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그러니까 타지로 이사를 오고 얼떨결에 난생처음 자취를 시작한 날부터 부쩍 눈이 침침하다.
비문증.
날파리가 눈앞에 날아다니는 듯한 병증이다. 날 '비', 벌레 '문' 자를 쓴다.
날파리가 시야를 방해한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가끔 피곤한 날이면 눈 앞에 아주 연하고 작은 회색의 점들이 떠다니는 게 어느새 인식되는 때가 있었는데 그러다가 곧 없어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하루에도 몇번씩 시야의 작은 점들이 신경 쓰이고, 특히 밝고 하얀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볼 때에 더 도드라져 보였다.
한번씩은 눈꼬리쪽에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듯 반짝하는 불빛이 보일 때도 있었다. 검색해보니 광시증이라고 하여 불빛이 없어도 눈앞에 섬광이 번쩍이는 증상이었다.
검색을 하다가 공포스러운 글을 보았다. 비문증, 광시증은 단순 노화로도 유발되지만 심한 경우엔 망막박리 등의 응급질환일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병원에 잘 안 가는데 결국 주말에는 큰맘을 먹고 안과에 갔다. 손잡고 같이 가줄 남편이 없으니 양 옆구리가 허전했다. 혼자 있을 때 아픈 것 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
안과 개문시간에 딱 맞추어 들어갔다. 약간 어두운 조명에 칙칙한 회색톤의 벽지를 바른 안과의 실내는 텅 비어있었고 접수 데스크도 비어 있었다. 나보다 앞서 일찍 오신 환자 한분이 저 안쪽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시술을 하는 듯한 기계음이 들려오는 사이사이로 웅얼웅얼하는 의사선생님의 말소리가 불분명하게 들려왔다.
치료가 끝났는지 곧 간호사 선생님이 접수 데스크로 나오셨다. 한분이 접수, 진료안내, 치료보조까지 전부 도맡아 하시는 모양이었다. 초진 접수를 하는 동안에도 내 뒤로는 아무도 더 들어오지 않아 잘못 찾아왔나 하는 불안감도 살짝 들었지만 일단 진료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안경을 낀 중년의 남자 의사선생님이 마스크를 끼고 앉아 계셨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한 2주 전부터 눈 앞에 작은 점들이 신경 쓰일 정도로 보여요. 그리고 한번씩은 눈의 요기 요 구석쯤에서 불빛이 번쩍이기도 해요. 사진 찍을 때의 플래시 불빛처럼요."
"으음. 보이는 거 자체는 잘 보여요?"
"네, 점들 때문에 보기가 불편해서 그렇지 시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예요."
의사선생님은 나의 시력을 체크하고 내 안경을 가져가 렌즈를 살피기도 하셨다. 그러곤 양 눈의 난시를 측정했다.
"난시가 심하네요. 그래도 안경 끼면 잘 보이고요. 그쵸?"
"네 맞아요."
마지막 검사는 망막의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빨간 막대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플래시가 터지며 사진이 찍힌다.
"억." 빛자극에 반사적으로 눈꺼풀이 감겨서 혹시 눈을 감아버린 건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히 사진은 잘 찍혔다.
노란 원 두개가 찍힌 사진을 보여주시며 의사선생님은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보시면 이게 시신경인데 괜찮고, 망막도 이상 없네요."
망막에 문제가 없다니. 일단 안심이었다.
"우리 눈은 우뭇가사리같은 유리질로 차 있어요. 근데 유리질이 중간중간 뭉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 부분에 빛 투과가 잘 안되겠죠. 그럼 그림자가 지게 되어 거뭇거뭇 보이게 되는데 그게 비문증이에요."
"아 네에."
"이 사진은 눈의 정면에서 40도 각도 안에 들어온 범위만 찍은 거예요. 이 안에 보이는 것으로는 이상이 없고요. 눈 전체를 보는 검사도 있는데 그건 안약을 넣고 하는 거거든요. 근데 안약을 넣으면 또 이틀 정도는 가까운 물체를 잘 볼 수 없어요. 나이도 젊고 증상의 정도로 봐서 그 검사까진 오늘은 필요 없겠어요. 단, 시야결손이 생기거나 증상이 심해지면 꼭 다시 오세요."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에 믿음이 갔다.
"저 그럼 약은 따로 없나요?"
"네, 약은 없고요. 그냥 적응하셔야 해요."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료실에서 나오는데 그 잠깐 사이 열명 정도의 환자가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설명을 잘 해주시더라니 역시 잘 되는 곳이었구나.
그나저나 이제부터 날파리에 적응해나가야겠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눈에 좋다는 운동도 찾아서 해보고 음식도 찾아서 먹어 봐야지. 큰 문제가 없다는 얘길 듣고 나니 우습게도 벌써 날파리가 조금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여담으로 이렇게 검사와 꼼꼼한 상담을 받고 나서도 2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초진이었는데도! 우리나라 의료혜택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