은 배는 화사한 꽃다발로 장식되어 배에 탄 사람들을 암스테르담의 특별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다리 위에서 운하를 내려다 보던 우리는 배가 다리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반겨준다. 배 위의 주인공들은 환하게 웃으며 마치 마차를 탄 공주와 왕자처럼 구경꾼의 인사에 화답한다.


운하가 잘 보이는 어느 레스토랑 겸 커피숍에서 에스프레소와 차를 한잔씩 주문했다. 커피 한모금에 운하의 잔잔히 흐는 물결도 바라보고, 또 한모금을 홀짝이며 앞칸에 아기를 싣고 유유히 자전거를 달리는 암스테르담의 한 어머니를 바라보기도 한다. 화로운 오전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고 우리는 '암스테르담 운하 옆에서의 커피 한잔'이라는 버킷 리스트 한줄을 지웠다.





네덜란드는 자전거 천국이다. 평탄한 지형과, 비싼 대중교통비 등의 이유로 자전거가 생활 속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암스테르담의 운하에서는 세상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퍼포먼스가 펼쳐지곤 하는데, 바로 자전거 낚시이다. 두세명의 사람들이 굵은 밧줄에 커다란 자석을 매달아 운하 속으로 던져 넣은 다음 금속덩이들을 끌어올린다. 처음엔 돈이 될만한 것들을 찾고 있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운하에 빠진 자전거를 건져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찾아낸 자전거들만 몇대가 길가에 쌓여 있다.


물 속에서 부식된 자전거들


암스테르담의 거리는 밤이 오면 사뭇 다른 습으로 탈바꿈한다. 건물들이 붉게 점등되고, 옷은 걸쳤으나 벗은 모습에 가까운 여성들이 유리창 속에 서서 진하게 화장을 한채로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곳이 바로 19금, 아니 29금이라고 해도 될만큼 선정적인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이다.

홍등가라고 하면 범접해서는 안될 장소, 금기 중 하나, 모두가 쉬쉬하는 장소, 입에 담기 부끄러운 곳이라는 이미지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출입하고, 관광객들이 구경을 목적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이를 업으로 삼는 유리창 안의 여성(혹은 트랜스젠더)분들도 굉장히 당당한 모습으로 호객행위를 여 매춘이라기 보다는 모델로 보일 정도였다.


특히나 신기했던 것은 정말로 볼일이 있어 온 남성들 뿐 아니라 누구나 유리문을 두드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음료를 들고 와 유리창 마다 돌아다니며 나누어 주거나 혹은 팔기도 했다. 유롭게 쳐다보고 말을 걸어도 되지만,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하고 절대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


우리 용기를 내어 가장 인상이 친절해 보이는 분의 유리문을 두드려 보았다.

"저기..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물론이죠!"

길고 매끄러운 생머리에 아름다운 눈썹을 가진 그분은 활짝 웃으며 1-2분 남짓한 우리의 대화 요청을 받아 주다. 그분은 아마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가격은 보통 한번에 100유로를 받는다고 하였다. 남편이 모로코 사람이라고 하자 본인도 곧 모로코로 갈 예정이라고 하며 반가워 하셨다.

베일에 가려진 어둠의 직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대화를 나눠 보니 그분들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음날에는 암스테르담 근교의 도시, 잔담에 다녀왔다.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풍차. 바로 그 풍차의 마을이 이곳 잔담에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20여분만 달리면 도착한다.


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색다른 건물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명한 채도의 건물색과 화속에나 나올법한 디자인은 풍차를 보러 가기도 전부터 우리 마음을 부풀게 한다.


기차역에서 나와 조금 걷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얼마간 달리면 다리를 건너 풍차 마을에 도달한다. 푸른 풀밭과 만개한 수국이 피어있는 정원을 지나면 저 멀리 풍차 여러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잔담이야 말로 우리가 네덜란드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그리는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곳이다. 티끌하나 없이 맑은 하늘, 흰 구름을 거울처럼 비추며 평화로이 흐르는 강물, 초원 위에서 풀을 뜯거나 낮잠을 자는 양들, 순풍을 안고 돌아가는 풍차, 세모 모양 지붕에 옛날식 굴뚝을 가진 아담한 집들..


이곳은 치즈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즈 박물관 안에 들어가면 치즈를 맛볼 수 있다고 써 있기에 박물관 보다는 치즈에 관심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알고보니 공짜로 나눠 주는 건 아니고 박물관을 나오는 길에 기념품샵처럼 치즈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처음엔 '아 뭐야, 그냥 주는 게 아니였네'하면서 구경 삼아 둘러나 봐야지 했는데 시식용으로 잘게 썰린 치즈를 야금야금 주워먹다 보니 그 맛이 엄청났다.

"뭐..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종류별로 맛을 본 우리는 결국 트러플맛 치즈를 한덩이 사버렸다. 곧 프랑스에서 만날 큰시누이 레일라 언니네 집을 방문할 때 가져갈 선물용이었다.  

아.. 원래 이런 상술에 잘 넘어가지 않는 우리인데. 자린고비들의 지갑을 열다니 참으로 대단한 치즈였다!







안녕. 거기 앉아 뭐하니?







투어 회사 광고였는데 모로코와 대한민국 국기가 나란히 붙어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런 우연이!





천천히 풍차 마을을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파리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내일 이른 아침이면 우리는 파리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시누이 레일라와 그 가족들. 첫만남이라 떨리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과연 파리에서는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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