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케도니아- 스코피예
세르비아에서 코소보로 가는 길은 막혔다고 했다. 두 나라는 코소보의 독립을 두고 분쟁 중이다. 2차 세계대전 후 1990년까지 이어지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며 90%가 알바니아계인 코소보는 더 이상 세르비아에 귀속되지 않으려 했다. 이에 소수의 세르비아계 코소보 거주자들이 알바니아계를 탄압하였고 그에 맞서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로 해방군이 결성되며 코소보 전쟁이 일어났다. 이후 나토가 개입하며 피 흘리는 전쟁은 끝났지만 소리 없는 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08년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선언이 있었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나라들이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세르비아는 코소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양측이 팽팽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여행할 당시 세르비아에서 코소보로 곧바로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세르비아에서는 코소보로 간다고 하면 출국 시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것이고, 코소보에서는 세르비아에서 넘어가려고 하면 불법입국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북마케도니아를 경유하여 코소보로 가는 길을 택했다. 북마케도니에 가기 전 세르비아 남쪽의 도시 '니슈'에서 하루를 쉬었다.
니슈에서 버스를 타고 세르비아의 국경에 다다랐다. 나라 간을 육로로 이동할 때의 출입국 검문은 공항에서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있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줄지어 입국심사 차례를 기다리고, 앞사람의 여권을 매의 눈으로 훑는 심사관의 표정을 관찰하며 쉽게 도장을 찍어줄 인상인지 아닌지 의미 없는 잔머리도 굴려보다가, 드디어 내 차례가 오면 떨리는 마음으로 여권을 내민다. 북마케도니아 입국 시에는 감사하게도 우리 둘 다 무사통과였다.
북마케도니아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했으나 그리스는 이에 반발했다. 과거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이 통치했던 마케도니아 왕국은 현 그리스의 영토도 포함하였으며, 지금도 그리스의 북부에는 마케도니아라 불리는 지역이 있기도 하니,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그대러 가져다 쓰는 것은 자국의 역사와 영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그리하여 생긴 분쟁은 2019년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일단락되었다.
북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피예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이었다. 땡볕을 뚫고 찾아간 우리 숙소는 스코피예 도심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저렴했다. 그나마 시내버스 한 대만 타면 중심가로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날씨에 버스 하나 타는 것도 힘든데 환승까지 했더라면 짜증지수가 치솟을 뻔했다. 그래도 버스를 타는 게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니었던 게, 마케도니아 광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굉장한 동상을 발견하고는 급히 폰을 꺼내 찍은 동영상이 꽤 멋지게 나왔기 때문이다. 동상은 크기도 컸지만 근육질의 말과 그 위에서 권총을 정면으로 겨눈 건장한 사내의 동작이 매우 역동적이었다. 동상은 보통 근엄하게 의자에 앉아있거나 말을 탄 위인의 동상이라도 우아하게 서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이 동상은 말이 달리는 엄청난 속력과 내뿜는 콧김이 느껴지고, 온 힘을 실어 정확하게 겨눈 총구 끝에 고정된 남자의 강렬한 시선까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일어난 일린덴 봉기의 지도자였던 불가리아인 바실 체칼라로프라는 사람이었다.
시선을 사로잡은 바실 체칼라로프 이후로도 우리는 수많은 동상들을 길과 광장에서 마주쳤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부터, 역사 속 유명인들, 크고 작은 동물들까지 다양도 하다. 스코피예가 동상의 도시가 된 것은 정부에서 스코피예 2014라는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대규모로 진행한 결과이며, 이때 136개에 달하는 구조물들을 7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건설했다고 한다. 동시에 내진 설계도 재정비했는데, 1963년 스코피예 대지진으로 도시의 80%가 무너져 내린 적이 있기에 향후 재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는 고풍스러운 도시조경을 되살려 자랑스러운 역사를 드러내고 관광에도 기여하려는 의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민생을 생각하면 7억 달러를 쏟아부은 것은 재정낭비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베오그라드도 울고 갈 더위에 마케도니아 광장엔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해가 정수리에서 조금 내려올 때까지 실내로 피신을 해야 할 것 같다. 카우치서핑에서 알게 된 한 모로코 여행자가 우리와 같은 시기에 스코피예를 방문하여 같이 시간을 맞춰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마침 이 광장의 한 레스토랑에 와 있다고 하여 곧장 그를 만났다.
'라시드'라는 그의 이름은 남편의 셋째 매형과 똑같다. 나잇대도 비슷해서 더 친근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모로코말을 들으니 반갑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라시드는 모로코인이지만 지금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여 프랑스에 거주중이고 종종 모로코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며 살고 있었다. 서로가 다녀온 나라들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즐거웠던 혹은 지독했던 경험들도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더위도 한풀 꺾였다. 우린 내일 코소보의 수도인 프리슈티나로 넘어갈 생각인데 라시드도 하루이틀 안에 그곳으로 간다고 해서 가능하면 또 보자고 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스톤 브리지는 수세기가 지난 지금도 바르다르 강을 가로지른다. 그리 크지 않은 이 돌다리는 겉으로 아주 특별해 보이진 않지만 거뭇거뭇한 얼룩 속에는 이 땅이 지나온 세월이 겹겹이 담겼고 견고하게 물살을 버티는 기둥은 숱한 전쟁과 재해 속에서도 건재한 것이 꼭 북마케도니아를 닮았다. 다리 위의 악사들이 만드는 선율이 콸콸 달리는 강물에 둥실 실려 광장을 흐른다. 내일이면 다시 국경을 넘는 우리. 시원한 강물이 흐르듯 막힘없이 일이 풀리면 좋겠지만 우린 곧 여행 첫 입국불허가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