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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너,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파키스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훈자

by 소울메이트

라호르에서의 즐거운 나날이 지나고 내일은 이슬라마바드에 가는 날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가님께서 이슬라마바드 위험하다고 가급적 오지 말라고 하셨는데..! 도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첫번째 이유는 훈자마을에 육로로 가기 위해서는 이슬라마바드를 거쳐야 해서였고, 주된 목적이었던 두번째 이유는 인도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요즘 인도여행이 전자비자 발급으로 편해졌지만 파키스탄과 인도 사이의 와가보더를 걸어서 건너려면 전자가 아닌 대사관발급 비자가 있어야 한다나. 그래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가님껜 우선 비밀로 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이슬라마바드행을 결정했다.


이슬라마바드로 떠나기 전까지 우린 친구 아지르와 함께 라호르를 맘껏 즐겼다.

넷이서 한 바이크 타기. 탑승한 네명은 신났는데 바이크만 돌돌돌 고생했다.


아지르, 나시르, 그리고 또 한명의 카우치서핑 게스트인 러시아에서 온 나타샤와 함께.
요리가 아니라 예술을 해버리시는 파키스탄 요리사님. 신명나는 연주에 주방 직원분도 덩실덩실 우리도 덩실덩실 어깨춤이 나온다.


우즈베키스탄이 떠오르는 빵굽는 화덕


이슬라마바드로 갈 때 '파이잘 무버'라는 회사의 버스를 탔다. 아무 기대 없었는데 아주 넓고 좌석도 편해서 깜짝 놀랐다. 이런 버스라면 한나절도 달릴 수 있겠다 생각하며 5시간을 달려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파이잘 무버 버스


바이크에 그 무엇이라도 다 실어버리는 파키스탄 사람들


목재를 싣고 가는 귀여운 트럭


세 아이를 태우고 등교하시는 아버지

하루 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우버를 타고 주파키스탄 인도대사관으로 향하는 길. 우버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씀드리자 고개를 저으시며 거긴 못간다고 하신다.

"대사관으로 직접 가는 길은 막혔어요. 중간에 대기하는 곳이 있으니 거기에 내려줄게요."

아리송했으나 일단 기사님 말씀대로 했다. 기사님께서 내려주신 곳에는 비자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대사관들이 있는 장소로 가려면 이곳에서부터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라마바드에선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어느 대사관에 방문하든지 이곳을 꼭 거쳐야 한단다. 버스티켓을 사기 전에 먼저 휴대전화까지 걷어가 버린다. 그러고 짐검사를 거쳐 어느 건물에 들어가면 티켓 구매를 위한 줄을 또 서야한다. 렇게 우리 차례가 왔는데 티켓이 무려..

"1500루피요?"

"네에~ 인당 1500루피. 왕복버스값이에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7500원 정도다. 대사관까지의 거리는 불과 2~3km. 이 거리를 잠깐 탄다고 나와 남편 둘이서 1만5천원을 셔틀버스에 쓰라는 거다. 게다가 인도비자를 오늘 신청할 때 한번, 다음에 비자를 받으러 올 때 또 한번, 만약 중간에 추가서류제출 등 문제가 생기면 두세번을 더 대사관에 왔다갔다 해야할지도 모르는데 그 때마다 이 돈을 내야 한다.

"저희 버스 안타고 그냥 걸어갈 수는 없어요?"

"걸어가는 길은 없습니다."

뭐 이런.. 너무 대놓고 돈을 뺏어가는 거 아닌가? 세상에 대사관 방문하는데 셔틀을 억지로 태워서 수금을 하는 나라는 또 처음이다. 아니 여행자들은 그렇다 쳐도 파키스탄 현지인들까지도 똑같이 1500루피를 받는다. 현지인 중 형편 넉넉한 사람은 얼마 안될텐데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딱이다.

우린 이 화딱지나는 상황에 의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인도비자 신청 한다고 해도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대. 여차하면 한달 이상도 기다릴 수 있다는 거야."

"그래.. 이래저래 인도비자는 접는 게 나아 보이네."

이러저러하여 인도비자는 결국 안받기로 했다. 육로만 길인가. 어디든 날아가면 되지. 어차피 정해진 계획도 없이 흘러가는대로 떠도는 여행이었다. 그저 셔틀버스에 치민 부아가 쉽게 가라앉지 않아 한동안 씩씩거렸을 뿐이다.

우린 다 관두고 카페에 가 커피 한잔에 분이나 좀 식히자 하고는 그 이상한 곳을 빠져나왔다.


카페 앞을 지키시는 경비.. 아니 군인..? 아니 경비 아저씨, 그런데 이제 총으로 무장하신.


한 카페에 들어가 음료를 쪼옥쪼옥 빨며 멍하니 앉아 한 것도 없이 피곤한 오늘을 돌아보았다.

셔틀버스 명목으로 삥을 뜯는 정부.

어딜 가나 총은 기본으로 갖춘 경비인력이 상시 배치된 매장들.

파키스탄. 정말이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휴우.. 우리 그냥 다시 라호르로 갈까?"

한숨을 폭 쉬며 남편에게 말했다.

"왜? 훈자는 어쩌고?"

"훈자야 뭐.. 가면 좋기야 하겠지. 근데 좀 피곤하네. 갑자기 다 귀찮아."

"음.. 그럴까 그럼? 라호르 가서 쉬다가 일찍 다른 나라로 떠날까?"

언제나 의욕 넘치던 남편도 오늘은 웬일인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에게 동조했다. 어제까진 라호르에서 참 행복했는데. 하루만에 김이 팍 새버린 기분이다.

우린 라호르의 아지르에게 문자를 했다.

'친구야, 우리 훈자 안 가고 곧바로 라호르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혹시 이번에도 너희집에서 같이 지내도 될까?'

보낸지 얼마 안돼 답장이 왔다.

'그럼, 언제든지 편히 와. 근데 훈자는 왜 안가기로 한거야?'

아지르가 물었다. 우린 긴 얘기는 생략하고 라호르가 그립다고 대충 얼버무려 답장을 보냈다.

곧 아지르가 다시 답장을 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런데 친구, 조언을 하나 하자면, 훈자를 안 가는 건 엄청난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거야!'

그 문자는 우리의 식어버린 마음에 솔솔 다시 불을 지폈다.

"어떡하지. 엄청난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거라는데?"

다시 곰곰이 생각하니 아지르의 말이 맞았다. 여기까지 와놓고 지금 당장 가라앉은 기분으로 인해 돌아선다면 나중에 후회할 게 뻔했다.

"오케이. 가자 훈자!"

바람 부는 갈대밭 같은 우리의 마음을 아지르의 현명한 한마디가 구제해 준 거나 다름 없었다.


이슬라마바드의 메트로버스 정류장


여성과 아동을 위한 좌석이 따로 있다.


어느 대중교통이든 남녀 좌석에 구분이 있다. 앞 절반은 여성, 뒤 절반은 남성.


이슬라마바드에서 남은 하루를 뭘 할까 하다가 파키스탄 최대 규모의 파이잘 모스크에 갔다. 모스크는 높은 단 위에 지어져 주변의 산봉우리가 아주 가까이서 보였다.

**최근 파이잘 모스크는 관광지라 테러 위험이 있어 방문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한다.

파이잘 모스크


식수대에서 물병을 채우는 사람. 나는 마시면 물갈이를 할까봐 안 마셨다.


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 주스를 만드는 소년


길에서 파는 걸죽한 밥. 음식 이름이 뭐라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단순해보이는데 맛있어서 한그릇 더 먹었다.


파키스탄에선 노상 이발소가 흔하다.


길가 음식점에서 시켜 먹는 오믈렛과 탄두리 로티와 카락차이


조촐하지만 정감있는 부엌


오믈렛 만드시는 모습을 찍도록 포즈를 취해주시는 요리사님. 없던 미소까지 희미하게 장착해주셨다.


음식점에서 주전자에 담아 주는 마실물은 대개가 이런 통에서 퍼 담는다. 통 안의 물은 깨끗해보여도 안 마시는 게 낫다.


파키스탄에선 바깥에서 여자를 보기 힘들다.

파키스탄 사회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게 매초 체감될만큼 보수적이다. 음식점이고 커피숍이고 공공장소이고 간에 밖에서는 여자를 보기가 힘들다. 간간이 낮에 장보러 나온 여자들을 버스나 마트에서 보기는 하지만 밖에서 일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가끔 남녀가 섞여 다같이 외식을 나온 가족이 있으면 음식점에서도 안쪽이나 다른 층에 별도로 마련한 '가족석'으로 안내해준다. 나와 남편도 항상 가족석에 앉아 밥을 먹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거는 일도 드물다. 특히 유부녀에게는 더욱 그렇고 남편과 같이 있는 유부녀는 눈도 쳐다보지 않기도 한다. 이슬람 종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거다. 처음엔 이런 문화를 모르고 나를 무시하는 줄만 알았다.

"뭐야. 왜 나는 본척도 안해?"

남편한테 물으면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을 때도 남편한테만 묻고 나에겐 안 물어서, 한번은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하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소심하게 한마디 한 적도 있다. 심지어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친구(남성)도 얘기할 때 남편쪽만 보고 나와는 눈도 잘 마주치질 않았다.

난 투명인간이 아니라며 삐죽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나중에 설명해주길, 부부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느라 그런 거라고 했다.

"이슬람의 문화인 거지 여보를 무시하는 게 아니니까 너무 기분 상하지 마."

"알겠어. 근데 모로코에선 이런 적 한번도 없었단 말이야."

"하하, 모로코는 엄청 방적인 거고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아주아주 보수적인 거고."

그렇다고 한다. 어쨌든 문란하게 치근덕거리는 것보단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훈자로 가는 야간버스에 탔다. 구불구불 산길을 달려, 아니 달린다기보단 급가속과 급정거를 반복해가며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뒤뚱뒤뚱 나아가는 버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이름만 그렇지 정말 하이웨이(고속도로)가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인지라, 자칫하면 낭떠러지고 낙석의 위험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버스는 만석인데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탄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거짓말이 아니라 그 중에 절반은 구토를 했다. 식구들이 전부 토하고 있는 가족도 있었다. 좌우로 롤러코스터마냥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승객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파키스탄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길고 긴 밤이 지나고 이튿날. 우여곡절 끝에 훈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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