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프리슈티나 (갈 수 있을까?)
스코피예에서 미니밴을 타고 한두 시간을 달려 코소보와의 국경으로 간다. 버스에 비해 좌석 간 간격이 좁은 밴에서는 옆자리가 잘 보인다. 우리 옆자리에는 한중일 3국 중에 하나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승객이 앉아 있었다.
나>> 한국사람 같은데?
남편에게 속삭였다.
붑커>> 아니야. 중국사람이야. 아까 여권을 우연히 봤어.
나>> 아하.
곧 국경이 가까워졌고 기사님이 탑승객들의 여권을 걷어갔다. 육로로 국경을 넘을 땐 승객 한 명씩 심사를 거치기도 하지만 이렇게 한 번에 여권을 걷어가서 1차로 심사를 한 다음 필요한 승객만 2차로 따로 불러 면담을 하기도 한다. 면담이 필요하다는 건 입국 조건에 부합하지 않거나 재차 확인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1차로 여권을 제출하면서 남편이 그랬다.
붑커>> 봐봐. 이따가 나랑 저 중국사람만 따로 불러낼 거야.
정말 그럴까?
몇 분 뒤.
기사님>> 여권들 받아 가세요. 그리고 여기 두 분은 잠깐 나오세요.
진짜다..! 기사님은 남편과 중국인 승객을 콕 집어 불렀다.
붑커>> 내 말이 맞지?
남편이 키득대며 말한다.
나>> 어떻게 알았어?
붑커>> 비자 때문에 문제가 될 사람은 이렇게 둘 뿐이거든.
그랬구나. 이제 보니 우릴 제외하고는 다들 유럽권 사람들로 보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대부분의 국가를 무비자로 여행 가능하니 비자가 필요한 건 모로코와 중국 두 나라뿐. 씁쓸하지만, 입국 시 비자 확인으로 인해 심사 시간이 길어지는 경험을 거듭하다 보니 이제 이 정도는 가볍게 웃어넘긴다.
...물론, 과정이 길어지더라도 결국엔 입국이 될 거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네에? 왜 못 들어가요?"
"비자가 없으면 안 됩니다. 아니면 유효한 솅겐비자가 있어야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입국이 거부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우리의 얼굴에 더 이상의 웃음기는 없었다.
"저희는 유효한 영국비자가 있어요. 그러면 코소보 입국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잘못된 정보예요. 영국비자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심사관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우리의 코앞에 화면을 들이밀었다. 코소보 비자 관련 공식 웹사이트였다. 흰 화면엔 분명한 검정 글씨로 '코소보 관광비자 또는 솅겐비자가 필요' 하다고 나와 있었다. 비자 챙기기에는 닳고 닳은 우리였기에 너무 자신만만했던 걸까. 안일했던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이 위기를 빠져나갈 구멍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같이 불려 나온 중국인 여행객은 솅겐비자가 있어 통과되었다. 하지만 남편의 솅겐비자는 얼마 전 만료가 되어버린 후였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 그와 우리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 또한 안타까운 눈길을 보낼 뿐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으로선 택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 깔끔히 포기하기. 까짓 거 안 가도 아쉽지 않다면야.
---> 너무너무 아쉽기 때문에 쿨하게 돌아설 수 없다. 차라리 구질구질해질 테다.
둘째,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 상대가 빼도 박도 못하는 근거를 내세웠으므로 이건 이미 글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셋째, 감정에 호소하기.
"부탁드려요. 저흰 코소보에 꼭 가고 싶어요!"
언젠가 남편이 그랬다. 입국 시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허가를 내주는 건 심사관의 권한이라고. 완벽히 준비해도 심사관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괴팍한 심사관을 만난다면 불행히도 입국할 수 없는 것이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심사관이 도장만 찍어준다면 그대로 통과인 것이다.
"안.됩.니.다."
하늘이 우리 편이 아닌 걸까. 오늘의 심사관은 절대로 사정을 봐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호리호리한 키에 군살 없이 갸름하고 창백한 얼굴에서는 이 더운 날씨에도 찬바람이 쌩하고 부는 듯 예민함이 느껴진다. 조금 치켜 올라간 눈꼬리는 채찍처럼 매섭고 화살 같은 콧날은 대쪽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으며 'No'라고 말하는 입술은 말을 할 때만 잠깐 벌어졌다가 금세 일자로 꾹 다물려 아무 감정 없는 무표정으로 굳어졌다. 이를 어쩐다..
바깥을 보니 버스는 너무도 빨리 떠나버린 후였다. 우리 모두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건지 나와 남편, 심지어 심사를 통과한 중국인 친구(통성명을 했다. 이름은 '보양')까지도 두고 가버렸다. 보양도 통과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그가 가진 솅겐비자가 불가리아에서 발급받은 것이라서였다. 심사관은 '불가리아는 솅겐협약국이 아니라서 인정되지 않는다'며 처음엔 보양조차 입국시켜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2024년부터는 불가리아도 솅겐협약국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그제야 통과가 되었던 것이다. 보양처럼 비자가 있어도 어떻게든 안 들여보내주려고 이 잡듯이 이유를 찾아내는데, 비자가 없는 우리야 오죽하겠는가.
상황은 벼랑 끝이었지만 버스도 떠났겠다 물러설 곳이 없는 우리는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1) 모범 여행자임을 어필하기
"저흰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어요. 규칙도 어긴 적 없고, 불순한 소지품도 없구요!"
"네 알아요. 그래도 안됩니다."
2) 비자 부자임을 자랑하기
"며칠 전만 해도 솅겐비자가 있었어요. 여기 보세요, 정말 불과 얼마 전에 끝난 비자거든요. 이번이 처음도 아니구요, 예전에 발급받은 핀란드 솅겐비자도 있어요. 영국비자도 있고, 인도네시아 비자, 태국 비자, 한국 비자..."
"네~ 그래도 안됩니다."
3) 종교로 친밀감 쌓기
코소보인의 97%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심사관 역시 무슬림이었다.
"앗 무슬림이세요? 앗살라무알라이쿰."
"알라이쿰오살람. 안됩니다."
4) 불쌍해 보이기
눈물을 끌어모아 그렁그렁한 눈빛을 만들었다.
"세계여행은 저희의 꿈인데 여기서 코소보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너무 슬플 거예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없어요."
거절 4 연타를 맞았다. 이제 정말 끝인가 싶은 순간. 다른 심사관이 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에요?"
우리는 실낱 같은 지푸라기를 꼬옥 잡는 심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할수록 새로운 심사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제 3자로서 이 상황이 재미없을 리가 있나. 얘기를 다 들은 그는 미소를 띠고서 우리와 팽팽히 대립하던 심사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무어라고 조용히 말했다. 외국어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쟤네 그냥 보내주자.'
놀랍게도 부동의 석상 같던 심사관의 표정이 눈 녹듯 서서히 풀렸다.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난제에서 탈출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우리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물었다.
"코소보에는 얼마나 있을 예정인데요?"
"금방 나갈 겁니다! 한 사나흘..?"
"아니요. 당신들은 다른 나라로 가기 전에 오늘 하루만 코소보에 머무는 거예요."
"네? 그렇지만..."
"그렇다고 말하세요. 오늘만 경유하는 거예요."
아..! 그제야 그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출입국심사 시의 모든 과정과 대화는 녹화/녹음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상황에서 비자가 없는 외국인을 들여보내주기 위한 최선의 명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쾅. 마침내 남편의 여권 빈 페이지에 코소보 입국 도장이 찍혔다. 여권에 스탬프가 찍히는 순간이 이렇게 감동적인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기쁨에 방방 뛰었다. 유리벽으로 가로막히지만 않았더라면 심사관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을지도 모른다.
보양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나오자 화색을 띠었다. 그 짧은 시간 우리 셋은 전우애 비슷한 게 생겼는지 금방 한 팀이 되었다.
"이제 어떡하지? 다음 버스는 언제 오려나?"
"한참 있어야 할걸. 아무 차나 부탁해 볼까?"
사실 얼마가 걸린대도 좋았다. 철옹성 같은 입국심사를 뚫었는데, 걸어서 가라고 해도 좋을 기분이었다.
히치하이킹을 한 지 10분이나 흘렀을까. 생각보다 빠르게 차 한 대가 멈췄다.
"안녕하세요! 프리슈티나로 가는 길에 아무 데나 내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타요."
한눈에 봐도 긍정이라고 이마에 써붙인 운전자는 얼른 타라며 손짓한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차 문을 열자 뒷좌석에 이미 두 명이 타고 있다.
"저희가 세명이라서 자리가 부족하네요. 안 되겠어요.."
그러자 긍정의 운전자는 다시 손짓한다.
"괜찮아요. 그냥 타요."
그리하여 뒷자리에 성인 네 명이 삐죽삐죽 끼여 타고 간신히 차 문을 닫았다.
"프리슈티나에 간다고 했죠? 시내까지 데려다 줄게요."
"정말요? 세상에 너무 감사해요."
그들은 벨기에에 살고 있는 코소보인 가족인데 여름휴가기간에 발칸으로 왔다가 우리를 만난 것이었다. 쾌활한 그들과 이것저것 묻고 답하다 보니 프리슈티나까지는 금방이었다. 사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실제로 차가 엄청 빠르게 달렸기 때문인데, 그 속도가 시속 200km에 닿을락 말락 했다. 독일에서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200km로 달리는 건 예삿일이라고 들었는데 벨기에에서도 그런 걸까?
"자 여기가 중심가네요."
"태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행을 할수록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베풀어주는 온정을 받는 일이 쌓여간다. 모든 것이 등가교환의 연속인 일상에서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자리가 부족한데도 기꺼이 차문을 열어주고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그들. 그 자리에서 내쫓겨도 할말이 없었을 두 여행자를 구제해 준 출입국심사대의 그들. 덕분에 코소보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