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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바치고픈 두 도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사마르칸트

by 소울메이트

과거 페르시아 제국 시절 이란의 한 도시 시라즈에서 태어난 시인 하피즈는 그 수려하고 낭만적인 사조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날까지도 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 한편 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라즈의 미인이여 그 얼굴의 작은 점 하나만 나에게 내어준다면 나는 그녀에게 사마르칸트와 부하라까지도 드릴텐데.'

당시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로 꼽혔던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현 우즈베키스탄 영토). 그녀가 점 하나만 빼서 준다면 이 두 도시들까지 가져다 바치고 싶을 만큼, 아무 조건없이 가장 귀한 것을 내어줄 수 있다는 달콤한 애의 시이다. 근래 소위 '플러팅'이라고 관심 있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말이나 행동을 뜻하는 단어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인 듯 한데. 하피즈의 이 시를 보고 요즘 사람들이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 두줄의 문장으로 글쓴이의 감정이 절절히 와닿으니 이야말로 극도로 세련된 플러팅이 아닌가.

럼 이렇게 대시인의 문장에 언급된 두 도시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얼마나 대단한 곳일까 궁금해진다.


부하라의 이술람 교육기관인 '미르 아랍 마드라사'. 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하라'라는 이름은 이 도시에서 태어난 '부하리'라는 학자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이슬람에서는 신자들이 배우고 익히는 두 가지 큰 말씀이 있는데 하나가 알라의 뜻을 기록한 경전인 '코란'이고 다른 하나가 코란에 대해 무함마드 성인이 부연설명으로 덧붙인 말들을 기록한 '하디트'이다. 예를 들면 '하루 다섯 번 기도하라'는 것은 코란에 적힌 말이다. 하지만 코란에는 어느 시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기도하라는 상세 설명이 없고 이는 무함마드가 이야기한 하디트에 나와있다. 럼 이 하디트를 무함마드 성인이 직접 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무함마드 성인이 생전에 행했던 것들과 신자들에게 가르쳤던 내용들을 대성하여 기록한 사람이 바로 부하라였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이동하며 무함마드 성인이 생전에 어울렸던 동료 성인들, 그의 가족들, 먼 친지들까지 찾아다니며 그 말씀을 모으는 데에 힘썼다고 한다. 모은 자료들 중에서도 숙고하여 거르고 걸러 믿을만한 사람 여럿이 동시에 동의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하디트에서 제외했다고 하니 부하라가 이 작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만하다. 따라서 이런 부하리의 출신 도시인 부하라는 이슬람에 있어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인 것이다.


10세기 경에 건축되었다는 칼론 모스크의 미나렛


부하라 야경

부하라의 중심에 선 칼론 모스크는 중앙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모스크라고 한다. 무엇보다 부하라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칼론 모스크의 미나렛은 우리가 본 중에 가장 웅장한 미나렛이었다. 밤이 되어 조명이 들어오면 미나렛의 꼭대기가 마치 성화처럼 빛나며 달보다도 밝게 도시를 비추었다.


부하라에서 먹은 오쉬. 라면에 김치를 올려 먹듯 절임채소를 얹어 먹으니 더 맛있었다.


설탕물을 끓여서 굳혀 만든 나바트. 차에 녹여서 은은한 단맛을 낼 때 쓴다.


부하라 시장에서 사먹은 오쉬와 수프(만두 같은 것이 들어 있는). 이름난 음식점에서 먹은 것보다 오히려 더 맛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차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법


타지키스탄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이스마일 소모니의 영묘가 바로 이곳 부하라에 있었다.


지나가다 본 특이한 모양의 검과 가위. 새 머리 모양을 한 가위의 날이 독특하다.


옛 사우나. 안에 들어가면 또 다른 문이 있고 지하에 넓은 목욕공간을 실제로 운영중이었다. 여성전용이라 나만 잠깐 들어가서 구경했다.


우즈벡의 낙타는 털이 풍성하고 작달막한게 귀염상이다.


사람을 태우고 총총 걷는 낙타


우즈벡 빵을 굽는 모습


반죽은 이렇게 화덕의 벽에 찰싹 붙어서 노릇노릇 구워진다


춤추는 사디크를 뒤에서 찍다가 걸렸다


경주역사유적지구처럼 이곳도 아직 발굴중이다



부하라를 떠나 나와 남편은 사마르칸트로, 사디크는 카자흐스탄으로 간다. 어려서부터 집안에 세계지도를 붙여 두고 매일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꿈을 키워왔다는 사디크는 사마르칸트를 건너 뛰고 카자흐스탄을 건너 얼른 러시아로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우리 여행에서의 첫 동행이었던 사디크. 그 푸근한 인상 만큼이나 따뜻하고 배울점이 많은 친구였다. 타지키스탄 자말의 집에서 운명처럼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2주가 넘는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그새 정이 들었다. 우린 이 다음에 꼭 이란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가면서도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만남은 쉽지만 헤어짐은 늘 어렵다.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이슬람 대학이 지어진 광장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레기스탄 내부 산책


고풍스러운 옷차림의 행인


이 땅의 진주 사마르칸트


중앙아시아의 진주라는 별명에 걸맞게 사마르칸트는 빛났다.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수많은 왕조를 거쳐 티무르 제국 당시 문화의 전성기를 찍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찬란한 세월이 온 도시에 담겨 있었다.


한 여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사마르칸트도, 부하라도 아깝지 않음을 노래한 시인 하피즈. 그 시 속의 장소에 직접 와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황금빛 장식이 화려한 틸라코리 마드라사의 내부


구르 아미르. 14~16세기 페르시아 땅을 지배한 티무르 왕가의 무덤이다. 사실 이슬람에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의 무덤도 화려하게 짓지 않는 것이 율법이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교한 천장화


어느 한국인 가족분들이 찍어주신 사진. 남편이 폰배경으로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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