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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r 12. 2025

어떤 장소는 단 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난 이야기에서 신발을 도둑 맞은 뒤로 나의 마음은 배배 꼬이고 뒤엉켜버렸다. 남편과 같이 바쿠를 걸어다녀도 줄곧 눈 앞엔 되찾을 수 없는 신발이 아른거리곤 했다.

 솔직히 바쿠는 고놈의 신발 사건만 없었더라면 우리의 취향에 아주 잘 맞았을 도시였다. 오래된 소비에트 시절의 건축물들,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바닷가의 산책로, 개성있는 현대식 건물들, 수도이면서도 과하게 붐비지 않고 조용한 거리 등. 한가롭게 걷기 좋아하는 우리를 위한 곳이었다.  


올드 타운


올드 타운의 요새 벽에 난 창


해안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바쿠


낚시하는 사람의 동상과 저 뒤에 펄럭이는 아제르바이잔 국기


아제르바이잔의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우리나라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하기도 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헤이다르 알리예프 센터 앞 조형물



카펫 모양의 카펫박물관



플레임 타워. 밤이면 움직이는 불꽃의 영상이 건물 외벽에 나타나 멀리서 보면 진짜 불이 활활 타는 것 같다. 바쿠에서 가장 비싼 호텔 건물이라고 한다.




 해가 질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카페에 들어가 오늘 만나기로 한 카우치서핑 친구를 기다렸다. '투랄'이라는 이름의 친구는 우리가 바쿠에 도착했을 때부터 우릴 호스팅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었는데 그가 사는 곳이 시내와 너무나 멀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맙지만 호스텔에 묵겠다 하고 대신 만나서 커피 한잔 하자고 했던 게 바로 오늘이었다.


 얼마 뒤 투랄이 카페에 들어왔다. 인상 좋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투랄은 한국 사랑이 남달랐다. 5년 전에 한국의 한 대학에 3개월 간 연수를 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공부하는 틈틈이 한국 여행을 하면서 즐거운 추억들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핸드폰 앨범에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한국여행 사진과 영상들을 보여줬다. 도심의 빛나는 밤거리와 다양한 먹거리들, 사우나에 가서 찍은 사진들, 같이 공부했던 한국인 친구들과 찍은 영상, 추운 겨울 부산의 바다에 뛰어드는 영상 등 살짝만 보아도 그가 한국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거 기억 나. '다누 더누 다눈'! 한국에서 버스타면 항상 나오는 말."

"엥? 그런 게 있나? 다누 더누 다눈..?"

"응, 다누~ 더누~다눈! 이러는 거 있잖아."

"잠깐만.. 아!! '다음 정류장은' 말하는 거구나, 하하하하."

"아 맞아맞아 그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소한 것들까지 기억하고 있는 투랄이었다.

바쿠 카우치서핑 친구 투랄


 투랄이 맛있는 아제르바이잔 음식점을 알고 있다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지 않겠냐고 해서 그를 따라갔다. 지아에서 먹었던 왕만두 힌칼리. 아제르바이잔에서도 힌칼리를 먹는데 조지아식 힌칼리 말고 아제르바이잔식으로 만든 힌칼리가 따로 있단다. 만두 모양으로 감싼 것이 아니라 접시 아래에 반죽을 얇게 펴고 그 위에 치즈, 양파, 고기 등을 올려 만든 것이 아제르바이잔 식이다. '나도예'라는 음식도 주문했는데 얇은 반죽 안에 짭짤하고 새콤한 치즈가 한가득이었다. 거기에 아제르바이잔 하면 빠질 수 없는 석류주스까지 곁들였다.

아제르바이잔 스타일의 '힌칼리'(좌측)와 치즈가 가득한 '나도예'(우측)


"우리 집에 와서 지내지. 호스텔 불편하지 않아?"

"고마워, 우리도 정말 너희 집에서 지내고 싶은데 비자 때문에 바쿠 시내에 있는 대사관에 볼일이 있는 바람에 이 근방 숙소에 있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랬어."

우린 이란에 가기 위해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하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동안은 휴무일이었어서 내일 대사관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럼 그 일 끝나면 우리 집에서 며칠 있을래?"

"그래! 정말 고마워."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부터 우린 투랄의 집에 묵게 되었다.

 

왼쪽 위가 자색당근, 오른쪽 위가 모과, 왼쪽 아래가 체리 콩포트, 오른쪽 아래가 도브가


 투랄의 집에 간 첫날부터 우리는 아기새들처럼 투랄이 주는 음식을 쉴새없이 받아먹었다. 투랄의 어머니께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시며 다양한 음식과 간식들을 차려주셨다. 위의 사진들은 모두 투랄의 부모님께서 하시는 농장에서 가져온 100% 유기농 재료들 내지는 그것들로 만든 것들이다.

 '콩포트'란 설탕을 넣어 과일을 졸여낸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선 특히 체리 콩포트를 마트에서나 음식점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투랄의 집에도 체리 콩포트가 있었는데 확실히 직접 만든 것이라 시중의 것들보다 색과 맛이 비교도 안되게 진했다.

 '도브가'는 요거트에 각종 허브를 넣어 끓인 수프이다. 이 역시도 흔히 밖에서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유기농 요거트의 깊은 맛에서 차이가 확연히 났다.

 모과를 생과일로 먹는 것은 투랄의 집에서 처음 보았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모과는 생으로 먹으면 떫기 때문에 청으로 만들거나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시지 않나? 그런데 아제르바이잔의 모과는 생으로 먹어도 별로 떫지 않고 아삭하면서 살짝 달달한 맛도 있어 먹을만 했다. 물기가 쫙 빠진 배랑 비슷하달까.


아제르바이잔의 미니만두(좌)와 그걸로 만든 수프(우)

 위의 음식은 정확한 이름은 잊었다. 첫눈에 보고서 '우와, 완전 쪼꼬만 만두 같이 생겼어!'라고 했던 기억만 난다. 투랄은 껄껄 웃으면 쪼꼬만 만두가 맞다고 했다. 만드는 방법은 만두와 아주 비슷하다. 고기와 야채를 섞어 만든 소를 반죽 안에 넣어 빚는 것. 근데 손톱만큼 아주 작게 말이다. 어머님께선 이것으로 만둣국을 끓여주셨다. 맛도 만둣국과 아주 흡사했다. 잠시 거인이 되어 소인국의 만두를 흡입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투랄네 농장에서 난 밀로 만든 빵(좌), '돌마'라는 음식과 아제르바이잔식 밑반찬들

'돌마'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먹은 것 중 내 입맛에는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다. 양배추 안에 다진고기를 넣고 말아서 만든다. 돌마만 먹어도 맛있지만 피클이나 과일소스와 같이 먹으면 고기에 김치를 얹어서 먹는 것처런 느끼함을 싹 잡아주어 돌마 두세접시를 그냥 비우게 된다. 피클의 새콤함과는 잘 어울릴 걸 예상했는데, 과일소스도 곁들여 먹는다니 처음엔 조금 의아했다. 베리류의 과일을 졸여서 만든 잼같은 소스였다. 돌마를 약간의 소스에 찍어 먹었더니 오히려 피클보다도 잘 어울리는 맛이어서 신기했다.

 투랄네 집에는 모든 것이 유기농이다. 치즈, 계란, 야채, 빵, 버터, 참깨 등등 투랄이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는데 '이것도 오가닉(organic). 저것도 오가닉. 오가닉, 오가닉..', 그냥 주방이 통째로 오가닉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물까지도 시골에서 직접 물통에 받아온 청정수를 마신다.


 한번은 우리가 마트에서 계란을 고르는데 투랄이 말렸다.

"워워, 계란 살 필요 없어. 여기 계란은 신선하지 않아. 우리집에 유기농 계란 있잖아. 그거 먹자." 라면서.

투랄 걱정 마, 우린 이미 농약과 항생제에 찌든 재료들에 면역이 단단히 되어 있는걸.. 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굳이 몸에 좋은 재료들이 있는 걸 놔둘 필욘 없으니 투랄 말대로 했다.

 그렇게 그의 집에 있는 동안에 우리는 디톡스를 제대로 하였는지 안색도 좋아지고 신대사가 원활해진 게 느껴졌다. 몸의 피로도 사라졌고 배변 활동도 아주 바람직했다. 투랄이 말하길 본인은 밖에서 식사를 하면 쉽게 배탈이 난다고 하며 아무래도 평소 유기농 음식에만 익숙해서인가 보다고 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경험을 했는데, 나중에 투랄의 집을 떠나 외식을 하자 하루쯤 뱃속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투랄이 직접 마당에서 구워주는 양꼬치, 닭꼬치 구이


아제르바이잔식 우족탕


'큐큐'


포도잎 돌마


 아제르바이잔 대부분의 먹거리를 투랄과 함께 맛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매일 같이 새로운 음식이 식탁에 차려졌다. 하루는 집 마당에서 직접 불을 피워 꼬치구이를 해  먹기도 했다. 양고기의 향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이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잡내가 하나도 나지 않아 정말 배가 터져라 먹었다. 투랄의 어머니께서 특별한 허브를 쓰신 건지, 아니면 투랄이 잘 구워서인지, 둘 다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아니면 따뜻한 가족과 함께해서 그랬을까.


 아제르바이잔에선 특이하게도 아침식사로 우족탕을 먹기도 한다. 뭐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보통 아침에 기름진 음식은 잘 안 먹게 되던데. 뭉근하게 끓여 찐득찐득할 정도로 잘 우려진 우족탕은 진한 맛이긴 하였으나 나는 조금 냄새가 나서 많이 먹진 했다. 남편을 비롯하여 모두들 잘 먹던데 내가 냄새에 너무 예민한 탓인 것 같다.

 또 다 아침식사용 음식으로 '큐큐'라는 것이 있다. 네 종류의 야채에 계란을 섞어 오믈렛처럼 만든 것이다. 발음을 '큐큐'와 '츄츄'와 '퀴퀴' 그 사이의 어디쯤으로 하던데 따라하기 어려웠다. 빵과 함께 먹으니 맛이 아주 좋았다.

 지난 번에는 양배잎 돌마였는데 이번엔 포도잎으로 감싼 돌마를 먹게 되었다. 포도잎은 아직 덜 자란 잎들로만 골라 아주 작고 얇다. 그걸 쪄서 한장 한장 떼어내 고기를 감싸 만들어 요거트와 같이 먹는다. 양배춧잎 돌마와 포도잎 돌마 중에 어떤 것이 더 맛있었냐고 물으면 나는 포도잎 돌마를 고르겠다. 좀더 담백하부드러웠기 때문이다.


 하루는 우리가 요리를 하기도 했다. 투랄의 딸이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해서 나는 김밥을 만들고, 남편은 오랫동안 묵혀왔던 피자굽기 실력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나는 무슨 김밥을 만들까 하다가 참치김밥을 선택했다. 엄밀히 말하면 참치땡초김밥인데 들어간 고추가 청양고추만큼 맵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원한 맛은 있었다. 캔참치의 기름을 쏙 빼고 마요네즈와 잘게 썬 풋고추를 섞어 두고, 자색당근도 조금 볶아서 더했다. 그 맛은? 한 줄 썰면 가족들이 이미 하나씩 다 먹어서 그 다음 줄을 썰기도 전에 접시가 비워졌다. 참치김밥이 실패하기란 어렵다. 깻잎이 없는 것이 조금, 아니 많이 아쉬웠지만. 

 남편은 모로코에 살 때 집에서 가끔 피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피자 도우 뿐 아니라 남편은 다른 모로코 빵들도 가끔 만들곤 했는데, 제빵에 재능이 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 땐 집에 오븐이 없어서 자를 못 만들었지만 그 솜씨를 오늘 오랜만에 발휘할 기회가 왔다. 남편은 양송이 버섯, 양파, 토마토, 파프리카, 닭가슴살, 캔참치, 치즈, 올리브를 토핑으로 준비했다. 치킨피자와 참치피자를 각각 만들 모양이다. 약간의 올리브는 작게 썰어 도우에 섞은 다음 정성껏 밀대로 밀었다. 잘 펴진 도우를 구워낸 후에 토핑을 있는대로 잔뜩 올려 다시 한번 구우면 완성이었다. 그 맛은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먹어본 피자 중에 제일이었다.

피자를 만드는 남편


피자와 김밥이 있는 밥상

 

 하루는 투랄과 같이 바쿠를 산책했다. 현지인 친구를 따라다니니 우리 둘만 다닐 때는 지나쳤던 것들도 눈에 들어와 속속들이 도시를 관찰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바쿠의 카우치서퍼 모임에도 갔다. 현지인 친구들 뿐 아니라 바쿠에 여행을 온 러시아-벨라루스 커플, 인도 청년, 사우디 아라비아 청년, 바쿠에서 사업을 한다는 파키스탄 친구들도 만나 각자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서는 다 같이 탁구를 치러 가기도 했다.


올드 타운의 거리. 나무로 짜인 발코니가 고풍스럽고 섬세하다.


밤이 찾아오는 바쿠의 풍경


국기를 흔드는 사람의 형상이 플레임 타워에 나타난다.


타오르는 플레임 타워


카우치서퍼 모임


소녀의 탑

 '소녀의 탑'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이 탑은 아제르바이잔 말로 '기스(소녀)갈라시(탑)'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본래는 '그쥬(눈)갈라시(탑)'가 진짜 이름이었다고 한다. 외세의 침입을 감시하는 '눈'과 같은 망루라는 뜻이다. 그랬던 탑이 언제부턴가 어느 소녀가 이 탑에서 자살을 했다는 식의 꾸며낸 이야기가 돌면서 '기스 갈라시', 즉 소녀의 탑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투랄과 남편, 그리고 안광을 내뿜는 사자


환히 빛나는 밤거리. 우측은 투랄이 나온 대학이라고 했다.


'사모바르'. 찻물이 담긴 통의 가운데에 화로가 있어 독특한 방식으로 끓여내는 아제르바이잔식 차.


여러 종류의 '므라빠'. 과육의 탱글탱글한 모양을 살려서 만든 잼이다.


천연가스 생산지로 유명한 아제르바이잔. 그 가스로 만든 탄산수. 일반 탄산수와 달리 건강에 좋다며 투랄이 권했는데, 맛이 짜고 낯선 향이 났다. 가스가 매장돼있던 지하의 향인가.


가스와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연방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 기념비의 중앙에는 항상 불꽃이 타오른다.
계단을 오르거나 푸니쿨라를 타면 볼 수 있는 전망


광장 바닥에서 두는 체스


대형마트에 있던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 이때는 마트에 화덕이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는데 중앙아시아에선 이게 흔한 일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된다.


투랄의 아버지와 체스를 두는 남편

 투랄의 아버지께선 입가에 시종일관 인자한 미소를 띠신 신사셨다. 체스 두기를 좋아하시고, 하루에도 여러번 차를 드시고, 매일 아침 정원의 장미꽃 한송이를 내게 선물해주실 정도로 낭만적이시고, 빛바랜 사진첩에 아직까지도 과거의 모든 추억을 간직하실 만큼 섬세하신 분이었다. 느 날 아버님께서 주섬주섬 서랍속에서 무언가를 찾으시더니 우리에게 아주 오래된 가족 사진첩을 가져와 보여주셨다. 그 안에는 군생활을 하던 시절 앳된 아버님의 얼굴, 투랄의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서로를 만나셨던 학교에서의 날들, 대학에서 클럽활동을 하시던 시간이 담긴 사진들이 한장 한장 정성들여 끼워져 있었다. 1975년, 처음 호감을 고백했던 건 바로 어머님이셨다. 예쁜 장미 세송이가 그려진 엽서에 정갈한 글씨로 짧지만 진심이 담긴 러브레터를 써서 아버님께 보내셨던 것이 앨범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1977년에 두분은 결혼에 골인하셨다. 당시 결혼식장에 식을 올릴 날짜를 잡았던 증명서도 앨범에 있었다. 첫 만남, 고백, 설레던 데이트와 결혼식까지. 수십년이 지나도록 이 모든 걸 간직하고 있는 남자라니. 이러니 아머님이 반하셔서 먼저 용기를 내 고백을 하셨던가보다.


아버님께서 건네주신 장미꽃


젊은 시절, 투랄의 부모님(좌), 앨범에 끼워져 있던 부모님의 결혼식장 예약내용이 적힌 종이(우)


앨범에 들어 있던 장미그림이 그려진 엽서, 그 뒷면에는 그 옛날 어머님께서 아버님께 보내셨던 러브레터가 적혀 있었다.


투랄의 집에는 골동품이 많았다. 소비에트 시절 만들어졌다는 에어컨(좌), 투랄의 먼 조상님이 쓰셨다는 말채찍(우).


도미노 게임


그리고 어느새 다가온 작별의 시간


마지막날까지 장미를 주시던 아버님


 행복의 크기만큼 이별은 빠르게 찾아왔다. 우리는 이란 비자를 결국 받지 못했다. 비자도 못받고 2주가 넘게 기다리기만 했는데도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았던 건 모두 투랄 덕분이었다. 바쿠에서 첫날에 있었던 도난의 경험으로 출발은 썩 유쾌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아제르바이잔을 떠올리면 이젠 미소가 먼저 지어지는 이유도 다 투랄이 있어서였다. 이 멋진 친구를 만난 것은 우리 여행에서 만난 가장 큰 행들 중 하나였다.


 투랄은 우리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출국수속장 입구로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그 앞에서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그 따뜻함에 눈가가 뜨거워져 손등으로 눈두덩이를 슥 훔쳤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카우치서핑 중 가장 힘든 이별이었던 것 같다.

 이후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다니면서도 투랄은 틈만나면 생각나는 친구다. 만나는 사람들이 아제르바이잔은 어떤 나라였냐고 물으면 우리는 이렇게 운을 뗀다.

"그곳에서 우리는 잊지 못할 친구를 만났고 모든 건 그에게서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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