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말로 농담도 하게 될 때까지

오랜만의 데리자 교실

by 소울메이트

오늘은 한국식 밥상이 그리워 이프타르(breakfast)를 한국식으로 차려보았다. 콩나물밥에 양념장, 소고기뭇국, 총각김치, 참치김밥. 국에 쌀밥을 살짝 말아 김치를 올려 먹으니 캬 이제야 제대로 밥심이 올라온다. 직장에서 점심을 꼬박꼬박 챙겨 먹을 때는 남편이 저녁에 한번씩 해주는 모로코 음식이 그렇게 맛난는데. 라마단이 되고 하루 한끼 저녁에 먹는 이프타르를 열흘 째 모로코식으로만 먹으니 덕스럽게도 한국음식이 간절해졌다.

한상 가득 배부르게 먹고 나서 배를 두드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한국음식은 원없이 먹었으니까 어. 아라 메클라 마그립(모로코 음식 내놔)!"

갑작스러운 나의 모로코말 공격에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만 했던 게, 내 말투가 상당히 발칙했기 때문이다. 모로코에서 'OO 좀 주세요' 할 때는 보통 '아 떼이니 쉬 OO'이라고 한다. 아주 버릇없게 말하고 싶을 때나 '아라 OO!'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는 '이리 내놔'라는 뉘앙스의 말로, 격없이 친한 사이에서나 쓰는 이다. 재적소에 쓰면 친밀함을 한껏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연인 사이에 '아라 보사(뽀뽀 내놔)!' 라고 박력있게 말할 수도 있다. 어머나.


참고로 '메클라'는 '음식', '마그립'은 '모로코'라는 뜻으로, '메클라 마그립' 이라고 하면 '모로코 음식'이다.




난 외국어 학습에 소질이 좀 있는 편이다. 출난 재능이 있다기 보단 외국어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즐겨하게 됨으로써 평균보다는 빨리 배우는 축에 들게 된 것 같다. 모로코 가족들과 좀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빠른 언어습득 덕도 있었을 거다.


모로코에서 지내던 중 하루는 시어머니랑 같이 시장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채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건 뭐냐고 자꾸 여쭤보자 시어머니도 신나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가르쳐주셨다.

"슈누 하다(이건 뭐예요)?"

"레프트 (무)!"

모로코의 무는 우리나라 각무처럼 작고 귀여웠다. 이렇게 하나씩 배우다 보니 어느새 많은 채소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그날 편에게 외운 채소 이름들을 읊으며 자랑했다.

"감자는 프타따. 당근은 카이조. 토마토는 마티샤. 초록색 넓은 이파리(상추)는 카즈. 초록색 길쭉한 건(콩) 로비아. 로비아랑 이름은 비슷한데 로비아랑 완전 다른 초록색 풀(고수 또는 파슬리)은 르베아. 빨갛고 둥근 건(비트) 버르바. 버르바처럼 생겼는데 버르바는 아니고 좀더 작은 건 브질. 솰라솰라..."

남편은 폭소하면서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가족들 앞에서도 나의 속사포 채소랩을 반복하게 시켰다. 부와는 친분이 없는 나지만 외국어에만 유독 집착을 보이는 나의 별난 습관은 식구들의 나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남편과 한국에 함께 사는 지금도 데리자(모로코의 언어. 아랍어의 한 갈래이지만 상당 부분이 다르다.)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만 나면 남편을 귀찮게 해서 한 단어 한 문장씩 더 배웠다. 로코에 지낼동안 배웠던 표현들도 까먹지 않게 수시로 남편에게 데리자로 말을 걸곤 했다. 이제는 시댁 식구들과 통화를 할때도 데리자로 꽤 소통이 된다.

"살라모 알라이쿰(안녕하세요). 움미임티 라바스(엄마 요즘 어때요)? 베크헤르(잘 지내세요)? 쿨시 므지엔(별일 없으시죠)? 라바스 함도릴라(전 잘 지내요)."

움미임티는 움미(엄마)를 애교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모로코에는 안부 인사가 여러가지 있는데 보통 '라바스', '베크헤르', '쿨시 므지엔'을 연달아 따다닥 물어보는 게 일반적이다. 비슷한 말들이지만 미묘한 의미 차이가 있다. '라바스'는 그야말로 잘 지내시냐고 가장 간단히 물어볼 수 있는 말이다. 상대방이 "라바스?" 하고 물으면 "라바스. 함도릴라."라고 답하면 된다. '베크헤르' 역시 잘 지내시냐는 말이지만 경제적 물질적으로도 잘 지내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베크헤르?"라는 물음엔 "베크헤르."라고 대답하면 된다. '쿨시 므지엔?'은 '모두 괜찮아요? 모두 좋아요?' 라는 뜻으로, 그 답은 '함도릴라.'라고 하면 된다.


사실 시댁과 통화할 때 영어를 써도 남편이 옆에서 알아서 통역을 해주겠지만 웬만하면 데리자를 쓸려고 노력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인이 서툴지만 한국말을 구사하면 호감이 급상승하지 않던가.

누나들에게 보고싶다고 할 땐 '아이 미스 유'보다는 '튀 하쉬텍'.

이번 학기 시험을 무사 통과한 대학생 조카에게 축하한다고 잘됐다고 할 땐 '콩그레츌레이션'보다는 '트바르칼라', '마샤알라'.

엄마 말씀 잘 듣는 어린 조카를 칭찬할 땐 '아임 프라우드 오브 유'보다는 '아나 파호르빅'.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상대방도 기분 좋고 나도 한마디 하고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효과가 있다.


앞으로도 데리자 공부는 꾸준히 할 생각이다. 그 자체로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데리자로도 대화를 하게 될텐데 아빠와 아이가 신나게 데리자로 수다를 떨 때 나만 동떨어지고 싶지 않다. 물론 남편의 한국어 공부도 도울 이다. 로의 언어로 농담도 자유롭게 하게 되는 그날까지. ! 씰(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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