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베오그라드
7월의 발칸반도는 우리나라의 한여름을 상기시켰다. 낮에도 겉옷을 껴입어야 했던 스코틀랜드의 날씨에 익숙해졌다가 급작스럽게 세르비아의 무더위에 놓인 몸은 물에 풀린 휴지처럼 흐물흐물 늘어진다. 바다나 숲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스팔트 깔린 베오그라드의 도심은 훈김을 뿜어대는 찜기나 다름없다.
시내버스는 일일권 요금이 우리 돈으로 2천 원도 되지 않게 저렴했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바깥공기에 승객들의 체온만 더해질 뿐이었다. 차라리 요금을 더 부과하고 에어컨을 틀어주는 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땀을 말렸다.
동유럽을 통과하는 사바강변에 세워진 베오그라드 요새는 지금이야 관광객들이 한가로이 산책하는 장소이지만 수세기에 걸친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담고 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켈트족에 의해 처음으로 지어졌다는 이 요새는 로마제국, 오스만제국 등의 통치, 1차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을 거치며 동유럽의 화약고라 불리기까지의 굴곡이 새겨진 장소이다. 성곽을 따라 전시된 이름도 모를 무기들, 쏟아지는 포탄에 종잇장 뚫리듯 숭숭 구멍나버린 두터운 철벽을 보고 있으면 매캐한 전장의 냄새가 상상된다.
긴 역사의 대부분이 민족, 종교 간의 갈등과 충돌로 얼룩진 곳이라는 단편적인 개념과 무지가 서로 만나 머릿속에 그려진 세르비아의 풍경은 왠지 어둡고 우울했다. 거기다 인터넷 서칭을 통해 본, 발칸반도는 치안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몇몇 여행자들의 후기까지 더해지자 이곳에 대해 긍정적 기대는 거의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직접 발을 디디기 전까진.
역시 어느 장소든 가보지 않고선 논할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준 건 세르비아, 그리고 다른 발칸 국가들이었다. 정말 과거로 이동한 듯 조금은 올드해 보이는 거리, 탁하면서 신비로운 도시의 색감, 이국적인 정교회 건물과 성화들, 구식이라 비록 덜 쾌적할지라도 왠지 정이 가는 대중교통, 서유럽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싼 값에 맛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 현대적이라거나 세련되진 않지만, 거기에서 오는 발칸만의 매력이 도드라진다.
이곳 사람들 또한 그만의 분위기가 있다. 치안이 별로래서 사나운 인상을 떠올리며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유럽 특유의 차분하고 시크한 이목구비 때문에 사람들의 첫인상은 다소 차가울 수 있지만, 눈이 마주칠 때 은근히 짓는 미소를 마주하면 우리도 홀린 듯 서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뭐라 콕 집어 설명하기 어려운 이들만의 배려가 있다. 두 팔 벌려 환영하거나 과장된 몸짓으로 호객을 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오히려 지극히 무관심하고 먼저 와서 말을 거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길을 묻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당연하다는 듯 묵묵히 나서 도와준다. 사과 한 상자를 사면 두어 개를 더 얹어주는 한국인의 정과도 결이 좀 다른 무언가가 그들에게 있다. 아직까지도 정확한 표현을 못 찾았다. 굳이 찾자면 경상도의 '오다 주웠다' 같은 걸까.
아무튼 중요한 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위를 짤뚱한 엄지 두 개로 몇 번 톡톡 두드려 신상 불명의 누군가로부터 얻은 출처 불명의 소문에 의해 형성된 고정관념이 얼마나 얄팍한가이다. 언제부턴가 현대인들은 정보의 바다에서 아무렇게나 건져 올린 말말말들에 지나치게 휘둘린다. 직접 가보고 대화해 보고 겪어보기 전에, 남들이 '그렇다더라'고 옮기는 말들로 단숨에 정의를 내려버리기도 한다.
무엇을 얼마만큼 듣고 보고 또 믿을 것인지는 각자가 알아서 정한다. A를 B라고 상상하든 B를 C라고 곡해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유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강력한 족쇄가 될 수도 있다. 타인의 경험과 판단에만 의존하여 스스로 자유롭게 행동하고 도전하고 생각하기를 꺼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자유로워지는 만큼 오프라인상에서는 주체성을 점점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베오그라드에서는 '파벨'이라는 러시아인 호스트의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다. 처음 그가 우리를 게스트로 받아 주었을 때만 해도 프로필의 사진 몇장만 보고 '괜찮을까?' 하고 내심 긴장했다.
붑커>> 누구 닮지 않았어?
나>> 누구?
붑커>> 푸틴.
헉 진짜다. 푸틴과 닮은 냉랭한 인상과 서늘한 눈빛의 그는 어떤 사람일까. 한두마디 말이나 붙여볼 수 있을까..?
그리고 도착한 저녁, 조심스레 그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우리가 마주한 건 사진 속의 창백한 얼굴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활짝 웃는 남자였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파벨은 우리에게 화장실까지 딸린 깨끗한 방을 내어주고, 다과를 대접해주었다. 그의 어린 아들들은 수줍지만 우리에게 다가와 사랑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블라디보스톡이 고향이지만 지금은 세르비아에서 살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또 다른 여행자 친구도 만났다. 그녀는 워크어웨이라는 어플을 이용해 파벨의 집에 아이들의 영어 선생님으로 머물며 홈스테이 중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파벨은 아마 우리가 가장 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호스트일 것이다. 경직되어 보이는 프로필 사진만 보고 지레 짐작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게스트를 편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었다. 대화의 주제도 사소한 개인사부터 시사, 문학, 경제 등등 굉장히 폭넓어 어색할 틈이 없고 배울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와의 대화가 즐거웠던 가장 큰 이유는, 본인과 다른 의견이라도 포용하고 존중하는 그의 태도 덕분이었다.
붑커>> 사실 러시아라고 하면 무섭고 차가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얘기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
파벨>> 그럼.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라구.
그렇게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우리는 그의 박식함에 또 한번 감탄하며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 세르비아를 떠난 후에도 우린 종종 그를 떠올렸다. 언젠가 그와 못다 나눈 이야기를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어갈 날이 있기를 바란다.
사람이나 장소나 정말이지 겪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어쩌면 여행은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