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어려서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말씀으론 "어려선 동네 뒷산만 데려가도 짜증 내고 울상이더니, 결혼하고서 변했다"라고 하신다. 정말로 결혼 후에는 한국에서 거의 매주 주말 산을 탔을 만큼 등산에 열심이었다. 나는 왜, 언제부터 등산을 즐기게 된 걸까.
가만 생각하니 등산의 참맛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알게 되는지도 몰랐다. 더 넓은 물로 나가고, 다양한 얼굴들을 만나고,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이 생기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그렇게 세상의 때가 타고, 그저 말갛기만 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에 어른의 옹이가 박혀가면서부터.
어른의 삶이란 건 그런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의도했든 안했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뒤에서 수군댄다. 남이 나를 평가하고, 나도 남을 증오하고, 그럼에도 감정을 꾹꾹 눌러담으며 매일같이 가면을 써야하는 일상이 계속된다.
그 전쟁터를 살아내다 보면 자연스레 산을 타고 싶어지는 것이다.
산은 나에게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 무얼 하러 왔는지, 무슨 마음으로 왔는지, 무얼 입고 왔는지 그 아무것도 묻지 않고 두팔을 벌려 맞아준다. 설령 꼭대기에 오르지 않을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포근한 흙으로 내딛는 발을 감싸주고, 뙤약볕이 뜨거울세라 나뭇잎으로 그늘을 내려주고, 심심하지 않도록 산길에 말동무라도 하라고 지저귀는 새들을 보내준다.
모두에게 똑같이.
산은 사람을 가리는 법이 없다.
신기한 것이 산에 가면 사람도 변한다. 표정 없는 얼굴로 마주쳐도 눈인사조차 하지 않던 사람들이 산에서는 반갑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하고 서슴없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직장에선 옆사람을 은근 깎아내리고 그 위로 올라서려 애썼다면, 산에서 만난 옆사람은 담소를 나누고 간식을 나눠 먹는 동무가 된다. 사회에선 조금만 뒤쳐져도 어떻게든 실패자의 낙인이 찍혀버리고 말지만, 산에선 뒤쳐지면 앞사람이 끌어주고 뒷사람이 받쳐준다.
ABC 트레킹에서도 마찬가지다. 생김새도, 언어도, 옷차림도 다르지만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며 서로 교차하는 눈빛들 사이에는 아무 장벽도 없다. 세상에서 그 흔하던 혐오과 차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산에 오면 사람도 사람을 가리지 않게 된다.
등정을 할 때의 성취감 보다도
오를수록 깊어지는 경치 보다도
산 속에서 변해가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이 좋아서
그래서 우리는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