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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기 전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

충주의 숨은 맛집을 찾아라 1

by 소울메이트

루미상지 작가님의 남원추어탕 글을 읽은 날. 침샘이 폭발하며 '추어탕을 조만간 꼭 먹고 말겠다'는 집념이 솟았다. 펄펄 끓는 구수한 뚝배기 추어탕에 그냥 공깃밥이 아니라 갓 지은 돌솥밥, 그리고 단출한 밑반찬 몇 가지를 곁들여 먹는 돌솥추어탕. 한 그릇 싹싹 긁어 야무지게 비우고 나면 속이 뿌듯해지고 절로 보신이 되는 것 같은 그 맛. 꼭 그게 먹고 싶어졌다.

https://brunch.co.kr/@sgcw0121/84


충주는 어디가 추어탕을 잘하나 조금 검색해 보다가 마침 충주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작은 추어탕 집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방문자들의 후기도 좋은 편이라 망설임 없이 이곳으로 정했다. 요일 퇴근 후에 익산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전 기차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여유가 있으니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https://kko.kakao.com/p3FanutEfS


'광복절 연휴 쉽니다.'

이럴 수가. 지도에는 열려 있다고 나오길래 마음 놓고 왔더니 휴무였다. 좀 더 찾아보고 올걸 그랬다. 근방에 다른 추어탕집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지 않았고 대부분의 근처 음식점들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하고 조금 옆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사장님, 간짜장 하나 주세요."

짜장면은 어느 집엘 가나 솔직히 실패하기 어렵다. 달달 짭조름한 맛에 못 먹은 추어탕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가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나처럼 혼밥을 하던 청년이 다 먹고 일어나 계산을 한다.

"사장님. 근데 아까 저한테는 간짜장 안된다 하시지 않았심니까?"

응? 저게 무슨 말이람.

"아... 아유 그랬어요? 그게 아까는 준비가 안 돼서.."

이어지는 사장님의 변명. 가만 들어보니 나도 무슨 말씀인지 못 알아듣을 만큼 땀을 뻘뻘 횡설수설하신다.

"누군 되고 누군 안되고. 이거 차별하시는 거 아입니까."

청년 그렇게 억울함 가득한 말을 남기고 나갔다. 그가 나간 자리에 남은 어색한 공기 속에 나는 '왜 간짜장을 시켰어 왜애 하필' 하고 속으로 후회하며 남은 면을 입으로 먹나 코로 먹나 모르게 흡입하고서 얼른 계산하고 나왔다.


휴.. 기름진 짜장으로 배를 가득 채웠지만 그것은 든든한 포만감이 아니라 치까지 올라오는 더부룩함이었다. 괜히 간짜장을 시켰다는 마음 한켠의 불편함 때문에 더 그랬을까.

일단 배는 채웠으나 이상하게 허기는 가라앉지 않는다. 단전에서부터 차곡차곡 따수웁게 차오르는, 향긋하고 걸쭉한 추어탕이 주는 위장의 만족감 더욱 간절해져 버렸다.


다음번엔 기필코..! 시골추어탕을 먹으리라.



그 마음이 간절했는지 시간은 빠르게 흘러 또 금요일이 되었다. 칼퇴근엔 큰 관심이 없어 슬렁슬렁 끝내고 나오곤 했던 나는 오늘따라 평소답지 않게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데 약간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어탕 먹기 대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조바심 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에 오른 지 15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도착을 못했다. 보통 5분이면 가고도 남는 거린데 오늘은 차가 막혀도 너무 막힌다. 가는 길에 있는 신호란 신호는 다 걸린 것 같다. 기사님께서도 한숨을 푹푹 쉬신다. 이제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되는데 또 빨간불이다. 이러다 늦겠는걸.

"기사님. 저 여기서 그냥 내려도 될까요?"

"아 그러실래요? 네네. 아휴우 왜 이렇게 차가 막혀어어."

택시에서 내린 나는 정강이가 뻐근해지도록 빠르게 걸었다.

'시골추어탕'

저 앞의 간판이 다가올수록 잰걸음은 더 빨라지고 마침내 뛰듯이 문을 열고 추어탕집에 들어갔다.

"후우- 사장님, 1인분도 되나요?"

사장님은 푸스스 웃으시더니 '네에 이쪽으로 앉으세요.' 하신다.

됐다. 살짝 빠듯하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먹고 갈 수 있겠다. 혀는 조금 델 각오를 해야겠군.


째깍째깍. 몇 분째 기다렸을까. 기차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아직도 추어탕이 나오질 않고 있다. 가만있자, 지금부터 5분 안에 그래도 나와주면 빨리 먹고 달려가면 기차를 탈 수 있겠다. 대신 입천장까지도 델 각오는 하는 게 좋겠지만.

1분, 또 1분. 침이 꼴까닥 넘어간다. 추어탕 한 그릇에 이렇게 손에 땀을 쥘 일인가 싶지만 나름 나에겐 중요한 대작전인데 실패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기다리는 사이 또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추어탕 하나 주세요."

"네에- 이쪽으로 앉으세요."

식당엔 2인용 테이블이 두 개, 4인용 테이블이 8개 정도 있었는데 사장님께선 나에게도, 혼자 오신 그 손님에게도 4인용 넓은 테이블로 안내해 주셨다. 4인용 테이블은 구석자리 빼고는 거의 다 차서 사장님은 앉아 계시던 4인용 테이블에서 일어나시고는 그 손님을 앉혔다. 그늘진 2인용 자리를 놔두고 홀 중앙의 널찍한 자리를 내어주는 인심에 벌써 첫술을 뜬 것 같다.


그리고 곧 그토록 그리던 추어탕이 나왔다.

'우와아-'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두 손을 꼬옥 모으고 상을 차려주시는 사장님의 손만 바라보았다.

"돌솥밥은 꼭 3분 뒤에 열고 드세요."

"네. 잘 먹겠습니다아."

돌솥을 열기까지 기다리는 3분은 아마 뜸을 들이려고 있는 걸까. 성질 급한 나는 2분 남짓 다리고는 뚜껑을 열어버렸다. 사악사악 돌솥 바닥에 눌어붙은 누룽지가 나올 때까지 밥을 긁어모아 빈공기에 옮겨 담았다. 남은 누룽지에는 물을 부어 다시 뚜껑을 덮어두었다. 추어탕을 다 먹는 동안 릇한 깜밥이 물에 불어 맛난 숭늉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대망의 추어탕을 한 숟가락 떴다.

"후우- 후우-"

입바람으로 조금 식힌 다음 입 안에 넣는다.

"하압- 쓰허업-"

뜨거워 허어 허어 뜨건 입김을 뿜으며 한입을 삼켰다. 간 생선의 묵직한 식감, 간간히 씹히는 가시, 퍼지는 들깨향, 부드러운 래기. 썰어진 청양고추를 반숟갈 넣었더니 얼큰한 맛까지 더해졌다.

으음. 맛있다.

여기 추어탕은 여태껏 먹어 본 것들과는 좀 다르다. 들깨를 알아서 넣어 먹도록 따로 주는 게 아니라 나올 때부터 들깨가 아주 많이 들어 있고 깻잎까지 들어가 미꾸라지 자체의 맛보다는 들깨향이 좀 더 진하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감자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먹을수록 포근포근한 감자가 씹히는 추어탕도 괜찮네~하며 먹었다. 깻잎과 감자가 들어가서인지 감자탕 비슷한 맛도 난다.

그리고 여기는 부추나 다진 마늘을 따로 주진 않았다. 고향에서는 추어탕에 정구지를 가득 올리고 다진 마늘을 취향껏 넣어 먹곤 했다. 여기는 정구지 대신 깻잎이 들어가고, 겉절이 대신 조금 익은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밑반찬으로 나오는 게 신기하다.

어쨌든 공통점은 다 그 나름대로 맛있다는 것.

맛있게 먹다 보니 콧잔등과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다. 손부채질을 해가며 쉴 새 없이 숟가락을 놀렸다.

이거다. 윤기 나는 돌솥밥의 밥알 하나하나, 죽에 가까운 탕의 한 숟갈 한 숟갈이 들이키는 족족 세포 하나하나로 흡수되는 느낌. 껍질에서 맴돌다 찌꺼기로 배출되어 버릴 음식물이 아니라 전히 내 몸 안에 머물러 힘을 보태줄 것만 같은 느낌. 이럴 때 음식이 보약이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입 한입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뚝배기를 기울여 바닥에 깔린 국물을 구멍낼 기세로 긁어 먹고 공기에 붙은 마지막 밥 한알도 떼어먹고 잘 불어난 누룽지까지 후루룩 마셨다.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사장님, 다음엔 예약하고 와도 돼요?"

계산하면서 여쭤봤다.

"아, 저흰 전화 예약은 안 받고 있어요."

그렇군. 그럼 다음번에도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와서 후후 불어 먹는 수밖에. 입안은 조금 얼얼하지만 그건 감수할 수 있겠다.

"잘 먹었습니~!"

아직 기차 시간까지는 20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인지 조금 빠르게 걷게 되었다. 역으로 가는 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고대하던 추어탕 한 그릇의 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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