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웃을 일만 있을 순 없지만 하루 한 가지씩이라도 웃을 일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낯설고 외롭기만 하던 새로운 동네의 예쁜 구석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충주는 장점이 꽤 많은 도시다. 사실 첫인상이 썩 괜찮았다. 이곳은 고층 건물이 거의 없어 도시 전망이 탁 트여 시원시원하다. 그래서 처음엔 인구가 익산보다 적은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비슷했다. 같은 인구가 사는 도시라도 충주는 신기하게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강한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건물들이 낮으니 도시를 둘러싼 산도 잘 보인다. 비가 온 뒤에는 운무에 싸인 산봉우리가 골목의 저편으로 보여 멋스럽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평야가 많은 지역에 살다가 이곳으로 오니 어딜 가나 산이 잘 보여, 맑은 날엔 마치 그림을 보는 듯도 하고, 어떨 땐 다른 나라에 온 듯한 기분도 든다.
특별한 가로수는 충주의 볼거리 중 하나다. 특히 연수동에서 문화동으로 넘어가는 도로의 가로수를 보고 나와 부모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동실한 물방울 모양으로 돌돌 말아놓은 솜사탕 같기도 하고, 지중해 어느 마을의 정원에서 정원사가 정성으로 이발시켜 놓은 관목 같기도 했다. 키 작은 나무를 다듬어 놓은 건 봤어도 키 큰 나무를 그렇게 꾸며놓은 건 처음 봤다. 수종이 뭘까 궁금했는데 은행나무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충주는 대중교통이 편한 도시는 아니다. ktx로 연결되는 도시가 별로 없어 무궁화호로 이용이 제한되는 일이 많다. 익산까지 가려면 오송이나 조치원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운이 좋으면 무궁화호+ srt로 2시간 안에 갈 수 있지만, 시간대가 잘못 걸리면 무궁화호 + 무궁화호로 3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상한 점은, 익산까지는 차로도 2시간 반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원주까지는 차로 40분이면 가는데도 기차를 타고 가려면 1시간 반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주역의 풍경만은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기찻길이 이어진 저 끝의 소실점에 봉긋 솟아있는 산봉우리와 그 좌우로 지평선을 따라 주욱 늘어선 산세. 처음 충주역에 내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보였던 그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본 중에는 정동진역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역이다. 때문에 무궁화호가 제 아무리 느릿느릿 나를 익산으로 실어 날라도 용서가 된다. 어떨 땐 느려서 고맙기도 하다. ktx를 타고서는 바깥을 잘 보지 않게 된다. 속도가 너무 빨라 휙휙 바뀌는 창밖을 보고 있으면 어지럽기도 하고, 애초에 철길 방음벽에 대부분 가로막혀 밖을 보는 의미가 없기도 하다. 그래서 실로 몇 년 만에 무궁화호를 타고 충주로 가는 길에 본 초록의 마을들은 오랜만에 꺼내 본 옛날 앨범처럼 정겨웠다.
아직 충주의 맛집은 잘 모른다. 그래도 단골집은 생겼다. 집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 이삿날 엄마랑 둘이서 먹고는 맛있길래 그 뒤로 나 혼자서도 두어 번 더 찾았다. 야근이 있는 날에는 저녁밥을 해먹기도 귀찮고, 뭔가 평소 안 먹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그럴 때에 이 레스토랑에 간다. 이 덕분에 야근날 출근길에 '에휴 오늘 야근이네' 하지 않고 '오늘은 퇴근하고 토마토 해물 리조또를 먹으러 가야지~' 생각부터 들어 좋다. 야근날은 맛있는 날이 되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이 오면 데리고 갈 카페도 찾아 두었다. 다른 음료는 거의 없고 오로지 커피로 승부를 보는 집이다. 기계로 뽑은 커피도 핸드드립커피도 파는데, 원두를 원산지별로 다양하게 선택하여 마실 수 있다. 내부 인테리어까지 개성 있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물건들이 곳곳에 있어 신비로운 골동품 가게 같기도 하고, 벽면을 가득 채운 시계들을 보면 시계 수리점인가 착각도 든다. 산뜻한 하늘색의 옛날식 베스파가 시선을 끈다.
이사 온 지 3주째.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이 낯선 곳과 친해지는 중이다. 무궁화호가 달리듯 덜컹덜컹 느릿느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