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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이 필요한 모로코인, 쿠스쿠스심이 필요한 한국인

by 소울메이트

남편과 영상통화를 했다.

"내 배 봐봐. 홀쭉해졌어."

남편은 배를 통통 두드리며 나에게 보여준다. 진짜다. 배 위의 볼록하던 언덕이 사라졌다!

"어머 정말이네. 어디갔어?"

"몰라.. 그거 알아? 나 한국 음식 그립다고 하면 믿겠어?"

"에엥 진짜?"


남편은 한국 음식을 정말 잘 먹긴 한다. 맛도 좋고 다양하고 몸에도 좋다나. 돼지고기를 못 먹고 김치찌개를 못 먹는 것 빼고 다른 건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다. 근데 오랜만에 간 고국에서까지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줄이야.


김치찌개를 못 먹게 된 사연은 좀 슬프다. 한국에서의 첫 직장에서 점심시간에 나오곤 했던 김칫국의 맛이 끔찍했다고 한다. 그 후로 김칫국, 김치찌개, 김치우동 등 물에 빠진 김치만 보면 그 때의 기억이 나서 먹지 못한다. 아무리 맛있게 끓인 것이라도..


다행인 건 그냥 김치랑 김치볶음밥은 한국인보다도 잘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탑 5에는 김치볶음밥과 엄마가 해주신 소갈비찜과 삼계탕이 들어간다. 소갈비찜은 남편이국에 살러 왔을 때 부모님댁에서 처음으로 집밥을 같이 먹은 날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인데, 그 후로 어딜가서 소갈비찜을 먹든 '맛있다. 근데 엄마가 만드신 게 더.' 라는 멘트가 빠지질 않는다.


김밥도 빠질 수 없다. 일년의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와 용산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남편이 제일 먼저 찾은 건 김밥과 라면이었다. 라면의 첫술을 떠마시며 '으흠' 하고 남편이 짓던 만족스러운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날 소주를 잔뜩 마시고 아침 해장으로 라면 국물을 들이킬 때의 쾌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아무튼 남편은 국 음식이 먹고 싶어 지금 모로코에 지내면서도 오히려 살이 빠지고 있다.



"나는 모로코 음식이 그리운데."

나는 반대로 혼자 있다 문득 모로코 음식이 종종 생각 입맛을 다실 때가 있다. 가장 자주 생각나는 건 하레라. 토마토를 베이스로 여러 야채들을 갈아 넣고 기호에 맞춰 소고기와 스파게티면과 향신료를 첨가해 끓인 수프다.


모로코 대표 음식인 타진과 쿠스쿠스도 한번씩 입에서 당길 때가 있다. 타진은 고깔모양 뚜껑의 모로코 전통 뚝배기 같은 것, 또는 그 안에 조리한 음식을 칭하는 말이다. 쿠스쿠스는 모로코에서 '스미다'라 부르는 노란색 세몰리나 밀가루 알갱이를 서 넓은 접시에 담고, 그 위에 고기와 찐 야채들을 듬뿍 올려 먹는 음식이다.

쿠스쿠스와 하레라는 고난도 요리라 아직 엄두도 못 내봤고,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그 중에 타진이 유일하다. 부모님 댁에 타진 놓고 왔는데 이번 주말에 내려갔을 때 챙겨올까 한다.

'르피사'도 가끔 먹고 싶다. 르피사는 집안에서 시어머니와 큰시누이만이 만들 수 있는 초고난도의 요리로, 나도 남편도 할 수 없어 오직 모로코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 밀가루 반죽을 종이처럼 얇게 펴서 익힌 다음 수제비 떼듯 손으로 떼어 넓은 접시에 깔고 그 위에 구운 닭과 메추리알, 그리고 아몬드로 속을 채운 대추야자를 올려 먹는 음식이다. 접시에 담아 놓은 르피사는 무슨 작품처럼 화려해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말의 적절한 예시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빵과 올리브유, 올리브, 치즈, 버터, 잼, 오믈렛으로 한상을 가득 차리고 민트티를 곁들여 먹는 모로코식 아침식사도 그립다. 그 정도는 여기서도 흉내를 내볼 수는 있는데 혼자 있으니 귀찮아서 그렇게까진 또 안 챙겨먹게 된다. 남편이랑 있을 때 같이 먹어야겠다..


서로가 그리운 만큼 서로의 음식 그립다.

김밥에 라면을 찾는 모로코인과 쿠스쿠스를 찾는 한국인의 요상한 대화 오늘도 아쉬운 입맛만 다시며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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