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넘게 살아온 도시 익산은 이제 나에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작은 도시라 대학시절 서울 출신 동기들은 놀 거리도 없고 시내버스 타기도 불편하다며 불만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래 봬도 익산은 동서남북으로 가지를 쳐나가는 기찻길이 한데 모이는 지점으로,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톡톡이 한다. 따라서 익산이라는 도시는 작더라도 익산역은 전국에서 모여든 승객들로 항상 분주하다.
그러다 충주역에서 처음으로 하차하던 날.
나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역의 분위기에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이방인 티를 팍팍 내며 역을 빠져나왔다. 분명 내리는 승객들은 꽤 많아보이는데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역의 대기실엔 서른 개 정도의 좌석들과 작은 TV가 한 대 놓여 있고, 창구가 두 개 정도인 매표소와 간식거리를 살 수 있는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역 밖으로 나가니 바로 차도가 보였는데, 큰 도로임에도 지나는 차가 몇 대 없고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도 않고 다들 전기차만 타나 싶을 정도로 자동차 엔진 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옛날 우리나라에 기찻길이 놓이기 전에는 강을 따라 배로 물자를 수송하곤 했기에 선로나 도로 보다도 강줄기가 놓인 곳의 교통이 발달하곤 했다고 한다. 남한강을 낀 도시 충주는 그 좋은 예시로서 과거에는 충주가 바로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기차라는 교통수단이 들어오고 산지보다는 평야 쪽으로 선로가 놓이면서 점차 교통의 변두리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단지 유동인구가 적어서 충주역이 조용하다고 하기엔 도심으로 들어가도 그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나긋나긋,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이는 기차역 뿐만이 아니라 충주 자체의 특색인 것 같기도 하다. 도시 전체가 폭신하고 포근한 솜이불에 둘러싸인 것 같달까.
충주는 판교로 가는 ktx를 제외하고는 고속열차가 직통으로 연결되는 노선이 현재로선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익산 본가에 내려가는 길, 오송에서 10여 분의 빠듯한 환승시간을 두고 ktx로 갈아탈 때마다 '충주까지 직통 ktx가 뚫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충북선 무궁화호 안에서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오후의 농지 풍경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기차를 타면 내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아니면 쪽잠 자기 둘 중 하나를 하던 나였지만, 충주가는 길 무궁화호 안에선 창밖만 멍하니 감상해도 1시간은 훌쩍 가는 것이 그저 신기하다.
기찻길 옆 펼쳐진 해거름의 논밭에는 석양이 쏟아진다. 무궁화호는 그 당연하지만 매번 보아도 왠지 눈부신 풍경을 눈으로 좇을 수 있을 만큼의 친절한 속도로 달린다. 충주는 그런 무궁화호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