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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노는 건 포기할 수 없다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by 소울메이트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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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바이에서의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왜? 부르즈할리파와 그 앞 부르즈공원에서 펼쳐지는 새해 맞이 불꽃놀이와 분수쇼를 구경하고 싶어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국인 아랍에미리트, 그 자본의 맛 좀 구경이나 해보자 하고 두바이 행을 결정했다.

공항에서 무료로 주는 웰컴 유심칩공항에서 무료로 주는 웰컴 유심칩

 두바이 공항에서는 도착시 여행객들에게 무료 유심을 인당 하나씩 제공한다. 유심은 등록을 한 시각부터 24시간 사용이 가능하고 최대 10GB를 쓸 수 있다. 최저가 유심을 사서 한 달에 5GB로 버티는 데에 익숙한데, 하루 10GB를 무료로 선심 쓰듯 나눠주는 나라에 오다니. 돈 많은 이곳에서 이 작은 유심쯤은 아무것도 아니려나. 무튼 공짜유심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롤스로이스 발레 파킹을 하고 계신 어느 직원분. 내가 저 분이면 혹여 어디 스치기라도 할까 손이 떨릴 것 같다..


두바이몰 가는 길두바이몰 가는 길


 기분은 좋은데 몸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부터 아프던 것이 오늘 두바이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소염제, 해열제를 계속 먹었는데도 어젯 내내 열이 떨어지질 않았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몸이 젖은 이불마냥 가누기 힘들다. 목소리는 여전히 안나오고 콧속이 꽉 막혀 입으로 숨을 쉬느라 인후통은 더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아침에 세수하면서 막힌 코를 흥 풀었는데.. 아니 세상에 코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오는 것이었다..!

"으악!"

어려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생 첫 코피였다. 아마도 며칠간 열에 시달려 그런 것 같다. 쌍코피가 아니라 외코피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 무함마드는 부르즈할리파 새해맞이를 보러 가겠다는 오늘 우리의 계획을 듣고는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음.. 나라면 그곳에 가지 않을 것 같아. 난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싫어서 거기서 새해를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어. 집에서 조용히 친구들을 초대해 노는 편이지."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 계획을 취소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래도 여기까지 온 목적은 달성을 해야겠다는 고집이 생겼다. 남편은 내가 많이 아픈 걸 보고 정말 갈 수 있겠냐고 재차 물었다. 그에 괜찮다고 걱정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불행히도 지혜롭기보단 노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로 인해 부르즈 공원과 두바이몰 주변 교통이 모두 통제가 되고 오직 보행자만 통행이 가능했다. 해도 지기 전인데 벌써 도로변의 부르즈할리파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 정보도 없이 온 우리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건,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없어졌다는 거 아닌가..?


 두바이몰에 들어가 여기저기 물어보니 우리의 감이 맞았다. 이미 부르즈 공원나 부르즈할리파가 잘 보이는 두바이몰을 비롯한 주변 식당, 카페들은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 본 몇몇 식당들은 공석이 있어도 이미 예약된 자리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남은 자리가 있다고 했다. 얼마인지 물어봤더니 테이블 위치별로 가격대를 보여주시는 직원분.

"뜨헉!"

그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우리가 지금껏 10개월간 쓴 여행경비의 자그마치 4분의 1에 달하는.. 그 큰 돈을 새해 전야의 단 몇 시간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우리는 그 돈이면 반년을 동남아에서 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 정까지 남은 시간은 두바이몰을 둘러보기로 하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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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몰 차이나타운


디자인이 인상적인 인공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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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 바로 화장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신기해서 찍고 있다. 웬만한 집보다 잘 꾸며지고 쾌적한 화장실이었다.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신기해서 찍고 있다. 웬만한 집보다 잘 꾸며지고 쾌적한 화장실이었다.

 

 체력만 좋았더라면 밖으로 나가 몇킬로든 더 걸어다니면서 조금이라도 괜찮아보이는 자리를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나 발품을 팔아봤을텐데 오늘 나의 몸으로는 영 불가능했다. 코피가 하루종일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휴지로 야무지게 틀어막으면 '어 이제 멈췄나' 싶다가도 몇 분 뒤에 다시 이물감이 들어 코를 풀어보면 적지 않은 양의 피가 나왔다. 약을 먹어가면서 좀더 걸어보려고 해도 다리는 자꾸 힘이 풀렸다. 우린 결국 몰 안의 카페에서 조금 쉬다가 일찍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려고 밖에 나왔을 땐 인파가 수배로 늘어나 있었다. 엄청난 군중 사이로 걸으면서 출구를 찾았는데 그 어디에도 나가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저기, 여기 출구가 어딘가요?"

"출구는 없습니다."

"네에?!"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농담은 아닌지 두 귀를 의심했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새해맞이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출구가 열리지 않아요. 행사 이후로 개방되니 그 때 나가시면 됩니다."

아이고. 그 말을 듣고 정말 주저 앉을 뻔 했다. 말이 좋아 축제이지 환자인 나에게 이건 그냥 감옥이었다! 

 곧 두바이몰도 문을 닫았고 우리는 몰 안에 돌아가 앉을 수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불쌍하게 쭈그리고 앉았다. 그 불편한 상황에서도 다들 불꽃놀이를 볼 준비를 하며 설레고 있었지만, 나는 슬슬 약효가 떨어지고 다시 뜨겁게 열이 오르면서 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꼭 부르즈할리파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놀았을 것을.. 지금은 좀비가 돼버린 나와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남편만이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푹 쉴걸 큰소리 치며 나왔던 게 잘못이었다. 어린시절 나는 놀다가 잠이 오면 내려앉는 눈꺼풀을 손으로 잡아 고정시키면서까지 놀았다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버릇을 아직까지 갖고 있다가 이 사달이 났다..


 거의 두 시간을 그곳에 앉아 기다리다 마침내 새해 첫 자정이 다가왔다. 나에겐 특히나 구세주같은 순간이었다. 지금은 불꽃놀이고 뭐고 곧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새해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화려하게 터져나오는 부르즈할리파의 불꽃


계속되는 불꽃쇼

 듣던대로 부르즈할리파의 새해 불꽃쇼는 황홀하게 밤하늘을 수놓았다. 하지만 오늘 너무 고생을 해서일까, 마음 먹고 당을 잡아 쇼를 감상한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아마 시간을 돌린다면 이곳에 오지 않고 무함마드의 집에서 같이 영화도 보고 얘기도 하며 평범한 새해 전야를 보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오직 이 쇼를 보기 위해 출구도 없는 인파 속에 갇혀 몇 시간을 기다리는 건 누구에게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단, 다소 거금을 들여서라도 탁 트인 전망을 갖춘 레스토랑에서 특별한 송년의 밤을 미리 계획했다면 또 모르겠다.




 다음날에는 남편의 고향 친구가 일하고 있는 크루즈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직원의 초대를 받으면 일몰부터 자정까지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전날보다 컨디션이 크게 나아진데다 루즈 안은 쉴 곳도 많고 붐비는 것도 아니라, 어제와는 달리 편히 저녁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크루즈 안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이 많은 시설을 어떻게 한 배에 조직하여  새해 첫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와 파티, 운 좋게도 마술쇼까지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구경만 하고 가지만 이 다음엔 가족들과 크루즈 객실을 예약해서 며칠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루즈 외관크루즈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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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고맙게도 우리를 초대해 준 친구고맙게도 우리를 초대해 준 친구


짤막하지만 유쾌한 공연짤막하지만 유쾌한 공연



레스토랑 겸 각종 식이 진행되는 행사장레스토랑 겸 각종 식이 진행되는 행사장



카지노카지노


마술쇼. 이 부분은 정말 어떻게 한 건지 짐작조차 안 간다.


뷔페뷔페


크루즈가 큰 줄은 알았지만 내부에 체육관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크루즈가 큰 줄은 알았지만 내부에 체육관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갑판에서 열리는 클럽갑판에서 열리는 클럽


브라질에서 왔다는 오늘의 DJ브라질에서 왔다는 오늘의 DJ


브런치 글 이미지 19




 두바이에는 많은 액티비티가 있다. 시티 워킹투어에서부터 사막투어까지 아랍에미리트의 물가를 감안하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체험이 가능하다. 몸상태만 양호했어도 하루 이틀은 액티비티를 해보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진 못했다.

 우리는 마지막 며칠을 두바이 근교의 샤르자라는 도시에 사시는 남편의 사촌 댁에서 보냈다. 이때까지도 컨디션 난조를 이어가던 나에겐 거의 요양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사촌은 매일같이 모로코식 식사를 준비해주셨는데 그 손놀림이 얼마나 능숙한지 만들기 어렵다는 쿠스쿠스조차 30여분만에 뚝딱 만들어내셨다. 지내는 동안 정말 모로코로 공간이동을 한듯 식사와 모로코 차와 모로코식 커피까지 하루도 빠짐 없는 보살핌 속에서 마침내 두바이를 떠나는 날 나는 제 목소리를 찾게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0


요리하시는 사촌요리하시는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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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쿠스(좌), 타진(우)


모로코식 한끼 밥상모로코식 한끼 밥상

 아파도 노는 걸 멈추기 싫었지만 그런 내 마음을 몸까지 따라가주진 못했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건강할 때에는 수백가지의 걱정거리가 있지만, 건강을 잃은 순간부터는 단 한가지의 걱정거리(바로 '건강')만 남는다고 했다. 그만큼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걸, 놀고 싶어도 제대로 놀지 못한 두바이에서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이번엔 더더욱 힘겹게 회복한 건강인 만큼, 앞으로는 더 신경써서 잘 지켜가야겠다고 마먹었다. 그도 그럴것이 다음 나라는 추운 겨울, 아제르바이잔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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