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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닮은나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by 소울메이트 Mar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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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지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국경을 넘은 다음 수도 타슈켄트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디크와 우리는 각자 다른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에 머물게 되어 잠시 헤어졌다가 초르수 바자르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초르수 바자르


 초르수 바자르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이다. 페르시아어로 '초르'는 '넷', '수' '방향'을 뜻하는 말로, 네 방향의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시장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사디크가 설명해주었다. 초르수 바자르에서는 온갖 종류의 물건들과 식재료들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음식도 판매하고 있어 식사 역시 가능하다.

 우리는 바자르에서 삼부사, 오쉬, 고기 수프 등을 시켜 먹었다. 타지키스탄이나 이란에서는 '삼부사'라고 불리는 빵이 여기에선 '솜사'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오쉬도 타지키스탄에서 이미 먹어보았지만 우즈베키스탄의 오쉬는 그 맛이 아주 달랐다. 야채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진한 고기기름에 버무린 우즈벡 오쉬는 나에겐 굉장히 느끼해서 먹기 힘들었다. 남편과 사디크는 좋아했지만 말이다.

 

뼈 째로 고기를 넣어 만든 양고기 솜사(좌측), 오쉬(우측)


점심으로 먹은 오쉬와 양고기 수프(좌측), 말고기를 파는 정육점(우측)


 우즈베키스탄에선 다양한 절임채소를 볼 수 있다. 어느 것은 피클처럼 생겼고 어떤 것은 우리나라의 김치와 모양이 아주 유사했다. 은 시큼하고 상큼함이 강하여 매콤한 감칠맛 위주인 우리의 김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라웠던 건 우즈베키스탄의 배추절임을 '짐채'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김치 역시 과거에 '딤채'라고 불리던 것이 변형 거쳐 오늘의 김치가 된 것이라고 알고 있다. 딤채와 짐채. 앙아시아에 이주하여 살고 계신 고려인들에 의해 전파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절임채소(좌측), 향신료들(우측)


우즈베키스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빵. 지름이 30cm 정도로 크다.



솜사를 굽는 사람들


오쉬 만드는 모습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타지키스탄에 비해 동양에 가까운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사람과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이질감 없는 얼굴들도 볼 수 있다. 첫날 유심을 구매하기 위해 들어갔던 Ucell 매장에서도 우리 동네 어디선가 뵌 듯 친근한 인상의 직원분을 만났다.

"한국사람 아니야..?"

남편이 소근소근 귓속말을 했다. 정말 한국분이신가 여쭤볼까 머뭇거리는데 그분께서 먼저 말을 걸어 오셨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놀랍게도 또박또박한 한국말로 말이다.

"앗 네에. 한국분이세요?!"

"아 저는 고려인이에요. 한국에서도 몇년 일했었어요."

오랜 세월을 서로 다른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멀고 먼 조상을 공유한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늘 처음 뵌 고려인 직원분이 퍽 가깝게 느껴졌다.

 유심을 사서 끼우고서 매장에서 나와 몇걸음 걷는데 남편이 "아까 그분이랑 같이 사진 찍을 걸 그랬나?"하고 물었다.

"그러게. 한번 여쭤볼까?"

우린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서 그분을 찾았다.

"저기..저희가 처음 뵌 고려인이서요. 사진 한 같이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서로 SNS도 교환했다. 사진 포스팅도 허락해주셨다.


Ucell 매장의 고려인 직원분


 타슈켄트 인구의 2%는 고려인이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의 문화를 도시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한국음식, 한국식 카페, 한국 식료품점 등이 흔하다. 고향맛이 그리워 들어간 어느 한식당에서는 불고기와 된장찌개 등을 시켜서 먹었는데 밑반찬까지도 한국의 어느 식당에서 먹는 것과 다를 것 하나 없는 맛이었다. 공깃밥을 혼자 두그릇이나 싹싹 비우고서 나가는 길에 앉아계신 사장님께 한국분이시냐고 여쭈었다. 알고보니 고려인 부부께서 하시는 한식당이었다. 음식은 남편분이 도맡아 하신다고 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매일 찾아가 먹고 싶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고려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한식당. 한식 뿐 아니라 고려인 메뉴도 있다.

 

 길을 걷다 작은 카페에 야외테이블이 있어 잠시 앉았다. 커피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한 직원분이 다가와 어디에서 오셨냐고 물었다. 모로코, 이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직원분은 반색을 하며 짧지만 분명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셨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말 잘 하시네요. 어떻게 배우게 되셨어요?"

그분은 BTS를 좋아해서 배우기 시작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실제로 카페 안에는 BTS 음악이 재생되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는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저희가 이 카페를 연지 얼마 안돼서 손님과 인터뷰하는 영상을 찍어 홍보를 좀 하고 싶은데 도와주시겠어요?"

"네 얼마든지요!"

테이블에는 차와 조각케이크가 차려졌고 우리는 그 앞에서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해 카페 홍보영상을 찍었다.

"고생하셨어요. '스페셜 커피&티, 조르!'하고 외치면서 마무리 할게요. '조르'는 우즈벡 말로 '좋아요' 라는 뜻이에요."

우리는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으면서 입을 모아 외쳤다.

"스페셜 커피&티, 조르!"


홍보영상 촬영을 위해 차려진 디저트는 끝나고 맛있게 먹었다.


스페셜 커피&티 직원분들과 함께



타슈켄트 지하철역


지하철의 돌기둥에 새겨진 군인 조각


 르수 바자르에서 하자티 이맘 광장으로 걸어가면 올드 타운을 통과하게 된다. 이곳은 아직 대다수의 건물이 공사중이었는데, 우리나라의 한옥마을처럼 전통 방식으로 가옥들을 지어 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사디크가 한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란에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지은 집들이 있어.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진흙과 자갈로 살을 붙여 만든 집이야."


전통가옥


올드 타운에서 장난치며 찍은 사진. 사디크는 키가 굉장히 크다.




 우즈베키스탄의 모스크는 그 특유의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흰 바탕색에 은은한 옥색의 돔을 얹고 푸른색 계열로 그려넣은 정교한 장식은 섬세하고 화려하면서도 소박하고 단정하다. 우뚝 솟은 미나렛은 별다른 장식이나 색감 없이도 재감을 확연히 드러낸다. 우즈벡 건축양식의 정수는 타슈켄트보다도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 다른 도시에서 더 대규모로 감상할 수 있다.

마이너 모스크


하자티 이맘 광장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소비에트 군인들을 기리는 공원. 공허한 눈빛으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조각상이 있다.


Monument of courage. 1966년 지진으로 붕괴된 도시를 재건한 시민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다.


노을이 지는 운하


타슈켄트의 운하를 따라 걷는다. 남편은 귀엽다는 말을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본인의 뒷모습을 본다면 나를 이해할 거다.



알리셰르 나보이. 중앙아시아의 정치인이자 시인. 최초로 우즈벡어로 쓰인 문학을 집필하였다. 그 동상의 머리 위 천장에 쓰인 글귀가 뜻깊다.



타슈켄트의 테마파크인 매직시티



 이제 우린 밤기차를 타고 '히바'로 간다. 처음으로 수학에 미지수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대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 코와리즈미'의 출생지이며, 래된 성안의 마을인 '이찬칼라'로도 알려진 도시이다.

 타슈켄트부터 히바로 우리를 데려다 줄 기차는 무려 소비에트 시절부터 이 철길을 달리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관리를 잘했는지 지긋한 나이에 비해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도 말끔했다. 열시간을 넘게 사막을 달려갈, 그리고 우리 여행에서의 첫 침대칸이기도 한 히바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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