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가진 힘

by 소울메이트

이번 라마단은 할만 하다.

아예 힘들지 않다고 하면 뻥이고.. 오후 3시가 넘어갈 즈음이면 텅빈 위장이 꽈배기가 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영혼이 정수리로 솔솔솔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작년에 비하면 절반 정도로 덜 힘든 것 같다. 몇번 해봤다고 익숙해진 영향도 있겠고, 무엇보다 이번 라마단은 시댁 식구들이 보내준 음식들 덕에 작년과는 비교도 안되게 호사스럽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모로코에서 먹을 때도 맛있었지만 바다 건너 한국에서 오랜만에(2년 만이다) 리웠던 맛을 니 더욱 반가웠다.

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 모로코의 맛을 입에 넣으면 그때 그순간의 모로코로 잠깐 순간이동을 했다가 돌아오는 기분이다.


이걸 처음 경험한 것은 커몬(큐민)을 먹었을 때였다. 로코에서는 삶거나 스크램블한 계란에 치즈와 올리브유를 섞어서 보통 아침식사로 자주 먹는데, 여기에 커몬가루를 뿌려 먹으면 훨씬 맛있다. 한국에 살면서도 아침식사로 거의 매일 이렇게 먹었지만 커몬 없이 그냥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대형마트에서 커몬가루를 사왔. 오랜만에 계란+치즈+올리브유에 커몬을 곁들이게 되었다. 빵에 얹어 한입 먹는데 눈이 반짝 뜨였다. "그래 이맛이지!" 모로코 시댁에서 식탁에 앉아 먹던 바로 그맛이었다.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먹는 나를 보고 남편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사올걸 그랬다 웃었다.


시댁에서 보내주신 음식들을 먹을 때도 그랬다. 한입만 먹어도 모로코에서 보냈던 라마단, 그날 입었던 옷, 나눴던 대화, 집에서 나던 특유의 향, 거리의 풍경과 냄새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떠오르게 만든다.


모로코에서는 라마단 식탁에 '쉬빠끼야'와 '슬루'가 빠질 수 없다. 쉬빠끼야는 우리나라의 약과와 조금 비슷한 맛이 나는 전통 과자이다. '스푸프'라고도 부르는 슬루는 계피와 각종 견과류 등을 아서 섞어 만든 것인데 건강에도 좋고 힘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 해서 라마단에 빠질 수 없는 간식이다. 의 사진에서 윗줄 가운데에 놓인 깨가 뿌려진 과자가 쉬빠끼야, 위아래로 두접시를 놓은 갈색 가루가 슬루다.


사진에서 정중앙에 있는 건 말린 무화과이다. 모로코에선 '슈르하'라고 부른다. 남편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다.


그 왼쪽 아래에는 내가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지툰', 올리브가 있다. 모로코 시장에 가면 심심찮게 보이는게 지툰을 파는 가게이다. 검정 올리브, 초록 올리브, 매콤한 올리브 등 종류도 많다. 시큼짭짤한 통올리브의 맛이 그리워 남편에게 나중에 모로코 가면 가장 먼저 지툰을 사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랬던 터라 시댁에서 온 택배안에서 지툰을 발견했을 때 내 눈에 다른 음식들은 들어오질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마트에 가면 병에 든 올리브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모로코에서 먹던 그 맛이 정말 그리웠다.


사진에는 없지만 '츠마라(대추야자)'도 보내주셨다.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일반 츠마라, 다른 하나는 '므쥬홀'이라고 부르는 고급 츠마라였다. 므쥬홀을 맛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일반 츠마라보다 맛이 덜 달고 과육이 보다 단단하고 크기가 두배 정도로 크다.



남편이 슬루를 먹으며 말했다.

붑커>> 나 원래 슬루 잘 안먹어.

나>> 진짜? 지금은 잘 먹는데?

붑커>> 그니까 말이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음식도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오랜 타향살이는 남편도 슬루를 게 한다. 고향의 맛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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