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모로코에 간지 벌써 3주다. 더위가 가실 때쯤에는 한국에 돌아올테지만 그 사이 홀로 남은 시간이 가슴 속에 뻥 뚫린 공백을 만들어놓았다.
혼자였을 때는 외로움을 몰랐다. 어려서부터 형제가 없는 것에 익숙했고, 혼자서도 잘 놀았고, 커서도 부러 누구를 만나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오히려 혼자라는 건 나에게 고독이 아니라 자유였다.
결혼도 굳이 해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적절한 인연이 찾아오면 자연스레 하게 될테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구태여 남과 같이 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미 나로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데.
그러다가 기가 막힌 우연인지, 잘 짜여진 운명인지 모르게 남편을 만나고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사랑이지만 같이 사는 건 현실이라는 말처럼 힘든 일도 많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런 우여곡절을 같이 넘기고, 새로운 곳에 가늘고 연약한 뿌리를 내려 터전을 잡았다. 그 후 대단한 목돈은 아니어도 꾸준히 모아 일년간 함께 세계의 곳곳을 누볐다. 여행이 끝날 무렵, 365일 중에 300일은 싸운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땅을 한바탕 갈아 엎어야 농사도 지을 수 있듯이 지지고 볶으면서 그만큼 더 돈독해진 관계의 밑거름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일년의 여행 후 곧바로 찾아온 잠깐의 이별이 너무나 힘들다. 나도 같이 갈걸 그랬다고 하루에도 몇번을 후회한다. 실은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타이밍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기대보다 일찍 나에게 취업의 기회가 와버렸던 것이다.
지금 같으면 '일이야 언제든 다시 구하면 되니 지금은 무조건 남편을 따라가자'며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를 끊었을 거다. 그렇지만 기회가 찾아온 당시에는 이걸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마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버렸다. 결국 나는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에 이사를 오면서까지 일을 시작해버렸고 모로코행은 무산됐다.
일을 하고 눈코뜰 여유 없이 바빠지면 두달 남짓한 시간을 금세 흘려보낼 수 있을 거라는 어림도 없는 착각속에 벌인 일이었다. 기대와는 달리, 근무 중에는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외로움은 밀려왔다. 게다가 부모님마저 멀리 계시는 낯선 도시에서의 삶은 설상가상으로 나를 괴롭게 짓눌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먹는 저녁밥상 위에 챙챙 부딪히는 젓가락 소리가 너무도 컸다. 태어나 처음으로 외로움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기분이다.
사회에 나와 얻은 첫 직장에서 신입으로 일하는 동안 입사동기는 나에게 말했었다. "입사교육이 시작되고 첫 휴일이 될때까지 너무 힘들어서 달력에다 매일매일 며칠 남았나 체크하면서 버텼어."
그만큼 각고의 시간이었다. 나도 동기와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그땐 달력에 날짜마다 동그라미를 치며 나갈 날을 헤아리진 않았었다. 동기들과 근무 후에 야식도 먹고, 너무 힘들 땐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과 쉬면서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그래도 견딜만 했다. 언젠가는 고등학교 동창네 집에 놀러갔다가 갑자기 울컥해서 친구를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린 적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도 다아 지나갔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무의식 중 달력을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 본다. 두 달도 채 안되는 시간이 나에겐 꼭 휴일 없이 몇주고 연속으로 일했던 사회초년시절, 아니 그보다도 더 더디게만 흐른다.
결혼 후 4년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남편의 부재는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내 삶을 바꿔 놓았다. 이제는 둘인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건지 혼자서는 어디를 가고 싶지도, 뭘 먹고 싶지도, 새로운 걸 하고 싶지도 않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의 아주 중요한 어떤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땐 매일이 꿈을 꾸는 듯이 현실감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주말엔 본가에 다녀와 오랜만에 웃을 일이 많았다. 웃고 나니 체한 것처럼 명치를 꽉 막고 있던 게 아래로 조금은 밀려 내려간 것 같다. 체기가 내려간 자리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채우고 싶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런 시간도 돌아보면 다 필요한 것이었을 거라고. 그까짓 몇주 금방 지나갈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