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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라호르에 반하고 사람에 반하다

파키스탄- 라호르

by 소울메이트

우즈베키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려고 남편의 비자까지 다 받아 둔 상태였다. 그다음엔 카자흐스탄과 잘하면 러시아까지도 갈 수 있겠구나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이는 날씨에 대해 너무 무지했기에 세울 수 있는 계획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은 자연을 보러 가는 나라인데 지금은 가더라도 눈발 날리는 벌판에서 추위에 떨기만 하게 생긴 거다. 비자도 발목을 잡는 데 한몫했다. 모로코 여행자는 카자흐스탄 관광비자를 받는 데에만 130 달러가 들고 현지인의 초청까지 필요했다. 러시아 비자는 심지어 받을 수조차 없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변경한다. 우리는 따뜻한 남쪽을 찾아 나는 철새처럼 파키스탄으로 날아가기로 하고 항공권을 질렀다. 그런데 파키스탄은 따뜻한 남쪽나라가 아니라 살벌한 남쪽나라라 불러야 할 만큼 그리도 위험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라. 항공권은 취소 시 환불도 안 되는 걸로 끊어서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이걸 가도 되려나 모르겠다.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그 순간까지도, 아니 상공을 날아가면서도 이게 맞나, 우리 괜찮으려나,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파키스탄행이 좋은 선택일지 나쁜 선택일지는 가봐야 알 것이다. 혹여 지지리 고생만 할 나쁜 선택일지라도 부디 그 모든 게 다 훗날의 추억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담이지만 파키스탄에서 지낸 지 3주가 되었을 때 한 소식을 접하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모로코 국민의 카자흐스탄 관광 시 비자가 면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인생은 얄밉게도 이런 식이다. 내가 꼭 바랄 때는 주지도 않다가 돌아서면 옛다 하고 던져준다. 그래서 짜증 나는데 또 그래서 흥미진진하고 그래서 살아볼 만하다.

라호르 친구네 집의 벽에 붙어 있던 액자. 그 안의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파키스탄 여행기를 시작하는 오늘은 그토록 내가 바라던 날이다. 그동안 파키스탄 이야기를 얼른 풀어놓고 싶어서 얼마나 손이 근질근질, 입이 씰룩씰룩거렸는지 모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파키스탄에서의 3주는 남미에서의 시간과 견줄 만큼 이번 여행의 가장 소중한 기억들 중 하나가 되었고, 파키스탄은 모로코 다음으로 내가 애정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럼 우즈베키스탄을 떠난 비행기가 라호르에 도착한 날의 아침부터 시작해 보겠다.


카우치서핑 호스트 '아지르'네 집은 라호르 중심에서는 좀 떨어진, 깔끔하고 잘 사는 동네에 있었다. 가사를 도와주시는 분도 계셔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 눈으로도 먹겠다 싶게 예쁜 샐러드를 큰 쟁반에다 차려주셨다.


아지르는 비행 뒤 피곤했던 우리를 별도의 방에서 편히 쉬게 해주었고 우린 한숨 맛있게 낮잠을 즐겼다.

저녁이 되자 아지르와 그의 친구 '나시르'는 우리를 라호르 신시가지에 데려갔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호화스러운 카페와 바를 드나들고 분수가 나오는 넓은 광장에는 마실을 나온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야외 체육시설이 있어 밤 늦은 시간에도 아이들이 축구와 농구를 하고 있었고 파키스탄에서 유명한 스포츠인 크리켓을 하는 주민들도 보였다. 축구장 옆에는 작은 야외 포켓볼장도 있어서 우리도 잠깐 놀았다.


사실 막 파키스탄에 도착해서 조금 쫄아있던 상태였다. 아침에 공항에 도착한 직후 입국장으로 나오는 길에 두분의 경찰관님들이 다가오셔서 "중국인이세요?"하고 물으면서 경호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중국인 대상으로 한 테러가 종종 일어나고 있어 중국 정부로부터 '파키스탄을 여행하는 모든 중국 관광객은 필히 경호를 동반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 경찰관님께 한국인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아 그럼 그냥 가셔도 괜찮습니다."라고는 하셨지만,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당신은 한국인이요 아님 중국인이요?' 이러면서 국적을 확인하고서 발생하는 것도 아닌지라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랬던 마음이 현지인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금씩 진정되었다.

그리고 크게 도움을 주신 분이 한분 계신다. 바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가님! 파키스탄에서 파견근무 중이신 지사장님이신데 우리가 파키스탄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매일 매일 안부를 체크해주시고 때론 파키스탄 관련 주요 뉴스를 공유해주시기도 하는 세심함을 보여주셨다. (감동..)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가님의 브런치 스토리에 가면 파키스탄 관련 기초지식부터 탄탄히 쌓을 수 있으니 독자님들을 위해 아래에 주소를 공유해본다.

https://brunch.co.kr/@ragony


신시가지에서 아지르와 함께


카페에서 시킨 분홍빛 카슈미르 티. 카락티와 비슷한데 견과류가 섞여 한층 고소한 맛이 났다.


엉성하게 쳐보는 포켓볼


다음날 나시르가 아지르네 집 앞으로 우리를 태우러 왔다. 라호르의 옛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드 라호르에 가기로 한 날이다. 고맙게도 나시르가 오늘 하루 우리를 위해 운전기사를 담당해주기로 했다. 가는 길에 교통이 너무 복잡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시르가 아니었다면 우린 가는 데에만 두 시간을 썼을 거다. 나중에 남편과 둘이서 메트로 버스를 타고 올드 라호르행에 도전했는데 라호르의 대중교통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미 포화상태인 버스 안을 물밀듯 비집고 들어오는 승객들 사이에 납작한 수제비처럼 눌려서 반시간이 넘게 이동을 하는데 사방에서 밀어대는 통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그날 우린 나시르가 왜 우릴 자차로 태워 올드 라호르에 데려갔던 건지 진정 깨달았다.


나시르 덕분에 우린 쾌적한 차 안에서 올드 라호르로 가는 길 내내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올드 라호르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도 차도 바이크도 점점 더 많아져 교차로마다 서로 뒤엉켰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부딪히는 일 없이 도로는 잘 돌아갔다. 셋, 혹은 넷이서 옹기종기 타고 달리는 바이크, 짐을 한가득 실은 수레를 맨몸으로 끄는 일꾼, 히잡을 쓰고 바이크 뒤에 다소곳이 옆으로 앉아 타고 가는 여인. 이 낯선 풍경들이 우리에겐 하나하나 사진 작품 같았다. 거의 모든이가 전통복장인 살와르 카미스(하의는 살와르, 엉덩이를 덮도록 길게 내려오는 상의는 카미스라 부른다)를 입고 다니는 것도 신기하고 이국적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에선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살와르 카미스를 입고 있었다. 그만큼 편하고 활동성이 좋은가 보다.


도로에 흔히 세워져 있는 코란구절


파키스탄 국기를 빼닮은 툭툭


매우 혼잡하다. (나중에 인도에 가서는 파키스탄은 양반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달리는 차들 사이로 길을 건너는 사람들


멋진 수염의 바이크 운전자


멋진 수염의 자전거 운전자


바이크를 탄 가족


봇짐을 진 여인들


당근주스를 만드는 거리 상인


셋이 타는 건 기본인 파키스탄 바이크


커다란 짐을 싣고 바이크 뒤에 걸터앉은 사람


한손에 차를 들고 길을 가는 소년


바이크 뒤에 탄 여인


감자인지 고구마인지를 굽고 계신 아저씨


옷가게에 진열된 옷들과 히잡들이 주차된 바이크 위에까지 내려와 있다.


동남아 못지 않게 여기도 바이크 수요가 많다.


올드 라호르에는 여섯개의 게이트가 있다. 우리는 그 중 '델리 게이트'를 지나 본격적으로 올드시티를 만나러 안으로 들어갔다. 델리 게이트라는 이름은 과거 파키스탄과 인도가 한 땅이었을 때 지어진 것으로 이 게이트가 남동쪽에 있는 도시 델리를 향해 나 있어서 그리 불린다고 한다. 그후 19세기 영국의 침략으로 한 차례 부서졌다가 재건되었다. 게이트를 지나자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16세기부터 300년 가량을 현 파키스탄과 인도 땅에서 번영했던 무굴제국의 지난 영광이 고스란히 담긴 낡았지만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눈부시다. 역사 깊은 도시는 시간 부식됐을지언정 스러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델리 게이트


델리 게이트를 통해 도시 안으로 들어간다.


오래된 건물 아래 차려진 상점들


아빠의 바이크 뒤에 탄 어린 소녀


오늘의 고마운 운전자 나시르와 남편


쿨피 아이스크림 하나에 50루피. 코코넛 맛도 나고 자잘한 아몬드가 간간이 씹혀 맛있다.
위생은.. 장담할 수 없다. 먹고 배는 안아팠다.


나이가 몇백년은 되었을 건물


세월이 엿보이는 어느 돔 천장의 내부


17세기에 지어진 와지르 칸 모스크


모스크 앞에서 그림에 열중하는 미대생


와지르 칸 모스크 안에서


일몰이 가까워오자 거리는 더 북적인다.


아지르가 새를 날려보내는 영상을 찍자며 한마리를 샀다. 너무 쪼그매서 손으로 쥐기도 무섭다.
아지르도 도전. 새를 날리는 게 아니라 발사시켜버리는 아지르. 이게 쉽지 않다니까.

올드 라호르의 골목은 두세 사람이 간신히 스쳐 지나가도록 비좁은데 여기로 수많은 상인들이 몸집만한 짐을 이고서 바쁘게 걸어다니고 그 사이로는 바이크들이 요리조리 달린다. 골목의 양쪽에는 주전부리와 카락티를 파는 음식점, 일일이 수작업으로 고장난 물건들을 고치는 수리점, 꽤나 큰 정육점 등등 없는 게 없다. 과거로 회귀한 듯한 장면들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눈빛에 걷는 곳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쉴새없이 셔터를 눌렀다.

처음엔 찍히는 분들이 기분 나빠 하실까봐 몰래 최대한 빠르게 찍고 안찍은 척 딴청을 부렸는데, 걱정과 달리 놀랍게도 환영을 받아서 나중엔 아예 찍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맘껏 찍었다. 미소로 반겨주며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들, 저 뒤에 있다가도 사진 찍는 걸 보고 같이 찍으러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 파키스탄에서 좋은 시간 보내고 가라며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들. 그게 내가 처음으로 접한 파키스탄의 진짜 얼굴이었다. 테러, 종교갈등, 군부독재, 가난 등의 키워드들, 그 뒤에 가려져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숨은 심장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찍기 좋게 일부러 다 끓여놓은 차를 뒤적거리시는 주인 아저씨


신을 고치는 장인


맛나게 생겼지만 왠지 먹어선 안될 것 같은 튀김










저녁이 가까웠을 때 갑자기 아지르와 나시르가 서둘러 어디를 가자고 했다.

"빨리 걷자. 해 지기 전에 꼭 가야 돼."

성큼성큼 발걸음을 재촉해 도착한 곳은 Haveli restaurant이라는 음식점이었다. 루프탑의 전망이 일품이라 세계적인 유명인사들도 방문하는 곳이라 한다.

Haveli restaurant 입구


루프탑에서 보이는 바드샤히 모스크

레스토랑의 루프탑에 올라서자 무굴제국의 걸작이라 하는 바드샤히 모스크의 웅장하면서도 운 자태가 드러났다. 해넘이에 맞춰서 도착하니 은은한 자줏빛의 모스크와 주홍빛 하늘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황홀한 풍경을 만들었다. 이토록 전망이 뛰어나다 보니 이 루프탑에서 결혼식을 하려는 커플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오늘의 신랑 신부


바드샤히 모스크 전경



올드 라호르에 반하는 시간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그 외면은 물론이지만 우리를 가장 감동시켰던 건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두렵기만 했던 파키스탄이 얼마간은 살아보고도 싶은 장소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것이 사람이 가진 힘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

"라호르 인심? 에이 거기는 우리랑 비교하면 인심 박하지~"

우리를 반하게 한 라호르에 대해 이렇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렇다. 훈자와 스카르두 사람들의 넘치는 정은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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